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초대각료들의 청문회를 보면서 박근혜 정부 때의 일이 떠오른다. 당시 자랑스런 글로벌 인재로 주목받던 미주한인 김종훈 박사가 초대 미래부 장관으로 내정되어 국내에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물론 해외 한인사회에도 큰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쏟아지는 인신공격성 비판여론에 그는 결국 자진 사퇴하였고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창조경제는 김 박사의 낙마와 함께 초기 동력을 잃었다. 해외 한인사회의 실망감 또한 컸었다.
무엇보다도 한국이 해외의 한인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려는 마음가짐과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재외한인 동포 수는 남북한을 합한 인구의 10%를 상회하며 대부분이 한국에 매우 중요한 나라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지에 살고 있어 한국으로선 큰 자산이다. 이민 역사가 깊어지면서 이미 거주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그 나라의 국민으로 살고 있지만 본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변치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인물조차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는 고국에 돌아가 작은 헌신이라도 하기를 꿈꿨던 해외 한인들에게 안타까움과 실망감을 안겨준 것은 한국으로서도 큰 손실이다.
몇 년 전의 일을 굳이 꺼낸 것은 해외에 있는 한인 인재의 활용 문제는 과거형이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에는 더욱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내가 재직하는 스탠포드 대학에만 해도 전공별로 우수한 한인 학생들이 많이 공부하고 있다. 이들이 여러 분야에서 미국사회, 나아가 글로벌 사회의 인재로 발돋움해 갈 것을 생각하면 맘이 흐뭇하다.
이들 중에는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아 졸업 후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다며 나에게 조언을 구하러 오기도 한다.
나는 이들에게 한국에 가지 말고 미국에 남아 한국에 도움이 될 방법을 찾으라고 권한다. 막상 한국에 가면 적응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꼭 한국에서 일하며 살아야만 한국을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 주류사회에 남아 일하고 살면서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한국에도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가령 IT전문가라면 미국에서 커리어를 쌓은 후 한국의 젊은이들을 데려와 훈련을 시킬 수도 있고 한국의 관련 부처나 기업을 상대로 자문활동을 하면서 미국과 한국 사이의 일종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이 필요로 하는 것도 글로벌 네트웍을 갖고 있는 인재이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을 마친 후 미국으로 유학을 와 소위 ‘재미교포’가 되었다. 미국에 올 때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 당연히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고 커리어를 쌓는 동안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적잖이 고민도 했다. 하지만 이젠 미국 학계에 남아 한국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한국에 돌아가 ‘한국사람’으로 사는 것보다 더 의미있고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달 말에도 ‘한-미 서부지역 전략포럼’이라는 비공개 정책토론 모임 차 미국 내 동아시아 전문가 10여명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다. 내가 속한 스탠포드대 아태 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매년 2차례 서울과 스탠포드에서 열리는 포럼으로 노무현 정부 때 시작한 것이 이미10년이 넘었다. 쉽게 말하면 한미관계를 돈독히 할 방안을 모색하는 민간외교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학위 취득 후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아마도 이러한 한미 간의 가교역할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각 분야에서 발돋움하고 있는 한인 2, 3세를 보면 가슴이 뛴다. 이들은 해외 한인사회의 리더가 될 뿐 아니라 한국사회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들이다. 이들이 거주국의 시민으로서 각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그 전문성과 경험, 그리고 네트웍을 활용하여 거주국과 한국 사이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면 한국에게는 엄청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해외한인 넥스트 제너레이션에는 이러한 가교 인재들이 더욱 더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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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 /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