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엇이 강한 군대를 만드는가

2017-06-28 (수) 12:00:00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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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나온 한국의 군 관련 뉴스 두 개가 눈길을 끈다. 하나는 사병들의 대폭적인 봉급 인상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현직 사단장인 육군소장이 사병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갑질과 폭행을 저질러 왔다는 보도다. 봉급 인상에 따라 현재 월 21만원인 병장의 봉급은 내년도에 최저임금의 30%에 해당하는 월 40만원으로 대폭 오르게 된다. 그들이 국가를 위해 바치는 헌신의 대가와 기회비용의 보상치고는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니지만 그래도 올바른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조치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병들에 대한 장군의 갑질과 지속적 폭행 소식은 이런 긍정적 평가와 낙관적 전망에 찬물을 끼얹는다. 군 최고 엘리트라 할 만한 현직 사단장이 아무런 힘도 없는 일개 병사들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괴롭힌다는 것은 약한 가족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폭력가장의 행태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문제는 비뚤어진 계급의식에서 비롯된 이런 행태와 문화가 대한민국 군대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계급이 이등병이고 사병일 뿐이지 인간의 등급이 그런 게 아님에도 한국 군대에서는 계급이 구성원들의 24시간을 지배하고 결정하는 신분이 된다. 밤늦은 시간에 장군의 술상을 차려야 하고, 동작이 굼뜨거나 실수를 했다고 상급자에게 폭행을 당하면서도 아무 말 할 수 없는 것이 한국군대의 실상이다.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계급의식에 빠져있는 상관들에 의한 괴롭힘과 폭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계급은 지휘체계를 위한 구분일 뿐 신분이 아니다. 그런데도 신분의식이 군대에 만연해 있는 것은 잘못된 일본 군국주의 영향 탓이 크다. ‘가학적 성향’으로 규정할 수 있는 일본 군국주의 문화는 해방 후 한국군에 고스란히 배어들었다.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은 군사독재가 이어지면서 직장 등 사회전반으로까지 확산됐다. 부하들에 대한 상사의 갑질과 정서적 학대는 너무나도 흔한 일이다. 그 어느 곳 보다도 지성이 살아 숨 쉬어야 할 대학사회조차 그렇다.

이런 군사문화는 사병들을 일개 ‘소모품’ 정도로 여기는 사고에서 비롯된다. 사병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는 이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척도라 할 수 있다. 기자의 병장시절 한 달 봉급은 3,900원이었다. 당시의 경제를 감안하더라도 형편없는 처우였다. 처우는 가치를 보여준다. 객관적 가치는 아닐지라도 “어떻게 여겨지는가”라는 주관적 가치를 드러내 주는 건 틀림없다.

강하다고 평가 받는 군대들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상관의 지휘 아래 훈련은 빡세게 하지만 구성원들 간에 차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일례로 한국군은 사병과 간부, 장교, 장성의 식당을 구분해 운영한다. 이런 사례를 다른 나라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평소의 이런 분리와 계급의식이 전쟁터에서 전투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스라엘 군대를 보자. 이스라엘 장교들은 전쟁터에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지 않는다. 대신 “나를 따르라”고 소리친다. 1973년 4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 군 전사자들 가운데 24%가 장교였다. 장교와 병사들 간 차별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상관에 대한 존경은 어깨 위 계급장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지휘관의 인품과 평소 행동을 보며 절로 갖게 되는 것이다. 계급을 앞세워 부하들을 괴롭히고 폭력까지 행사하는 지휘관에게 아름다운 젊은이들의 생명을 맡겨야 한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불편하다. 이런 지휘관들에게서는 명예의식을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일반 직장의 못난 상사와 똑같다.

명예라는 가치를 목숨처럼 여기는 지휘관과, 그런 지휘관을 따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부하들로 이뤄진 군대라야 강군이라 할 수 있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는 게 국방개혁의 전부가 아니다. 계급을 신분이 아닌, 역할의 차이로 인식하는 프로페셔널리즘 문화가 대한민국 군에도 뿌리를 내려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군 개혁의 출발점이며 문민통제가 시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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