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에서 삶을 노래하다
2016-12-05 (월) 11:23:19
▶ 16번째 시집 ‘연옥의 봄’ 펴낸 황동규 시인
“죽음이란 게 예전에는 상상력 속에 있었는데 이제 현실적인 일이 된 거죠. 3년 전에는 아픔이 주제였어요. 아픔을 통해서 삶의 기쁨을 얻어야 한다는 거죠. 이번 시집에서 죽음은 결국 삶을 삶답게 만드는 겁니다. 죽음을 극복하고 열심히, 힘차게 살아야 삶이 와요.”
‘즐거운 편지’의 시인 황동규(78)가 열여섯 번째 시집 ‘연옥의 봄’(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1958년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등단한 시인은 3∼4년에 한 권꼴로 시집을 엮는 왕성한 창작욕을 잃지 않고 있다. 3년 전 시집 ‘사는 기쁨’에서 ‘죽어서도 꿈꾸고 싶다’고 했던 노시인은 이제 ‘죽음은 꿈이 없는 곳’이라고 선언한다.
“반쯤 깨어보니 언제 스며들었는지/ 방 안에 라일락 향이 그윽하다./ 그대, 혹시 못 만나게 되더라도/ 적어도 이 봄밤은 이 세상 안에서 서성이게.” (‘연옥의 봄 1’ 부분)산책을 하다가, 뒷산을 오르다가 부음은 불시에 찾아온다. 아끼던 제자의 부음에 “벌써 가는 나인가 하다 정신이 번쩍”(‘그믐밤’) 든다. 두 살 어리지만 재작년에 먼저 떠난 고 김치수 문학평론가의 병상에서 두 발을 쓰다듬어 본다. “부끄럽다는 듯 네가 발을 움츠렸다./ 의식의 꼭지는 아직 붙어 있군!”(‘발’)점차 다가오는 자체 소멸, 자신의 죽음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새로 끼워넣은 안경 렌즈조차 석 달도 못 가 엉뚱한 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생에도 소멸에도 연연하지 않으면서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미 40대 중반에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풍장 1’)라고 당부하며 죽음을 관조하고, 또 맞선 시인이다.
“저세상에 들어서면/ 마취 않고 이 갈아대는 치과의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도 “저세상에서도 촬영금지구역이/ 점차 개방된다는 소문 있으니/ 스마트폰을 달랑 들고 갈 테다”(‘별사’) 농을 던진다.
시인은 하찮고 사소한 것, 심지어 아예 부재하는 것들에서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비 갠 뒤 힘겹게 움직이는 달팽이가 오히려 삶의 원리를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