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과 돈과 자기만의 방

2017-01-16 (월)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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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문인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에세이 ‘자기만의 방’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어느 여자이든 글을 쓰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는것은 물론 여성과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학자도, 예술가도, 정치가도, 학생들도 방해를 받지않고 집중할 수있는 자기의 방이 있어야 한다. 이제 ‘자기만의 방’이라는 말은 어느 한사람이 혼자 쓰는 방이라는 뜻을 넘어서,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이 되었다.

울프는 뛰어난 작가이면서 여성문제를 논리적이고 심도있게 분석한 여성운동의 선구자이다.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는 주장의 배경에는, 인류 역사상 남자들은 돈이 있었고, 여자들은 아이들밖에 가진게 없었던 관습을 지적했다. 남자들은 연구와 창작을 할 수 있는 조용한 서재가 있었는데, 여자들은 설거지거리만 수북히 쌓인 부엌밖에 없었다.

돈은 막강한 힘의 상징일뿐 아니라 위엄, 신뢰, 관대함, 세련된 매너 등을 자동적으로 동반하고 있다. 모두 남자들에게 적용되는 속성이다.


작년 내내 지겹도록 들었던 단어 중의 하나가 빌리어네어였다. 숫자 다음에 공이 9개가 따르는 수십억이라는 돈은 인격, 도덕, 지식같은 전통적인 덕목을 제치고, 세상 만사를 속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마술의 검으로 등장했다. 돈이 전부가 아니며, 돈만을 위해서 사는 인생은 한심한 인생이라는 이상론이 완전히 죽지는 않았지만, 이보다는 “나는 가난해보기도 했고 부자로 살아보기도 했지만, 부자로 살 때가 훨씬 좋다” 는 한 빌리어네어의 선언에 적극 동조하고 박수를 보내는 세상이 되었다는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울프가 여성들의 빈곤을 한탄했던 시대부터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세상의 부는 아직도 남자들의 독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년 경제잡지에 발표되는 빌리어네어 명단을 보아도 거의 98%가 남자들이다. 여성 빌리어네어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이들 여성 갑부의 대부분이 부모 또는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유지하고 증식한 경우이다.

한가지 반가운 현상은 여성창업자들의 숫자가 지난 15년동안 54%가 증가했으며, 여성들의 특허 신청은 한세대 전보다 두배로 뛰었다는 사실이다. 장차 여성 빌리어네어들의 탄생을 촉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다져지고 있다.

현재 빌리어네어 중에서 “최연소, 여성, 자수성가” 라는 세가지 요소를 갖춘 기업가가 있다. 45세이고 세 아들의 엄마이면서, 일년 매상 4억 달러를 넘기는 속옷 스팽스(Spanx)의 단독 소유주이며 사장인 사라 블레이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플로리다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7년 동안 팩스머신 판매원으로 일했던 평범한 여성이 어떻게 빌리어네어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가는 이제 널리 알려진 기업계의 성공실화이다.

지난 반세기동안 의사, 변호사가 여성들에게 안전하고 대접받는 전문직으로 선호되었고, 그 결과 현재 여성 의사, 변호사의 숫자는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같은 원리로 여성들이 월급 받는 입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월급을 주는 대기업가의 위치에 도전한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 빌리어네어들의 숫자 역시 눈에 띄게 증가할 것이다.

“여자들도 대접받고 싶으면 돈을 버세요.” 천박한 권고로 들릴수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블레이크의 경우는 운이 좋아서 성공한 극소수의 예라고 포기하지 말자. 행운은 준비된 사람에게 다가온다는 격언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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