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이올린

2017-04-20 (목) 09: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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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신정연‘, Sound of leaves A’

바이올린은 안달루시아를 향해가는 집시들과 함께 슬피 우네.
바이올린은 안달루시아를 떠나는 아랍인을 위해 우네
바이올린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대를 위해 우네
바이올린은 되찾을 수도 있을, 잃어버린 고향을 위해 우네
바이올린은 저 먼 어둠의 숲을 태우네
바이올린은 수평선을 상처내고, 내 핏줄 속의 피 냄새를 맡네
바이올린은 환상의 줄에 묶인 말들, 물의 신음소리
바이올린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야생의 라일락 평원
바이올린은 사랑을 나누고 달아난, 여인의 손톱에 고통 받는 짐승
바이올린은 대리석 음계로 무덤을 짓는 병사
바이올린은 댄서의 발끝, 바람이 일으키는 심장들의 아나키
바이올린은 끝내지 못한 배너 아래, 그늘을 찾아드는 새의 무리
바이올린은 열정의 밤, 푸념하는 실크의 물결
바이올린은 지난 목마름을 거부당한 포도주
바이올린이 나를 ?아오네, 여기 저기, 내게 복수하려 하네,
바이올린이 나를 죽이려 하네, 만일 찾아내기만 한다면.
나의 바이올린은 안달루시아를 떠나는 아랍인을 위해 우네
바이올린은 안달루시아를 향해 가는 집시들과 함께 슬피 우네.

Mahmoud Darwish(1941-2008) ‘바이올린’ 전문
임혜신 옮김

팔레스타인의 민족 시인이라 불리는 다위시, 하지만 그 자신은 민족 시인이라 불리기보다는 낭만과 사랑의 시인이길 원했다고 한다.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강제이주를 당한 후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던 그의 시들은, 종교와 국경을 넘어 고향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의 상처 난 영혼을 어루만진다. 그가 노래하는 집시와 피 냄새와 아나키스트의 라일락 향기 같은 뼈아픈 낭만은 천국의 것이 아니라 버림받은 지상의 것들이다. 이 고통의 바이올린 소리가 당신을 울린다면 당신 또한 실향의 영혼을 가진 때문이리라. 잃어버린 에덴을 가진 때문이리라.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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