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제2차 세계대전과 FDR 대통령 ①

2017-09-08 (금) 조태환/LI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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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R 영도하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WW II) 에서 연합국이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했다. FDR 의 재임중에 시작되었다가 그가 사망한 후 4개월 여만에 종전이된 WW II 와 전쟁전후의 세계 및 미국의 정세를 간략하게 짚어보면서 FDR 대통령의 얘기를 끝내고자 한다.

미국이 민주주의와 자유경쟁 자본주의를 유지하면서 대공황을 탈출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해오고 있던 동안의 Europe 과 Asia 의 정세는 어떠했을까? 그 지역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었지만 사실은 미국보다는 더 회복할 수 없는 중증의 병에 걸려 들어가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1918년에 끝난후 전쟁승패와 상관없이 모든 나라 들이 회생해 보려고 고난중에 있던 중 절망과 굶주림을 이겨내지 못한 일부 국가들 에서는 구국이라는 명분아래 국민들의 생명과 자유를 독재자들의 손아귀에 안겨주는 일들도 일어나고 있었다. 문명과 문화의 선진국들이 야만적인 국가로 변질되어 가기도 하였다.


■절망속의 독일인들 앞에 혜성처럼 등장하는 ‘구원자’ Adolf Hitler
1923년에 이태리에서는 Benito Mussolini 가 이끄는 Fascist 일당들이 로마에 입성하여 정권을 탈취하고 “생계와 영광”을 회복 하겠다는 미명아래 민주주의를 중단하고 국민들의 자유를 압살하였다.

FDR 이 대통령에 취임한 1933년 3월에 독일에서는 Nazis 일당을 이끄는 Adolf Hitler 가 “독재자” (Fuhrer) 로 추앙되었다. Woodrow Wilson 이 대통령으로 취임한1913년경부터 유럽의 열국들은 제국주의 확산과 세계도처의 재물 획득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민주주의와 현대문명을 혐오하던 일부 독재국가 통치자들의 호전적 발언들로 세계의 평화가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미국으로 상징되는 “평등과 대의민주정치” 라는 개념에 선전포고를 하고 있었었다.

독재자 Hitler 가 등장한후 몇년 동안에 유럽의 외교는 Hitler 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는 사실은 “진짜” 독일인이 아니었다. 그는 Austria 출신으로서 고등학교를 중퇴한후 Vienna 미술학교 입학시험에 두 번이나 낙방하였고 공공 기관의 구호로 연명하며 Postcard 의 그림을 복사하여 판매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군에 자원입대 하였는데 전쟁중 독gas를 마시기도 하였고 부상을 당하였었다가 몇 년 후에 상병으로 제대하였다. 전쟁이 끝난후 Hitler 는 자기의 정당을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독일을 세계 최강의 나라로 부활시키기 위하여 독일의 정권을 잡아야 했었다. 그는 병적으로 유태인을 증오하였고 독일이 패망하도록 만든 유태인들을 전멸 시켜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1923년에 Hitler 와 그의 Nazis 불한당들이 독일 남부의 Bavaria 주정부를 전복 시키려는 의도로 주정부 간부들이 모여있던 Beer Hall 을 포위하고 있다가 도리어 당국에 일망타진되어 형무소에 투옥 되었었다. 그는 형무소에서 복역 중에 800쪽 짜리 그의 “불후의 명작”(?) “Mein Kampf” (나의 투쟁) 를 집필하였는데 그책은 Nazis 의 “성경”이 되었고 추후에는 모든 독일인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그는 독일인들은 세계를 정복하도록 숙명을 타고난 “최우수 종족” (Master Race) 이며 “민주주의”는 사기극에 불과하며 가장 좋은 정치제도는 “독재정치”로써 독재정치를 위해서는 진실이 아니라 거짓말 이라는 수단을 쓸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기독교는 유태인들이 최우수종족을 비겁한 인간들로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낸 사기종교 "라고 주장하였다. Hitler 의 “천년왕국” The Reich 에 대한 구상은 너무나 치졸하고 부도덕한 것이라서 국외에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없었으나 독일안에서는 수백 만명이 그의 Nazis 당 (National Socialist Nazis Party) 에 입당하였다.

독일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후에 체결된 Versailles 조약을 혐오하였으며 그조약으로 독일에게 부과된 전비보상책임을 극도로 증오 하였는데 종전후에 생겨난 독일의 경제파탄은 독일이 자력으로 부담할 수 없는 전비보상이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한다. 걷잡을 수 없는 inflation 으로 독일은 시달렸는데 한 주에 10 mark 이던 빵 한덩어리가 그 다음주에는 1000 mark 가 되었다가 그 얼마 후에는 10억 mark 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화폐가치가 눈코 뜰새 없이 급격히 하락하여서 급료를 매 24시간마다 지불해야 했으며 평생 모아온 저축금은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패전 후의 독일민간정부는 경제를 통제할 능력이 없었으며 국회도 열 개가 넘는 군소정당들로 조각들이 나 있었다. 수백 만명의 실직자들이 생겨나고 국민들이 먹고 써야 할 물품은 동이나 있었다. 때마침 전세계가 불황에 빠져있었고 미국도 대공황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이었음으로 독일을 도와 줄 수 있는 나라들이 없었다.

“그 어느놈들이던 간에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 아닌가!” 라고 독일인들은 외치고 있었다. 난세에 “구세주”는 나타나게 되어 있는 법이다. 그 암담했던 순간에 Adolf Hitler 가 최우수 종족을 구원할 미치광이 같은 구원의 복음을 가지고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논리 정연하게” 독일이 경험하고 있는 참상의 원흉을 규명하였다. “모든 책임은 전부다 유태인들에게 있다!” 라고 피를 토할 듯이 주장하는 그를 감히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Hitler 는 쉽게 청중이 넋을 놓고 매료되도록 만드는 탁월한 웅변술을 타고난 사람이었다고 한다. 요즈음도 가끔 기록영화에 나타나는 Hitler 의 열변을 들으면 독일어를 한마디도 못알아듣는 필자도 그의 열변에 휩쓸려 감동을 받곤 한다. 그는 천재적 독재자답게 정치선전 광고술에도 능란한 사람이어서 동원된 청중들이 Nazis 기를 휘두르며 장시간에 걸친 그의 연설에 열광하고 환호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FDR 이 Fireside Chatting 이라는 radio 방송을 통해서 미국민들의 지지를 얻었던 것처럼 radio 방송을 아주 효과적으로 쓸 줄도 알았다. 그는 근본적으로는 성실하지만 실직으로 절망하고 있던 사람들과 타고난 불량배들을 동시에 감명시키는 말 재주가 있었으며 야망에 차 있는 사람과 거듭되는 실패로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똑 같은 연설로 감동시키는 언변이 있었다. 2016년의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Trump 후보의 연설을 들을 때에 가끔 Hitler 의 청중선동 연설장면들이 연상 되었는데 필자만의 지나친 착각이었는지는 아직도 분명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Trump 는 그의 최근의 발언들을 통해서 KKK, 백인우월주의, neo-Nazism 등을 지지하는 Hitler 아류의 인종차별주의자 임이 점점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 가지 선듯 납득이 되지 않는 점은 Hitler 가 독일 패배의 모든 책임을 유태인들 에게 뒤집어 씌웠듯이 제2차 세계대전이후 독일인들은 전쟁중의 모든 책임을 Hitler 에게만 뒤집어 씌우는 것이 아닌가 라고 가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Hitler 의 주장이나 독일안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들이 너무 믿을 수 없다고 한탄하고 있을 때 막상 독일안에서는 “존경 받을 만한 지성인들”은Nazis 불한당들이 반대자들에게 폭행하고 정적을 암살하고 수백 만명의 무고한 희생자들을 Concentration Camp 에 보내서 학살하고 언론은 거짓만을 보도하고 있을 때에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태환/LI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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