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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 5개국 여행기① 국민 행복지수 가장 높은 바이킹의 후예들

2017-02-03 (금) 권태진 ‘빛과사랑’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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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5개국

▶ 국민 대부분 루터란교 속해있지만 교회출석은 극소수

스칸디나비아 5개국 여행기① 국민 행복지수 가장 높은 바이킹의 후예들
스칸디나비아는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사람들의 생활은 어떨까? 시간에 쫓겨 짧은 기간 아내와 다닌 여행이 대부분이다. 홀로 여행을 떠날 때 자유롭고 선택이 많다.

스칸디나비아 여행은 홀로 가고 싶었던 곳이지만 단체 여행에 참가했다. 그러나 말로만 듣던 복지국가들을 눈으로 보게 된다는 것에 기대가 있었다. 22명으로 구성된 관광단은 콜로라도 주 덴버 미션여행사와 뉴욕 플러싱 소재 엠파이어여행사의 고객들이다. 주부 자영업 전문직 은퇴자등 여려 형태로 연령도 50대부터 70대로 다양하다. 관광안내 여행사는 영국 워털루 소재 투어유럽피안.

■복지국가
스칸디나비아 5개국은 복지국가(welfare state)의 모델로 불리고 있다. 복지국가란 국민의 사회적 경제적 복지를 보호하고 돕는데 국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형태의 나라를 말한다. 복지국가는 기회의 균등, 부의 동등한 균배, 복지생활에 능력과 기회가 없는 사람에 대한 정부책임, 이 세 가지의 원칙에 근거를 둔 것이다.


경제적인 체제에서 자본주의(capitalism)와 사회주의(socialism)는 서로 반대되는 형태다, 중요한 요소는 경제적 동등과 정부의 역할의 문제다. 사회주의자들은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빈부차이를 줄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 반면에 자본주의자들은 경제적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자유 시장에 맡기는 것이 사회에 유익하다고 믿는다.

일반적으로 복지국가는 사회민주주의와 자본민주주의로 분류된다.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사회보장제도가 가장 잘된 나라들이다. 제일 잘사는 나라들로 알려져 있으며 국민의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나라들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사회복지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지만 사회보장 문제 보다는 메디케어 등 빈곤자를 돕는데 치중되었다. 부의 균형이나 기회의 균등등 사회주의 복지와는 반대되는 자유 시장경제에 입각한 자본주의 복지국가의 형태다.

미국대통령선거 예비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돌풍을 일으키고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라고 공언하고 사회주의 복지국가를 제창했다. 그러나 그의 제창은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으로 유감스럽게도 빛을 읽고 말았다.

■스칸디나비아국가들
관광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칸디나비아의 역사 정치 문화를 조사해 보았다.

스칸디나비아국가라면 원래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3개국을 말한다. 노딕 국가는 북유럽과 북대서양에 있는 지리적 문화적으로 동일한 지역에 있는 국가로 스칸디나비아 3개국을 포함한 핀란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들이다. 지역상으로 스칸디나비아 국가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뿐이었으나 현제는 핀란드와 아이슬란드도 스칸디나비아국가에 속한다. 지금은 스칸디나비아 국가와 노딕국가를 구별 없이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바이킹(Viking)의 유산과 문화를 받았다. 덴마크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중 가장 영토가 작은 나라다. 평지가 많아 농업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북 유럽에서 가장 좋은 해수욕장을 가진 나라다. 노르웨이는 깊은 피오르드(fjord)와 장엄한 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어업이 유명한 나라다. 스웨덴은 인구나 지역으로 스칸디나비아 국가 중 가장 큰 나라로 많은 작은 섬들이 해안선에 깔려있다.


스웨덴 군도는 발틱해에서 두 번째 가장 큰 군도다. 스웨덴에서 노벨상이 탄생했다. 핀란드에도 수천 개의 섬과 호수가 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 중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소련과 접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화산과 빙하 온천과 폭포로 유명하며 스칸디나비아와 멀리 떨어져 있는 섬나라다.

■스칸디나비아 역사.종교.이민
스칸디나비아 역사는 바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역사다. 스칸디나비아 3개국은 게르만 언어인 Old Norse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들이다. BC 7000년경에 사냥꾼이 북부 스칸디나비아에까지 올라왔다. BC 5000년 기간에는 북부지방 사람들이 남쪽으로부터 도자기 기술을 배웠으며 BC 3000년경에는 북부에서도 농사를 경작했다.

게르만족이 서서히 남쪽으로 향하여 유럽대륙으로 전진하게 되었다. 이 기간 동유럽은 스칸디나비아의 영향을 받았다. BC 113-101년에 현 덴마크 Jutland 지역에 살고 있던 게르만 종족들이 로마공화국을 공격하여 로마를 크게 손상 입힌 일이 있었다.

바이킹시대. 고고학적 관찰은 4세기의 스칸디나비아는 점차로 부유해지고 있었던 곳으로 증명되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이주자가 늘어나게 되었다. 서로마가 멸망한 후 8세기에 바이킹시대가 시작되었다. 바이킹은 750년부터 1066년까지 300년 이상 스칸디나비아를 지배했다. 이들은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포함한 북해와 그 주변 해상 노딕지역을 항행하는 항해자들이었다. 이들은 스칸디나비아를 본거지로 삼고 세계 여러 나라를 침략하고 정착하거나 식민지를 만들기시작했다.

처음에 교회와 사원과, 마을과 도시를 을 약탈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상인이기도 했고 수예공이기도 하여 그들이 만든 물품을 마을이나 시장에서 팔았다. 아일랜드와 러시아 등에 무역식민지를 설립하기도 했다.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 정착하였으며 북미에 진출한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그들은 세계를 침략하고 현 터키, 소련. 발틱 국가, 폴란드, 독일, 프랑스, 영국 과 그린란드까지 진출했다. 스칸디나비아에 왕국들을 세우고 기독교인으로 전향되었다. 스칸디나비아에 최초의 도시가 형성되고 화폐가 등장하였다.

1397-1520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세 국가를 묵은 연합의 연속 시대였다. 연합기간 각 나라의 주권은 포기했지만 독립은 포기하지 않았으며 각국의 이해관계가 달라 1430년에서 연합이 끝난 1523년까지 연합을 저해하는 분쟁이 발생했다. 결국 Kalmar전쟁이 유발했다.

칼마는 스웨덴 남북에 있는 도시로 덴마크의 접경에 있는 중요도시다. 칼마전쟁은 1611-1613년 3년 전쟁으로 덴마크-노르웨이 연합국과 스웨덴간의 전쟁이다. 덴마크-놀웨이의 승리였지만 그러나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다. 스웨덴을 다시 연합시킬 수 없었다.

18세기에 북부 대전. 북부대전 (Great Northern War)은 소련, 덴마크-노르웨이 색소니-폴란드 연합군과 스웨덴의 전쟁으로 1700년에 시작하여 1721년에 끝난 대 전쟁으로 양측의 조약으로 끝났다. 그 결과 발틱해에서 소련이 제패하여 유럽정치의 강력한 파워가 되었다. 18세기 덴마크와 스웨덴은 국력이 확장되고 세계 몇 곳에 식민지를 가졌다. 미국 델라웨어 주는 1638-1655년 간 스웨덴의 식민지였다.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이전쟁으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갈라져 서로 적대국이 되었다. 나폴레옹전쟁은 프랑스연합국과 영국연합국간의 대전으로 1803년 발발하여 1815년에 종식된 12년간의 대 전쟁이다. 덴마크-노르웨이는 중립을 지키기를 노력했지만 영국이 덴마크 해군을 공격함으로서 나폴레옹에 가담했다. 스웨덴은 1813년 영국과 영국연합국에 참여하여 나폴레옹에 대항했으며 대가로 노르웨이를 약속 받았다.

전쟁은 영국과 연합군의 승리했으며 1914년 1월14일 Kiel 협정으로 전쟁이 종식되었다. 협정에 따라 스웨덴은 전쟁참여의 대가로 노르웨이를 인수받아 두 나라가 연합하도록 되었다. 협정의 조건은 노르웨이의 광범위한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스웨덴왕은 노르웨이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1814년 7월 27일에 군사행동을 개시했다.

스웨덴의 승리로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11월 4일 노르웨이는 스웨덴과 연합하는 연합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연합에 불만이 늘어나자 연합한지 90여년이 지나 노르웨이 의회는 1905년 6월 7일 분할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곧 스웨덴은 노르웨이와 협상으로 노르웨이가 독립적인 왕국임을 승인했다.

1808년 핀란드 전쟁. 이 전쟁은 스웨덴과 소련간의 1년반 기간의 전쟁으로 소련의 승리로 끝났다. 결과는 스웨덴의 영토의 일부로 동쪽 3분의1을 차지했던 핀란드가 소련의 자치구가 되었다. 핀란드는 1917년 독립이 될 때까지 소련제국의 일부로 남았었다.

제1차 대전. 당시 스칸디나비아 3개국은 중립을 지켰다. 영국은 스칸디나비아의 독일과의 무역을 차단하기 위해 독일을 봉쇄했다. 이지역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이러한 어려움을 영국과 무역협정을 맺음으로써 어려움을 극복했다. 노르웨이는 영국에 물자를 공급하는 상선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독일의 공격으로 많은 피해를 보기도 했다.

2차 대전. 전쟁시작에 즈음하여 영국은 독일이 스칸디나비아를 침범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독일은 영국이 그 지역에 기지를 구축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독일은 1940년 4월 9일 영국에 앞서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동시에 침공했다. 스칸디나비아 3개국 중에서 스웨덴은 침공을 면했으며 명목상으로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독일과 성공적으로 평화를 유지하면서 독일이 원하는 자제를 공급하였다.

그러나 스웨덴은 때때로 연합군을 돕기도 했으며 특히 유대인들이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 탈출하는 것을 도왔다. 1945년에 시작하여 1991년에 끝이 난 냉전기의 스칸디나비아에서는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는 서방의 북대서양조약기구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스웨덴과 소련과 접해있는 핀란드는 중립을 지켰다.

종교. 모든 국가가 개신교 특히 루터란 교인들이다. 이들 5개 국가 모두가 980-1000년 사이 바이킹시대에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며 스웨덴은 1066년에 제일 늦게 받아들였다. 기독교의 채택은 바이킹 사회가 유럽대륙의 종교적 문화적 구조로 흡수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개신교의 종교개혁이 1530년대에 스칸디나비아에 들어 왔다. 곧 스칸디나비아는 루터란 교회의 중심지의 하나가 되었다.

천주교는 덴 마트를 제외하고 거의 사라졌다. 최근에 이민자들이 들어오면서 다종교로 바뀌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국민의 대부분이 루터란 교에 속해 있다. 그러나 매주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것은 스칸디나비아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전반적인 현상이다.

이민. 1960년 후반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대량 이민했으며 이 현상은 1900년 초까지 계속되었다. 이들은 캐나다를 위시하며 오스트랄리아 아프리카 와 뉴질랜드 등으로도 이민을 갔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지방 출신으로 보다 좋은 농사와 경제적 기회를 위해 떠났다.

1850년 이후 스칸디나비아 5개국인구의 3분의 1이 이만을 떠났다. 1820년과 1920년 사이 2백만 명 이상의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 미국에 정착했다. 1백만 명이 스웨덴에서, 73만 명이 노르웨이, 30만 명이 스웨덴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때 노르웨이의 미국이민자 수는 당시 노르웨이 인구의 80%에 해당할 만큼 놀라운 숫자였다.

북미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곳은 미네소타, 아이오와, 다코타, 위스컨신, 미시건이었으며 캐나다 평원과 온타리오였다. 미네소타의 미식축구단의 이름이 바이킹이다. 미네소타에 바이킹 후예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 아일랜드, 독일이 미국으로 대량 이민한 것은 1840년대였다.

■스칸디나비아의 국민성
스칸디나비아는 사람들은 동질성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서로 유사한 관습과 예의를 지킨다. 그러나 각국이 강한 국민적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 애국적이고 자기 국가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들이 문화적으로 가장 유사한 점은 모두가 평등주의자들이며 남을 용인하며 언행을 조심하면서도 캐주얼 하며 실용적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진보적이며 겸손하다. 부나 명예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없으며 부자나 성공한 사람에 대한 선망이나 존경심은 비교적 없다. 그러나 운동을 좋아하는 이들 국민들은 운동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거나 성공한 사람에 대하여는 부러워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국가들은 공동의 역사와 유사한 문화와 언어(핀란드 언어제외)를 갖고 있으며 특히 바이킹의 본산지로 그의 역사와 문화를 받은 국가들이다. 이들 모든 국가들이 개신교(루터란) 국가이며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동일한 철학을 갖고 있다. 각국의 사람들이 사회주의 이념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경제체재도 사회주의 복지국가체제를 받아들이고 있다.

나라 간에 특히 덴마크와 스웨덴 간에는 수세기에 걸쳐 전쟁과 분쟁이 빈번하였지만 이러한 감정에서 벗어나 우호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키가 크고 혈식이 희며 파란 눈과 은발과 금발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란 공통점도 있다.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영어가 제2외국인데도 영어에 모두가 능통하다.

■복지국가의 출발과 진보적인 사고
2차 대전 후 스칸디나비아 형(Scandinavia model)이란 말이 새로 생겼다. 스칸디나비아 형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복지정치’와 ‘정치진보’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이 개념과 명칭이 스칸디나비아의 사회와 정치제도라고 역사가들과 정치과학자들이 주장해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은 그 개념을 광범위하게 사용함으로서 그 개념을 선전해왔다.

진보정신(progressiveness)은 단순히 생각(thought)이 아니다. 그것은 믿음(belief)을 의미한다. 즉 보다 좋은 것으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정신 능력을 말한다. 진보정신은 개인이나 단체로 하여금 창의적인 방법으로 행동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시도한다. 또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가가도록 노력하게 하는 하나의 도덕적 질 (moral quality)이다. 바로 스칸디나비아 형이 이러한 믿음의 대표다.

독일의 덴마크와 노르웨이 침범은 진보의 이미지를 수 년간 퇴보하게 했다. 2차 대전은 이 지역의 경제성장을 둔화시켰으며 사회변혁의 과정도 중단시켰다. 2차 대전 후 냉전시대에 스칸디나비아 모든 나라들이 다시 진보의 불이 붙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특별한 요소가 있었다. 첫째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민주주의 원칙이 그들의 헌법에 있었다. 그리고 개발된 제도와 함께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민주주의가 실천되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스칸디나비아의 정치문화가 진보사상에 도움이 되었다.

사회민주당이 정치현장에 지배적인 주도를 했을 뿐만 아니라 정당은 현대적 진보적 발전의 존재이유로 생각되었다. 1950-1960년 냉전시대에 미국은 스칸디나비아의 형식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변질될 것으로 우려하기도 했다. (Kazimierz Musial 의 “스칸디나비아 복지의 기원”에서 발췌)

<권태진 ‘빛과사랑’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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