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2017 미주한국일보 문예공모전 수필부문] 가작 ‘봄’ 이미화

2017-08-17 (목)
크게 작게
아무래도 올해는 봄을 건너뛸 모양이다. 하늘이 꽁꽁 얼어 있던 날 입춘이 찾아왔다가 멋쩍게 돌아섰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알을 낳으러 돌아다니기 시작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음력절기와 상관없이 사는 이곳의 개구리들은 경칩이라고 하니 새로 나온 감자칩 이름인가 하고 눈만 껌벅이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러운 겨울같은 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지난주에는 천둥이 치면서 하루 종일 눈이 내렸고 아침이 되어도 어두운 하늘에는 달이 떠 있기도 했다. 가끔 파란 하늘이 보이길래 혹시 어딘가에 봄이 숨어있는 게 아닐까 해서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스산한 날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며칠째 계속 비가 내렸고 해는 빠끔 얼굴을 내밀었다가 지붕이 마르기도 전에 사라져버리곤 했다. 달이 바뀌고 첫날인 오늘도 거리에 늘어선 나무들은 어제처럼 먹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고 그 남자는 여전히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아침에 파자마를 입은 채로 느긋하게 마시는 커피는 휴일이 안겨주는 작은 행복이다. 특히 오늘처럼 구름이 낮게 내려앉은 날 늦잠을 자고 일어난 후에 마시는 커피는 더 각별하다. 그래서 커피통 뚜껑을 열고 텅 빈 속을 확인한 순간 나는 금단증세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안절부절했고 당장이라도 커피를 마셔야할 것처럼 마음이 급해졌다. 커피통 뚜껑을 닫는 것과 동시에 횡단보도 세 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들어서 있는 두 개의 스타벅스를 떠올린 것은 당연했다. 집에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다. 나는 눈꼽만 뗀 얼굴로 파카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구름이 하늘을 덮어 흐렸지만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거리를 따라 빼곡히 들어선 식당들과 가게들이 모두 문을 열었고 디저트로 크림빵을 공짜로 주는 베트남식당은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구경하며 한가로이 걷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왜 그 순간, 아무렇지도 않은 그 순간에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친 것일까.

지난해 가을 어느 날 불쑥 나타난 남자는 이 거리의 많은 노숙자들 중의 한 명이다. 그날 남자는 무릎 아래가 주욱 찢어진 바지와 목이 늘어난 긴팔 옷을 입고 있었는데 깡마른 체구에 180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 때문에 유난히 눈에 띄었다. 날씨가 추워지자 남자는 어디선가 담요를 얻어와 그 후론 줄곧 담요을 두르고 있었다.


남자의 보금자리는 옷가게다. 물론 옷가게 안에서 지내는 것은 아니다. 옷가게는 길모퉁이를 끼고 있는 탓에 거리로 면한 정면과 벽 하나 전체가 유리였다. 유리벽은 가운데에 직사각형 모양으로 홈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폭이 상당히 넓었다. 바로 그곳이 남자의 침실이고 거실이었다. 옷가게에는 비쩍 마른 마네킹들이 일년 내내 소매없는 티와 반바지를 입고 맨발로 서 있다. 밤에도 잠을 자지 않는 마네킹들을 유리 너머에 호위병으로 세워 놓고 남자는 누에처럼 웅크리고 잠을 잤다. 매일 똑같은 길을 다니면서도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아마도 그건 남자가 거의 매번 누워있기 때문일 것이다. 길가쪽을 보고 누웠다고는 하나 남자의 얼굴은 언제나 담요에 덮여 있었다. 간혹 남자가 느리게 걷고 있는 것을 볼 때도 있지만, 남자는 걸어다닐 때에도 담요를 머리부터 덮어쓰고 눈만 내놓고 있었다.

남자의 보금자리가 있는 이 거리는 노숙자들에게 점령당한 지 오래됐다. 가게 출입문 앞이나 건물 입구 구석진 곳에서 둘셋씩 한데 모여서 잠을 자고 있는 노숙자들의 모습은 이제 이 거리의 흔한 아침 풍경이다. 눈만 마주치면 손을 내미는 노숙자들이 하루에도 열 명이 넘었다. 아침에 돈을 주었는데도 오후에 마주치면 또 손을 내미는 경우도 있었고, 제법 낯이 익은 노숙자가 투명한 플라스톡통을 흔들면서 아는 체를 하면 외면하기가 어려워 일달러짜리 한 장을 통에 집어넣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내키지 않은 일을 마지못해 한 것처럼 불쾌해지곤 했다. 나는 점점 인색해졌고 돈을 주신 대신 미안하다는 말을 기계처럼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싫은 기색을 숨기지 못한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고 말투는 차갑고 건조했다. 그리고 곧 노숙자들에게 돈을 주지 않아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노숙자들에게 건네주는 몇장의 지폐로 소외계층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위안을 삼았던 알량한 내 시민의식은 결국 거기까지였다.

그래서였다. 손을 내미는 노숙자에게 미안하다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며 지나치다가 저만치 앞에 남자의 담요가 보이길래 잠시 눈길을 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남자는 누워있는 게 아니었다. 남자는 두 무릎을 세우고 유리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엉겁결에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순간 당황해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남자의 시선에 갇혀버렸다. 불과 몇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태연한 척 하느라고 화난 표정이 되었고 남자의 눈빛은 그런 속임수까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무슨 기척을 느꼈는지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서너살쯤 되어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노인과 함께 남자의 보금자리 앞에 서 있었다. 아이는 두세걸음 앞으로 걸어가 말없이 비닐봉지를 내려놓고는 되돌아와 노인의 손을 잡았다. 아이와 노인이 돌아서자 남자는 봉지 안에서 플라스틱포크를 꺼내 손에 쥐고 네모난 용기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아이의 뒷모습만 보며 걸었다.

스타벅스는 이어폰을 끼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라테와 블루베리스콘을 사서 나오는데, 털모자를 쓴 여자와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출입문 옆에 나란히 서 있다가 문을 열고 나오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커피를 사고 남은 거스름돈 중에서 지폐를 골라 여자에게 주었다. 여자가 고맙다고 말했지만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바람이 쌀쌀맞게 눈을 흘기며 지나가고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어깨를 웅숭그리고 가볍게 몸을 떨었다. 남자에게 음식을 건네주던 여자아이의 머리에는 꽃리본이 빨갛게 피어 있었다. 봄이 아이를 따라왔다가 아이를 따라 도로 가버렸다.

수상소감

글을 쓰고 싶을 때는 생각이 많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때다. 모순같지만 그렇다. 구절 사이에 쉼표를 넣고 마침표를 찍어가며 글을 쓰고 있으면 머리가 맑아진다. 맑게 개인 그 안에 생각 하나가 또렷하게 보이고 그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생각마저도 사라지고 오직 ‘나’만 남는다. 여러 겹의 생각을 벗어버리니 글을 쓰고 있는 ‘나’는 평소보다 정직하다. 정직해진 ‘나’는 글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은 후 첫문장을 찾아가 ‘나’를 들여다 본다. 단어를 바꾸고, 없던 쉼표를 끼워넣었다가 다시 지우고, 문단 하나를 통째로 없애버리는 동안 정직한 ‘나’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괜찮아 보이고 싶어하는 ‘나’로 돌아온다. 그래서 다시 생각이 쌓여가고 그 무게에 짓눌려 버거워진다. 그러나 정직한 ‘나’는 바로 그때에 찾아오리니 생각이 많은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리라. 이런, 겁도 없이 글을 쓰겠다고 덤벼드는 ‘나’는 글을 쓸 핑계거리를 찾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읽을 만하다고 격려해 주신 심사위원에게 감사드린다. 덕분에 생각 하나가 더 늘었다.
[2017 미주한국일보 문예공모전 수필부문] 가작 ‘봄’ 이미화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