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못 위의 잠’

2017-06-22 (목)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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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지붕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 봅니다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 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 흙바람이 몰려 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아버지 병실에서 이 글을 쓴다. 밤은 깊고 TV는 혼자 웅얼거린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힘들다 말하지 않으시던 아버지는 병상에서도 힘들다 하시지 않는다. 눈이 마주칠 때 마다 미소 지으시는 아버지는 지금 많이 아프시다. 잠잘 곳 다 새끼들에게 내주고 못 위에서 자는 새처럼 작은 침대 위에서 여느 때보다 작게 잠들어 계시는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아직은 따스한 잠에 기대어 연약한 나는 무릎 꿇어 기도한다. 신이여, 자비를 베푸소서.임혜신<시인>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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