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드라그물 위의 반야왕거미

2017-08-15 (화) 12:00:00 최승호 (1954- )
크게 작게
물통 하나 들고

남도 길을


걸어간다

대숲들

지저귀는 새들

태양을 쪼개는 다이아몬드들처럼

반짝이는 이슬들

나처럼 나를 망치고 나의 것을 망쳐놓는 어리석은 놈도 없을 것이다

너덜너덜 찢어진 그물을 깁고 있던 늙은 왕거미


인드라그물 위의 반야왕거미

대숲들

지저귀는 새들

목마르면 물 들이키며

남도 들길 걸어간다

하늘과 닿은 들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최승호 (1954- ) ‘인드라그물 위 반야왕거미’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그 생각의 강도만큼 열후한 인간이란 것이 내 지론이다. 복잡한 마음 놓고 상상의 휴가라도 가듯, 참 좋은 명상의 시를 소개하려 했는데 샬러츠빌 폭력시위 뉴스를 접하면서 마음이 불이 나서 해설이 써지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기에 우월주의자가 되는가. 이 세상 그 누구도 다른 그 누구보다 우월하지 않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의 말대로, 차별과 증오를 퍼뜨리는 그들이 미국을 떠나야 한다는 말이 옳다. 갑갑하다. 우리가 우리를 망치고 우리 것을 망쳐 놓은 것인가. 물통 하나 들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남도 길을 걷고 싶은 날이다.임혜신<시인>

<최승호 (1954- )>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