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화(消化)’

2017-06-15 (목) 12:00:00 차창룡(19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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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내 입구가 몹시 혼잡하오니

다음 손님을 위해서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승객 여러분

봄 여름 가을

입구에서 서성대고 계시는

승객 여러분

입구가 몹시 혼잡하오니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갈 봄 여름 없이

가을이 옵니다

다음 손님을 위해서 조금씩

겨울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정류장은 봄입니다

차창룡(1966- ) ‘소화(消化)’ 전문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버스를 타고 시간을 여행하는 관광버스로 비유한 것이 참 독특하다. 겨울이 오고 있으니 온 세상이 휴식 상태로 들어가야 하는데 버스 입구에 서성거리며 사람들은 여전히 혼잡을 떨고 있다.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이고 모두 버스를 다 타야 겨울의 왕국으로 갈 수 있다. 문 탕 닫아걸고, 아무도 없이 텅 빈 빙설의 세상으로 가야한다. 차장께서 이렇게 밀어대니, 승객들은 하나 둘 버스에 오르고 조용해진 세상이란 버스 흰 눈에 덮여 봄으로 한 몇 달, 겨울이라는 시간 여행을 하리라. 임혜신<시인>

<차창룡(19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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