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극장에서는 소수의 특별한 청중만을 위한 오케스트라 선율이 우아하게 울려 퍼졌다. 바다 끝 언덕에선 곡예 편대가 아슬아슬하게 축하 비행을 펼쳤다. 반대로 언덕 아래 해변에선 그들만의 잔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불평등과 기후변화 등 세계적 현안을 어느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는(의지가 없어 보이는) 지도자들을 조롱하는 퍼포먼스도 이어졌다. 지난주 말 외신이 전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모습이다. 배경은 바로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의 작은 도시 타오르미나다.
3000년 문명이 응축된
타오르미나(Taormina)
시칠리아 동부 메시나에서 카타니아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작은 산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얹혀진 마을과 마주한다. ‘천공의 성’을 연상시키는 산정마을 카스텔몰라(Castelmola)다. 타오르미나는 바로 아래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또 그 아래 해안은 지아르디니 낙소스(Giardini Naxos)다. 이곳에서 올려다 보면 고풍스러운 타오르미나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해발 200m가 조금 넘는 언덕이지만 길은 가파른 경사를 지그재그로 오른다.
서양사에 문외한이라도 ‘낙소스’라는 지명에서 그리스의 향기를 감지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곳은 기원전 734년 그리스인이 이주한 곳이다. 17세기까지 카르타고, 로마제국, 이슬람제국, 노르만과 스페인 아라곤 왕국,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 등 이민족의 침략과 지배가 끊이지 않던 땅이다. 이후 19세기부터는 유럽인들의 인기 휴양지로 자리잡았다. 유명 작가와 작곡가, 영화인, 철학자 등에 깊은 영감을 준 도시로도 명성이 높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 러시아의 니콜라스1세 황제, 독일의 괴테, 니체, 바그너는 물론 배우 오드리 헵번, 소피아 로렌,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도 머물렀던 곳이다.
타오르미나가 유럽에 널리 알려진 건 독일의 화가 오토 겔렝의 공이 크다. 시칠리아 기념엽서나 관광 안내책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진이 고대 그리스 극장에서 찍은 풍경이다. 폐허가 된 극장 회랑 너머로 코발트 빛 바다, 연두색 들판, 울창한 숲이 완만하게 이어지고, 꼭대기에는 흰 연기를 내뿜는 눈 덮인 에트나 산이 군더더기 없이 산뜻하다. 겔렝이 타오르미나의 이 ‘그림 같은’ 풍광을 화폭에 담아 베를린과 파리에서 전시했을 때 유럽인들은 ‘상상력이 지나치다’고 비난했다.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겔렝은 ‘그곳에 가 보라, 사실이 아니면 내가 경비를 다 물겠다’고 응수했단다.
그리스 극장은 타오르미나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다.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인이 건설했고, 현재의 모습은 로마시대에 복원한 것이다. 로마시대 공연장이 원형극장인데 비해 그리스의 반원형극장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극장이 위치한 곳은 도시의 동쪽 언덕 끝자락이다. 객석에 앉으면 이오니아의 푸른 바다와 지아르디니 낙소스의 하얀 해변, 그리고 바로 옆으로 타오르미나의 고풍스러운 주택이 무대의 배경으로 펼쳐진다. 일부 부서진 모습 그대로 요즘도 수시로 공연이 열리고 있다. G7 정상회의 공식 기념사진을 촬영한 곳도 바로 여기다.
타오르미나의 또 다른 매력은 외부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아기자기한 골목과 상가다. 집들이 가파른 언덕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 터가 넓지 않은데도, 도시 입구부터 그리스 극장에 이르는 약 1km 거리는 의외로 넓고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다. 그 양편으로 기념품 상점, 카페, 호텔 등이 빼곡히 들어서있다. 이 거리를 중심으로 위 아래로 작은 계단식 골목이 또 여러 갈래 이어져 있다. 도자기 화분으로 장식한 골목마다 정겹고 아기자기하다. 시간을 내 꼭 구석구석 돌아보고, 전망 좋은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나 맥주도 마셔 볼 것을 권한다.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듯,
시원의 땅 에트나(Etna)
타오르미나의 멋진 배경이 된 에트나 산(3,375m)은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이 나있다. 에트나는 고대부터 최근까지 끊임없이 용암이 분출했던 활화산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가장 무서운 괴물 티폰을 묻었다는 곳,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이 있는 곳이라고 언급되는 산이 바로 에트나다. 정상뿐만 아니라 측면 분출도 잦아 2008년에는 주변에 5개의 분화구가 새로 만들어졌다. 가장 최근인 2012년에는 용암분출로 인근 카타니아 공항이 수차례 폐쇄되기도 했다.
주차장과 편의시설이 들어선 해발 2,000m 지점까지는 차량으로 오르고, 이곳부터 정상 부근까지는 케이블카로 연결된다. 아래서 볼 때 흰 연기를 내뿜는 꼭대기는 삼각뿔 모양이지만, 에트나가 불덩이를 토해내 만들어진 땅은 둘레가 140km에 이를 정도로 넓다.
길은 카타니아 외곽(한라산으로 치면) 중산간 마을을 지나 구불구불 이어진다. 처음에 원시림처럼 울창한 숲은 고도가 높아지고 현무암 평원 지대에 이르면 키 작은 관목 숲으로 변하며, 주차장이 가까워지면 나무 한 그루 없이 지의류만 듬성듬성 보인다. 낙진으로 짙은 회색으로 변한 땅에 봉긋한 초록 이끼더미가 무덤처럼 이어져 있다. 그 사이 화산분출로 사라진 마을을 증명하듯, 듬성듬성 버려진 집들도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121년 화산 분출로, 콜로세움 다음으로 큰 카타니아의 원형극장이 완전히 파괴됐고 용암은 바다에까지 흘렀다. 1669년 대폭발 때도 도시 일부가 완전히 용암에 덮였다. 그럼에도 화산재는 비옥한 토양을 만들었고,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까지 더해 일대는 최적의 포도 생산지가 되었다. 카타니아는 화산과 지진이라는 대자연의 파괴를 딛고 끊임없이 재건한 도시인 셈이다.
에트나 주차장은 실베스트리(Silvestri)라는 작은 분화구와 바로 붙어 있어 힘들이지 않고 생생한 화산의 흔적을 돌아볼 수 있다. 일대가 온통 잿빛인 가운데서도 분화구는 뜨거운 불덩이가 막 식은 듯한 검붉은 바위와 흙으로 덮여 있다. 1시간여 버스 여행으로 낯선 행성에 발을 디딘 듯 이질적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살아있는 지질 박물관 투어다. 날은 맑은데도 연무가 짙어 시야를 가린 건 오히려 다행이었다. 산 아래로 아스라히 펼쳐지는 문명의 흔적과 지중해의 푸른 물결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날아갈 듯한 바람 속에서도 오롯이 에트나의 신비로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곳 말고도 또 다른 분화구로 연결되는 등산로가 여럿이다. 일정을 여유 있게 잡고 더 많이 둘러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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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