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기 인생은 자기 책임”

2017-08-19 (토) 김순진 /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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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상원이 수차례 표결을 시도했는데도, 번번이 통과에 실패한 법안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화당 건강보험법안(트럼프 케어)이다. 내용이 복잡다단해서 보통사람들은 세부사항을 이해하기 힘들고, 그저 트럼프 케어가 통과되면 2,000만 내지 3,000만명의 국민들이 건강보험을 잃게 되고, 이들 대다수가 극빈자, 노인, 장애자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일 것이라는 정도로 알고 있다.

이 ‘악법’을 지지하는 17%의 국민과, 상원 다수당인 공화당 의원들은 왜 국민의 기본권리인 의료보험을 수많은 사람들로 부터 빼앗는 몰인정한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열을 내고 있을까? 이 의문은 보수 이념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느 정도 답을 얻을 수 있다.


보수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이념은 작은 정부이다. 정부는 외침과 내란에 대처하는 기본적 책임만 지고, 국민의 생활, 교육, 건강, 거주환경 같은 문제는 각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주의이다. 당연히 부자로부터 세금을 걷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건강보험까지 들어주어야 하는 정책은 근본적으로 “안될 말”이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 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립주의는 미국의 역사적 배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넓은 땅에, 자원은 풍부하고, 인구는 적고, 규제는 느슨한 신생국가에서, 노력만 하면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가 오랜 역사의 문명국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많았다. 자연히 “운명개척”과 “내 인생은 내 책임”이라는 개인주의 철학이 쉽게 형성, 정착될 수 있었다. 이런 토양에서 부를 축적한 개인들이 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미국 자본주의의 토대가 다져졌던 것이다.

자본주의 찬양과 사회주의 배척은 소련출신으로 미국시민이 된 여성작가 아인 랜드(1905-1982)의 “아틀라스는 어깨를 들썩했다”라는 책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능력있는 거인들의 창의적 에너지 덕으로 부강한 사회를 이루는 반면에, 사회주의 세상에서는 억지 평등논리 하에, 성공한 대 자본가들이 이루어 놓은 성취에 무임승차하는 약탈자나 구걸자를 양산하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 내용이다.

사회주의를 망국 정책으로 공격하는 랜드의 정치철학은, 원래부터 개인주의를 숭배하는 미국 보수주의자들로 부터 대환영을 받았고, 티 파티어들과 같은 극 보수주자들의 정치이념을 더욱 강화시킨 효과를 가져왔다.

실제로 국민들의 생활 전반에서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방대한 복지정책이 자리를 잡으면서, 부자들의 반감이 심해지고, 사회적으로 여러 불합리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각자의 인생은 각자의 책임이라는 주장이 참신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열심히 일해서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내 보험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까, 게으른 사람들의 보험까지 부담하라는 정책은 절대 반대”라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바로 오바마케어 폐지와, 있으나 마나일 정도로 인색한 공화당 보험안을 지지하는 17% 국민들의 속마음이다. 보험의 기본개념을 무시한 오만과 무지에서 나온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일생동안 정부의 복지정책을 사회의 독이라고 몰아쳤던 아인 랜드가 말년에 병이 들면서, 친지의 권유로 사회보장연금과 메디케어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러니치고는 최고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순진 /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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