한국일보

“이러다 진짜 전쟁 나는 건가?”

2017-09-12 (화) 12:00:00 조이스 리/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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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진짜 전쟁 나는 건가?”

조이스 리/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연구원

“이러다 진짜 전쟁 나는 것 아닌가요?” 한국 출장 중 갑자기 터진 북한 6차 핵실험 탓에 내가 무슨 점쟁이라도 되는 양 하루에도 몇 번씩 받고 있는 질문이다. 미국에서도 북핵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수없이 들어 온 질문이지만 이미 5번의 핵실험과 올해 들어서만 23번의 미사일 실험 등 북한의 일상화된 도발에 무뎌질 대로 무뎌진 듯 보이던 한국 국민들의 안보 불감증, 소위 ‘북한 면역증’이 서서히 다른 형국을 맞고 있는 듯하다.

점점 짧아지는 핵실험의 주기와 예상을 뛰어 넘는 강도 탓도 있겠지만 어느 한 쪽도 믿을 수 없는 트럼프 대 김정은의 예측 불가능한 싸움이기에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다.

누구에게서 조언을 얻는지, 주변의 조언을 듣기는 하는지도 불분명한 트럼프와, 피를 나눈 혈맹이라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조차도 한번 만나보지 않았을 정도로 베일에 싸인 채 외삼촌과 형을 잇달아 살해하는 극악무도함을 보인 김정은이 아닌가. “에~이 설마” 하고 낙관하다가도 문득문득 “그래도 혹시?”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이유다.


제 아무리 즉흥적이고 불같은 성격으로 정평이 나 있는 트럼프와 김정은이라도 끝이 뻔히 보이는 전쟁을 감행하는 것이 쉬운 결정이기야 하겠는가.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희박하나마 전쟁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대북 군사옵션을 최우선책, 혹은 최선책으로 고려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가능한 모든 옵션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만일 미국의 안보가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되면 이 옵션은 더욱 힘이 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6차 핵실험 이후 한국 국민들의 체감위험도 변화는 곳곳에서 눈에 띈다. 우선 한 방송인이 2주 전 쯤 유튜브에 올린 ‘전쟁가방’ 소개 영상은 핵실험의 탄력을 받아 시청 50만 건을 넘어섰다. 이 방송인이 구입한 전쟁가방 안에는 파이어 스타터(fire starter), 방독 마스크, 전투식량, 긴급 의약품 등 전쟁 발생 시 당장 필요한 물품들이 빼곡히 들어 있다. 해당 영상 이외에도 유튜브에는 전쟁/재난가방 준비를 소재로 한 영상이 무려 5,000여개에 이른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검색통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 3일 6차 핵실험 이후 ‘전쟁배낭’ 또는 ‘생존배낭’ 검색도 급증했다. 다수의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휴대용 라디오, 전투식량, 방독면 등 전쟁 상황에 대비한 비상 물품들의 판매량이 급증해 핵실험 직전에 비해 크게는 130% 정도 늘어난 것이 확인되었다. 언론도 한 몫 거들어 지난 3일 이후 전쟁/재난배낭 관련 기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주요 포털사이트 및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있다.

한켠에서는 불필요한 전쟁 위기감을 조장한다는 부정적인 목소리도 들리고, 4월 전쟁설에 이어 8월 전쟁설, 9월9일 전쟁설도 말 그래도 ‘설’ 로 끝났다. 하지만, 국민들이 겪는 위기감과 불안감은 북한이 핵개발 마무리 단계를 밟으며 더욱 증폭될 것이다. 그동안 보수진영의 극우적 발상으로 치부되던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가 이젠 여야를 넘어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핵을 가진 북한을 인정하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절박감의 표출이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에 일일이 일희일비할 수는 없지만 북핵 위협의 심각성과 엄중성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국가와 국민이 뜻을 합쳐 안일한 자세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대응책을 펼 때이다. 아무리 미-북 간의 싸움이라지만 위기상황 발생 시 결국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곳은 한국이 아닌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북한의 목표인 핵보유국 지위 쟁취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근거 없는 낙관론과 지나친 비관론으로 분열된 국론을 모아 ‘핵보유국 북한’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다음단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주도적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일 때이다.

<조이스 리/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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