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집으로 걸어가며’

2017-07-13 (목) 12:00:00 Marie Ho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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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다 결국은 죽는단다,

대체 어떻게 시작된 걸까? 하니


나무, 그 겨울? 난 아니야, 아이가 말한다

어, 그래? 하고 반문하자 아이는 대답한다, 나는 환생할거야

하, 수 천년 후에 우리 다시 만나!

그런데 왜 분이나, 일이 아니고, 년이지? 하고 묻자

무척 우습다는 듯, 하하, 아이는 배꼽을 쥐고 웃는다

이런 것은 년으로 셈하는 거야, 하며 자신있게 대답한다

내가, 내 생각엔 우린 몇 생에 걸쳐 알았던 것 같은데, 하자


말한다. 나는 이전에 지구에 태어난 적이 없어.

(날은 추웠고 우리는 배가 고팠다) 다음엔 네가 엄마 해라

하고 말하자.

그런 일은 없을 걸, 한다, 바람 몰아치는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엄마와 아이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고 있나보다. 겨울이다. 가로수 잎들은 지고 둘은 춥고 배가 고프다. 모든 것은 결국 죽는 거라고 엄마가 말하지만 소녀는 죽음을 믿지 않는다. 소녀는 자신만만하게 수 천년을 건너는 환생과 지구 밖의 생을 이야기 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환생을 믿는 소녀가 삭막한 겨울의 바람에 맞서 환상의 큰 세상을 열고 있다. 그 세상의 방대한 쓸쓸함과 대비되는 아이의 목소리는 귀엽고 튼튼하다. 지구는 처음이라고 말하는 아이, 이 구김살 없는 상상력을 현실은 언제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임혜신<시인>

<Marie How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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