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의 합법이민 ‘스텔스’공격

2017-08-30 (수) 12:00:00 김상목 / 부국장 대우 . 정책사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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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장벽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그간 합법이민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민장벽을 쌓아가고 있어 정상적인 합법이민자들마저도 이민서류 작성하기가 쉽지않다.

트럼프 취임 이후 합법 이민서류 양식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승인 여부를 판가름하는 이민서류 문항들은 갈수록 복잡하고 모호한 질문들로 채워지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가 그간 물밑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합법이민을 제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케이토 연구소’(Cato Institute) 데이빗 비어 수석분석가는 이민축소를 추진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그간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이민서류 절차를 통해 합법이민을 제한하고 통제하려는 경향을 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비어 분석가는 지난 7개월간 진행된 이민서류복잡화 과정이 행정부의 보이지 않는 ‘스텔스 공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 1월부터 7개 월간 달라진 이민서류 행정절차를 보면 비어 분석가의 지적이 과장은 아니다. 이 기간 합법 이민자들이 작성해야 하는 이민서류 양 식 분량이 최고 5배까지 폭증했다. 주요 이민서류 15종의 분량은 72페이지에서 162페이지로 2.5배 늘었고, 설명서는 114페이지에서 215페이지로 무려 191페이지가 늘었다. 특히, 영주권 신청자들이 제출하는 I-485 양식은 8페이지에서 18페이지, 설명서는 8페이지에서 42페이지로 5배나 불어났다. 합법이민 신청자들에게 이민서류 행정절차가 훨씬 까다롭게 변경된 셈이다.

연방 서류간소화법(Paperwork Reduction Act)은 연방기관의 민원서류 증가를 극도로 억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유독 이민서류에서만 분량이 2배∽5배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분량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이민승인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민서류 양식의 수많은 문항들은 훨씬 복잡하고 모호해졌다.

트럼프 취임 후 변경된 I-485 양식에는 이런 문항이 있다. “당신은 사법기관 요원에 의해 어떤 이유로든 체포되거나 티켓을 받거나 구금 또는 혐의를 받은 적이 있는가?” 주차위반으로 티켓을 받았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티켓을 준 주차위반 요원은 사법기관 요원인가 아닌가? 공항 입국심사 과정에서 2차 심사를 위해 잠시 대기한 적이 있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변호사조차 섣불리 대답하기 어렵다. 자칫 사실 은폐나 거짓 증언이라는 의심을 받을 수 있고 영주권을 한순간에 날릴 수도 있다. 가장 간결하고 분명하게 작성해야 할 이민서류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모호해져 이민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합법이민 서류절차가 복잡하고 모호해져 이민심사가 ‘극단적인 심사’(extreme vetting)가 아니라 ‘극단적으로 모호한 심사’(Extremely vague vetting)가 됐다고 꼬집는 이들도 있다.

“행정절차가 복잡해질수록 정부기관의 통제력은 강화된다”며 “이민서류 절차가 갈수록 복잡하고 모호해지는 것도 트럼프 행정부가 합법이민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상목 / 부국장 대우 . 정책사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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