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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만리포 옆 천리포… 40년 비밀정원에 봄기운 꼬물꼬물

2017-03-03 (금) 태안=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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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국지 고향 충남 태안 여행…천리포수목원에서 신두리 해안사구까지

<충남 태안> 만리포 옆 천리포… 40년 비밀정원에 봄기운 꼬물꼬물

천리포수목원 민병갈기념관의 평화로운 모습. <태안= 최흥수기자>

끝이 보인다. 실제 기온보다 마음이 추운 겨울이었다. 한 기상정보회사에서 발표한 개나리와 진달래 개화시기는 서울을 기준으로 다음달 26일과 27일이다.

예년보다 며칠 앞당겨졌다지만 화사한 봄기운을 느끼려면 아직 달포는 남았다. 그래서 조금씩 꼼지락거리는 봄을 찾아 나섰다. 아직은 바닥부터 나뭇가지 끝까지 찬찬히 살펴야 보인다.

▦봄을 품은 보물창고 천리포수목원


어설피 봄비 흩뿌린 후 바람 끝은 더 차가워졌다. 바닷가 옆 수목원,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을 찾아간 날도 그랬다. 천리포해변의 물살을 뒤집어 놓은 바람은 솔숲을 지나면서 파도소리보다 더 크게 윙윙거렸다. 너무 서두른 게 아닐까 슬슬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수목원으로 들어서자 다행히 바람소리도 잦아들고, 초가인 듯 양옥인 듯 호수에 비친 민병갈기념관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민병갈은 천리포수목원 설립자다. 미국 펜실베니아 태생인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 1921~2002)는 1945년 미군 정보장교로 한국에 첫발을 디뎠고 1979년 민병갈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했다. 낚시를 하기 위해 태안을 즐겨 찾았던 그는 1962년 급전이 필요했던 주민의 부탁으로 처음으로 이곳 땅을 사들였고, 1970년 대한민국 최초로 사립수목원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식물전공자나 후원자에게만 공개해오다 2009년 생태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일반에 개방했다. 40년 만에 그의 비밀정원이 열린 것이다. 그것도 전부는 아니고 천리포수목원이 소유한 일대의 7개 구역 중 단 한 곳으로 그의 이름을 따 밀러가든(Miller’s Garden)으로 불리는 곳이다.

관람 탐방로는 민병갈기념관을 중심으로 주변 동산이 전부지만, 꼼꼼히 보려면 2시간 이상 걸린다. 그의 생전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1만5,800여 종의 식물이 사시사철 다양한 매력을 뽐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풀과 나무의 보물창고인 셈이다. 겉보기에는 상록활엽수와 침엽수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겨울 풍경도 삭막하지 않다.
<충남 태안> 만리포 옆 천리포… 40년 비밀정원에 봄기운 꼬물꼬물

새 봄을 알리는 으뜸은 연노랑이 돋보이는 납매(臘梅), 음력 섣달에 피는 매화라는 뜻이니 1월 한겨울이 절정이고 지금은 조금씩 지고 있는 중이다. 그 다음 눈길을 끄는 것은 풍년화. 일반적으로 풍년화는 꽃잎이 노랗지만, 이곳에서는 ‘밤스테드 골드’와 ‘헬레나’라는 이름을 가진 붉은 풍년화, 주황색 풍년화도 볼 수 있다. 지금 돌돌 말린 꽃잎을 앙증맞게 한 올씩 풀어내고 있다. 봄을 대표하기는 역시 매화다. 2006년 전남 장흥에 사는 김훈씨가 기증했다는 설명이 붙은 키 작은 매화나무 가지마다 팝콘 터지듯 하얗게 꽃송이가 벌어지고 있다. 샤워기를 연상시키는 뭉친 꽃송이에서 하나씩 꽃을 피우는 삼지닥나무, 연초록 머금은 노랑 꽃을 아카시아처럼 주렁주렁 매단 중뿔남천도 지금 천리포수목원에서 볼 수 있는 꽃이다.

바닥으로 눈길을 돌리면 봄 기운이 꼬물거리며 고개를 내민다. 방울토마토 만한 복수초는 여차하면 초롱처럼 환하게 꽃잎을 벌일 준비를 마쳤고, 알뿌리가 영하 40도에도 견딘다는 설강화도 밥알 같은 하얀 꽃봉오리를 내밀었다. 이제 막 짙푸른 잎을 밀어 올리는 수선화는 곧 정원 바닥을 하얗고 노랗게 물들일 것이고, 600여종의 목련도 4월의 꽃 잔치를 준비하며 봉오리를 부풀리고 있다. 각 나무마다 이름과 함께 식재한 연도를 표기해 놓은 점도 수목원을 둘러보는 재미를 더한다.

천리포수목원 옆은 만리포해변이다. 바다로 큰 바람구멍을 낸 대형 조형물 양편으로 2개의 비석이 비슷한 크기로 마주보고 있다. 하나는 ‘만리포 사랑’ 노래비. 가요무대 세대라면 경쾌한 리듬에 가슴 콩닥거릴 반야월이 작사한 노래다. 인천에서 이곳까지 여객선이 운항하던 시절도 있었다니, ‘똑딱선 기적 소리’가 그냥 나온 노랫말은 아닌 듯하다.

또 하나는 박동규 시인이 쓴 ‘누가 검은 바다를 손잡고 마주 서서 생명을 살렸는가’라는 긴 제목의 시비다. 2007년 12월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 이후 검게 변한 바다를 살리기 위해 힘을 모은 123만 자원봉사자의 헌신을 기리는 비석이다. 수 십 년 간 원상회복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년 만에 고운 모래에 하얀 파도 넘실거리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은 데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겼다.


원조가 유명하면 자연스레 아류가 뒤따르는 법. 만리포해변에서 북측으로는 차례로 천리포, 백리포해변이 이어진다. ‘만리(萬里)’가 실제 길이가 아니듯 천리, 백리도 다분히 충청도식 유머가 섞인 이름이다. 그러나 ‘은 모래’ 반짝이고, ‘산호 빛 노을’지는 넉넉한 품만큼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단순함으로 채우는 신두리사구

천리포수목원에서 멀리 않은 곳에는 텅 비어서 넉넉해진 풍경도 있다. 국내 최대 모래언덕, 신두리사구(沙丘)다. 규모에 대한 인식은 상대적이다. 종이도 벨 것 같은 모래능선이 끝없이 이어지고, 버기카를 타고 달리거나, 모래 썰매를 즐기는 드넓은 사막에 비하면 신두리사구는 보잘것없다. 입구에서 ‘모래언덕’과 ‘순비기언덕’을 돌아오는 탐방로는 약 2km,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넉넉하다. 탐방로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맨발로 고운 모래의 간지러운 촉감을 느껴볼 수 없는 것도 아쉬움이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모래 능선과 하늘이 맞닿은 풍경을 볼 수 있는 드문 장소이다. 순비기(바닷가 모래땅에 자라는 나무) 언덕에 오르면 신두리해변이 바다로 드넓게 펼쳐지는데, 썰물 때면 그 폭이 400~500m에 이른다. 바로 신두리사구의 모래 공급처다. 북서풍이 불 때면 자잘한 모래 알갱이들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스멀스멀 언덕을 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200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 전 지금 남아 있는 모래언덕보다 더 넓은 지역이 리조트 건설로 사라진 터여서 더없이 귀하고 신비스럽다. 안내서는 통보리사초 갯그령 등 갯가식물과, 개미귀신 표범장지뱀 등 해안사구의 생태에 대해 설명하지만 여행자에겐 작은 사막 하나면 충분하다. 세찬 바닷바람과 모래바람 맞으며 헛헛해진 가슴에 그 단순함만 채워오는 것이다.

▦태안에서 뭘 먹지?… 허드레 음식 게국지의 화려한 변신

서산과 더불어 태안의 별미는 단연 게국지다. 겟국과 버무린 배추에 꽃게 대하 민물새우 등을 넣고 시원하게 끓인 탕이다. 원조 게국지는 싱싱한 해산물 듬뿍 들어간 고급스런 음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태안 바다에는 칠게가 많이 잡힌다. 한번에 못다 먹은 칠게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염장하면 국물이 생기는데, 이 겟국으로 버무린 배추와 늙은 호박을 숭숭 썰어 넣고 끓인 음식이 게국지다. 재료도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을 사용한다. 속이 알찬 배추로는 김장을 담고, 게국지에는 겉이 푸릇푸릇한 허드레 배추를 쓴다. 고추도 끝물의 불긋푸릇한 것을 빻아 풋풋한 맛을 낸다. 이렇게 만든 게국지는 특유의 젓갈냄새와 짠맛 때문에 현지인이 아니면 소화하기 힘들었다.

요즘 식당에서 맛보는 게국지는 외지인의 입맛에 맞춘 ‘퓨전 게국지’인 셈이다. 꽃게 시세가 좌우하기 때문에 가격도 만만치 않다. 태안읍내 ‘밥줘’식당의 경우 2인용 소(小)자 게국지가 3만5,000원이다. 이것도 안면도 등 이름난 관광지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안흥성에서 가까운 근흥면 신진도의 ‘행복한 아침’ 식당은 홍합밥 굴밥 등을 잘하기로 소문나 있다. 홍합과 굴을 푸짐하게 얹은 고슬고슬한 가마솥 밥도 그만이지만, 함께 나오는 생선구이가 일품이다. 생선 종류는 딱히 정해진 것이 아니고 그날그날 직접 잡은 것으로 노릇하게 구워서 내놓는다.

choissoo@hankookilbo.com

<태안=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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