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킹 목사를 생각하며

2017-01-16 (월) 정정숙 전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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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이다. 교사직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킹 목사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즐겼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100년이 되어도 미국에서는 여전히 교육이나 선거, 장소사용에서 합법적으로 흑인을 차별하는 주가 많았다. 이에 대항해 비폭력으로 민권운동에 앞장 선 사람이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이다.

킹 목사는 엄격한 목사의 둘째아이로 애틀랜타에서 태어나 15세에 대학입학을 했다. 남들보다 초등학교를 1년 먼저 입학하고 9학년과 11학년 두 해를 월반한 때문이다. 그는 19세에 사회학과 학사가 된다. 24세에 결혼하고 신학을 공부하여 25세에 목사가 되고 26세에는 조직신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공부를 마친 후 대학 때 만난 부인과 보스턴에 살았더라면 그의 일신은 참으로 편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흑인 동료들이 차별정책으로 고통받는 남부로 내려간다. 그는 조용히 목회에 전념하고 싶어 했지만 세상은 뛰어난 설교가인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로사 팍스로 시작된 버스 보이콧 사건이 터졌을 때, 흑인권리 옹호기관 지도자는 대대적으로 보이콧을 주도할 리더로, 26세 밖에 안 된 킹 목사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킹은 인종차별과 인종 분리정책은 하느님의 뜻에 위배된다고 여겼다. 버스 보이콧 운동에 앙심을 먹은 백인이 그의 집에 폭탄을 투하했다. 킹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대규모의 행진을 유도하고 유명한 연설 “내게도 꿈이 있습니다“로 이름을 날리자 FBI는 그를 주목한다. FBI는 그가 허락없이 행진했고 또 월남전에 반대했다고 해서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붙였다.

그가 역사상 최연소인 35세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상금 5만4,600달러를 민권운동에 기부한 것은 1964년이었다.

마틴 루터 킹은 자신이 민권운동을 하는 것은 흑인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차별행위는 그리스도인의 정신에 어긋나고 예수를 슬프게 하기 때문에 목사로서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도 대라“는 예수의 말씀에서 비폭력을 배웠고, 그 뒤로는 30년이나 영국에 비폭력으로 저항했던 인도의 간디에게서 감명을 받고 저항하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킹은 하루에도 200번 이상 전화와 편지로 협박을 받곤 해서 자신은 늘 40세까지도 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자신의 예감처럼 호텔에서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나오다 감옥에서 막 풀려나온 백인의 손에 의해 1968년 39세의 나이에 살해되었다. 당시 그의 부모는 둘 다 생존해 있었다.

그는 죽을 위험을 늘 감지하면서도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소신으로 살다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킹 목사가 살아있었더라면 올해 1월15일 88세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죽어서 더 강력하게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인종차별을 없애라고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애석한 젊은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소우주인 내 마음 안에서부터 사람을 차별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노력할 일이다.

<정정숙 전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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