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황 탈출, 레고의 변신에서 배워라

2017-06-07 (수) 12:00:00 류정일 경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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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님, 안녕하세요. 가끔 점심때 인사드리죠?

얼마 전 갔을 때는 이모님 식당 메뉴에 없는 만두를 신메뉴라며 시식하라고 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그 만두, 간은 짜고 피는 두꺼워 맛이 별로였습니다. 그날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바라 보셔서 바른 말씀을 못 드렸는데 이제야 지면을 빌립니다. 제가 하는 일이 풍월을 듣고 전달하는 거라 이모님께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좀 해드리려고요.

이모님, 블록 장난감 레고(Lego)라고 아시죠? 노란색이 돋보이는 4㎝ 크기의 사람 모양 미니 피규어가 지난해 1년 동안 전 세계에서 75억개가 팔렸다니 73억 인구보다 많았습니다.


이 장난감을 만드는 덴마크의 회사는 올해 설립 85주년이 됐습니다. 1932년 생겨나 1998년까지 무려 66년간 꾸준히 매출과 이익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1998년을 끝으로 판매가 뜸해지더니 급기야 2003년 한해 동안에만 30% 이상 매출이 줄었고 부채가 8억달러에 달했대요.

가족이 경영하는 이 회사는 비상이 걸렸죠. 여기서부터 레고가 저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데 경영학자들은 레고가 ‘무너진 블록 하나하나를 다시 쌓아올렸다’라고 평가합니다.

레고는 우선 선택과 집중에 나서죠. 놀이공원인 레고 랜드는 영국 회사에 매각했고, 최대 1만3,000개에 달했던 블록의 종류를 절반으로 줄였습니다. 이모님 식당에 비견하면 메뉴를 늘리기 보다는 오히려 기존 메뉴의 맛과 품질을 높이는 편이 나아 보입니다.

또 레고는 치밀하게 고객을 관찰해 성인 팬을 겨냥한 컨벤션을 열고, 어린이용 소셜 미디어인 레고 라이프를 선보여 아이들이 스스로 조립한 레고를 서로 자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이디어 공모전도 펼쳐 우승자에게 해당 제품 매출의 1%를 지급하는 파격적인 이벤트도 벌였습니다. 제부가 농장을 한다며 싸게 식자재를 들여올 수 있어 관련한 신메뉴를 개발했다는 이모님과 달리 레고는 소비자를 연구한 거죠.

제조업체가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는 곳에서 제품을 만드는 것과 달리 레고는 판매가 많은 곳에 공장을 뒀습니다. 레고를 구매하는 고객이 많은 시장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모님 입장에서는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대표 메뉴를 개선해 확실한 1등으로 만들고 여기서 파생된 메뉴로 손님의 입맛을 자연스레 확장시키는 전략이 유효해 보입니다.

레고의 지난해 매출은 57억달러, 이익은 18억달러에 달했습니다. 이모님 식당과는 당연히 큰 차이가 있겠죠. 하지만 변치 않은 공통된 가치는 변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8개의 돌기가 솟아오른 레고의 대표 블록 6개로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려 9억1,510만3,765가지나 됩니다. 그럼 과연 이모님 주방의 식재료와 양념으로 만들 수 있는 맛의 개수는 몇 가지나 될까요?

<류정일 경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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