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러시안 커넥션

2017-02-21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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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언제나 그렇듯 황당무계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취임하면서부터 취임식장에 오바마 때보다 더많은 군중이 몰렸지만 언론이 사진을 편집해 적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느니 수백만 표의 불법 투표만 없었으면 자신이 총 유효표에서 힐러리를 앞섰다느니 등등 말도 안되는 억지를 썼던 그는 이날 회견에서도 이처럼 짧은 기간에 그처럼 많은 일을 한 대통령은 없었다는 헛소리를 지껄였다.

지난 수주 동안 벌어진 일이라고는 엉터리 행정 명령으로 회교권 7개국 국민들의 입국을 금지했다 시애틀 연방 지방법원과 샌프란시스코 연방 항소 법원으로부터 효력 정지 명령을 받은 것과 국가 안보 담당 보좌관인 마이클 플린이 개인 신분으로 러시아 외교관과 접촉한 후 부통령에게 허위 보고했다 쫓겨난 일, 불법 체류자 가정부 고용과 아내 폭행 전력이 있는 노동부 장관 지명자가 상원 인준이 불가능해지자 자진 사퇴한 것밖에 없는데 뭘 이룩했다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그보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의 승리가 로널드 레이건이래 선거인단 수로 최고라는 그의 주장이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총 유효표에서는 290만 표 힐러리 클린턴에 뒤졌지만 304명의 선거인단 표를 얻었다. 그러나 이는 1984년 레이건의 압승이후 치러진 7번의 선거 중 아들 부시가 대법원 판결로 가까스로 이긴 2000년 선거를 제외하고는 가장 적은 숫자다.


기자가 이 사실을 지적하자 공화당 후보 중에서 그랬다는 식으로 둘러댔지만 1988년 선거에서 승리한 아버지 부시는 426표를 얻었다. 기자가 끝까지 추궁하자 트럼프는 “잘 모르겠다. 그 정보를 누구한테 받았을뿐”이라고 얼버무렸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사실에 관한 무지와 오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러시아와 관련된 그의 발언이다. 그는 러시아 커넥션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러시아와 아무 관련이 없다. 러시아에 전화한 적은 수년간 한 번도 없었고 러시아 사람들과는 이야기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월스트릿 저널은 지난 4월 그가 세르게이 키슬리악 러시아 대사와 만났다고 보도했다. 이번에 플린을 낙마시킨 바로 그 러시아 대사다. 또 트럼프는 1987년 고급 호텔 부지 물색을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했으며 1996년에는 러시아에 콘도 건립을 추진했다. 2005년에는 뉴욕 개발업자에게 모스크바 트럼프 타워 건립을 위한 탐사 용역 계약을 맺었다. 이중 성사된 것은 없으나 러시아와 무관하다는 주장은 사실을 오도하는 것이다. 2008년 그의 아들인 도널드 주니어는 “우리 자산 중 상당수가 러시아에 있으며 여기서 많은 돈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 캠페인 전국위원회 의장을 맡았던 폴 매너포트는 친러 인사인 빅터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부터 1,200만 달러의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작년 8월 의장직을 사임했다. 그리고 올 2월에는 트럼프의 국가 안보 담당 보좌관인 플린이 러시아 대사와 불법으로 접촉하고 거짓말을 했다 쫓겨났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중 러시아 정보 당국이 클린턴이 삭제한 3만 통의 이메일을 해킹해 공개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러시아는 1945년 제2차 대전 후부터 1991년 붕괴할 때까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해 온 최대 적국 소련의 후신이고 그 대통령으로 있는 푸틴은 크리미아를 무력으로 점령한 후 합병하고 우크라이나를 반토막내 삼키려하고 있으며 나토 회원국인 발트해 연안국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푸틴은 정적과 체제 비판 언론인을 암살하는 것을 식은 죽 먹기로 하는 인물이다. 그런 나라와 그런 나라 대통령에게 미국 선거 개입을 촉구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미국을 위해 싸우다 포로가 돼 온갖 고초를 겪은 존 매케인을 비롯, 모욕하지 않는 인물이 없는 트럼프가 푸틴에게만은 유독 관대하다. 트럼프가 만약 선거 때 러시아의 도움을 받고 대통령이 된 후 러시아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면 이는 단지 탄핵으로 그칠 일이 아니라 반역죄로 처단해야 할 일이다.

리처드 닉슨은 1972년 선거에서 워싱턴과 한 개 주를 제외한 49개 주에서 압승을 거뒀지만 거짓말을 일삼다 불과 2년 뒤 쫓겨났다. 선거도 겨우 이기고 닉슨보다 훨씬 질이 나쁜 거짓말이 몸에 밴 트럼프가 과연 2년을 버틸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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