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태풍 전날의 따스한 날씨
무서운 천재지변으로 그 지나가는 지역을 엄청나게 초토화 시켜버리는 태풍이 오기 전날은 대게 역설적이게도 아주 평온하고 쾌청한 날씨라고 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필연히 다가오는 재앙을 상상도 못한채로 그날 밤 편안한 꿈속으로 들어간다.
앞으로 몇회에 걸쳐 미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대사변이었던 “대공황”에 대해서 써 보고자 한다. 이 대사변은 천재가 아니었고 인재이었다. 요즘처럼 대강이라도 장래를 “예측할수있는 기술이 미쳐 개발되기 전인 1929년에 시작된 미국의 태풍 “대공황”호는 미국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고 9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국역사에 깊은 흠집을 남겨 놓았다. 태풍 “대공황”호가 휩쓸고 간 미국에는 엄청난 폐허가 있었고 절망이 있었다. 황폐된 땅을 복구하고 재개발하기 위해서 미국민들은 절망속에서 5년여 동안 엄청난 고생을 하며 제반 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다시 해야 했다.
1929년 9월에 미국의 대공황이 시작되기 전 채 1년도 되지 않았던 1928년 12월초에 Calvin Coolidge 대통령은 국회에 보고한 그의 임기말 연두교서에서 미국의 경제에 대해서 아래와 같은 “터무니 없는” 낙관적인 평가를 하였다.
“아마 미국 역사상 현재 보여지고 있는 것처럼 밝은 경제전망을 보고 받은 국회가 아직까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적으로는 여러 해 계속된 최고도의 번영에서 오는 평온과 만족이 있고 국제적으로는 상호 이해에서 초래된 평화와 친선이 있습니다.”
위와 같은 말을 한 Coolidge 는 자신의 대통령 임기를 자화자찬하고 싶은 본능이 작동했던 탓이라고 짐작되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현실에 대해서 오판하고 있는 대통령을 갖는다는 것은 국민에게는 몹시 두려운 일이고 본인에게도 무척 불행한 일이다.
먹을 것이 없던 불란서 국민들이 “배고파서 못 살겠다” 라고 소리지르며 혁명을 시작하자 “저것들 배고프면 케이크 먹고 우유 마시면 될낀데 와 저리 시끄럽게 떠드노!” 라고 호통 치다가 결국 단두대에서 목이 짤려나갔던 Marie Antoinette 왕후처럼…
그런데 미국 국민들의 입장에서 더 두려해야 했던 일은 Coolidge 대통령 후임으로 취임한 Hoover 대통령의 정세 오판이었다. Coolidge 가 연두교서를 국회에 보고한 후 불과 3개월 만인 1929년 3월의 대통령 취임식에서 Hoover 는 아래와 같은 취임연설을 했다. Hoover 도 Coolidge 못지않게 정세오판을 했던 것이 잘 나타나는 것으로써 이제는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 … Ours is a land rich in resources, stimulating in its glorious beauty, filled with millions of happy homes blessed with comfort and opportunity. In no nation are institutions of progress more advanced, in no nation are fruits of accomplishment more secure, in no nation is the government more worthy of respect. No country is more loved by its people. I have an abiding faith in their capacity, integrity and high purpose. I have no fears for the future. It is bright with hope… “
이때까지만 해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후 1920년대에 미국은 최고도의 번영과 행복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29년이 미쳐 끝나기도 전에 증권시장은 붕괴되기 시작하고 실직률은 엄청나게 높아 졌다. 그 이후 몇 년 동안에 은행과 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수백만명의 실직자들이 속출하였다.
그 와중에서 미국사람들을 가장 절망 켰던 것은 철석같이 믿고 있던 “유능한” Engineer Herbert Hoover 대통령이 무섭게 다가오고 있는 경제공황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Hoover 대통령은 “미국의 경제가 근본적으로는 건전합니다. 이 위기는 곧 지나갈 것입니다” 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는 것같아 보였다. 그러나 위기는 계속 더 악화 되었고 미국은 최고의 번영에서 최악의 나락으로 곤두박질하기 시작하였고 많은 미국사람들은 미국의 경제제도가 완전히 붕괴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1920년대의 경기호황기 다웁게 마구 쏟아져 나오는 상품들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서 광고가 급속도로 활발해졌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14년 전에는 10억 달러에 그쳤던 광고비가 언론, 초대형 간판 등 각종의 광고매체, 특히 새로 생겨난 라디오 광고를 통해 1929년에는 30억 달러로 늘어났다.
소비자들에게 “건강을 위하여, 더 아름다워지기 위하여, 품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고가의 상품들을 구매하도록 자극적인 광고들을 해대었다. 수입이 충분치 않은 소비자들에게 구매를 촉진하기 위하여 “Buy now, pay later!” 라는 신용거래가 활발히 권장되기 시작하여 1928년에 이르러서는 미국사람들이 자동차를 월부로 사느라고 진 빚이 10억 달러나 되었다.
Hoover 가 대통령에 취임한 1929년 3월에는 모든 산업들이 번창하고 상업 거래도 활발하였고 실직률은 낮았으며 노동임금은 올라가고 있었고 물가는 안정상태이었다. 회사들은 크게 흑자를 내었으며 주주들에게 두둑한 배당금들을 주고 있었다. 이 전반적인 풍요로움에 미쳐 참여하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은 “내 차례도 곧 올 것이다” 라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Hoover 가 대통령에 취임한지 미쳐 1년도 되지않은 짧은 기간 동안에 증권시장은 붕괴 되었고 미국은 유사이래 최악의 대공황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어가기 시작했다. 1933년 3월 Hoover 임기가 끝날 때까지 대통령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공황을 벗어 나오지 못하자 미국 국민들은 정부, 기업가들, 사회, 경제제도, 더러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불신과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역사적인 대사변들이 일어나기 전에는 반듯이 그 사변들이 일어나도록 만든 여러 가지요소 (원인?) 들이오랜기간 동안 분명히 작동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학에 비해서 역사와 같은 사회과학에서는 어떤 사변이 일어나도록 만든 결정적인 요소 몇 가지를 뽑아낸다는 것이나, 더구나 그 요소들의 상대적 비중을 계량해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미국의 대공황이 왜,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를 밝혀 낸다는 일 또한 쉽고 명쾌한 해답이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된다. 대개 아래의 몇 가지가 주요 요인이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매요소에 대한 상세한 분석은 앞으로 더 계속해서 써보려고 한다.
첫째는 증권시장의 붕괴이다. 그러나 증권시장의 붕괴가 대공황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번개가 치고 뇌성이 울리는 것이 소낙비가 오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고 소낙비가 오도록된 기상 현상일때 번개와 뇌성이 한걸음 앞서 오는 것일 뿐인 것처럼 아마도 경제가 대공황이 불가피 하도록 여건이 되어 있을 때에 증권시장의 붕괴가 먼저 일어나는 현상이 라고 보는것이 옳을 듯하다.
둘째는 소득의 불균형, 부의 편재, 빈부간의 극심한 차이등을 “요소”들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제도에서는 이러한 불균등이 제도적으로 “불가피 하다” 라고 공인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대공황” 또한 불가피 하다는 논리가 성립 될 수 있다. 그래서 Karl Marx 는 “자본주의는 자체붕괴하게 만드는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제도이다” 라고 말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곤란하다.
셋째는 계속되는 과잉생산으로 시달리고 상대적 저소득과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농산업의 구조적 불황이다. 실제로 1930년부터 3년 여간 계속된 미국 중서부의 가뭄에서온 농촌의 파탄이 대공황을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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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환/ LI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