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133 ) 제26대 Theodore Roosevelt 대통령③

2016-12-02 (금)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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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화당: 1901-1908)

대통령 암살로 불안에 빠졌던 미국민들을 안심이라도 시키려는듯 Teddy 는 취임 초 부터 대통령의 책무를 즐기며 잘 수행해 나갔다. 사실 그는 성격이 모든 일을 즐겨가며 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맡은 일을 해나가는 적극적인 사람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의출신성분 때문에 그가 일반국민들의 권익옹호를 위해서 투사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가 Square Deal 을 선언하면서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그의 결의를 공표한 얼마 후에 그의 결단을 사실상 집행해야할 심각한 일이 일어났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광부라는 직업은 저임금으로 착취당하고 또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미국에서도 당시 Illinois, Ohio, Pennsylvania, West Virginia 주등에 산재해 있던 석탄광산 에서 일해 오던 광부들은 20 여년간 한번도 임금인상이 되지 않았으며 광산들은 광부가 캐낸 석탄량을 속여서 임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현금대신 상품권을 주었는데 그 상품권은 광산회사가 경영하는 가게에서 비싼 값으로 파는 상품만을 살 수 있는 것들이었다.


광산들은 광부들의 안전에 소홀하여서 매년 많은 광부들이 사고로 사망하였는데 1901년에만 광산의 사고로 441명이 사망하였다. 광부들은 대개 새로 이민 온 사람들이었고 12개국의 다른 언어들을 사용하는 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드디어 1902년 5월에 John Mitchell 이 회장으로 이끄는 15만명 규모 의 United Mine Workers 는 처우개선을 위한 동맹파업을 단행하였다.

Mitchell 은 2대째 광부로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적에 사고로 사망하였고 그 자신도 12세부터 광부로 일해오던 사람이었다. 광산주들의 대표자는 “광부들의 권리와 이익은 노조가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광산을 소유하도록 특혜를 내려주신 기독교인인 광산주들이 할 일이다” 라고 냉소하면서 광부들이 파업을 중단하고 광산에 복귀할 것을 강요하였다.

파업이 10월까지 계속되자 미국민들은 석탄의 부족으로 철도운행이 중지되고 겨울난방 이 불가능해 질 수 있을 것을 알고 불안해 하기 시작하였다. “광산들은 광산주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광부들을 소유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라고 호통을 친후 Teddy 는 광산주들과 Mitchell 을 백악관으로 불러서 타협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광산주들이 노조와 타협할 것을 끝내 거절하자 Teddy 는 광산주들에게 “잘 알았소. 그러면 육군을 보내서 광부들을 대신해 채광하도록 할 수밖에 없겠구만. 그만들 가보시오.” 라고 말하였다. 이제 불똥이 발등 위에 떨어진 쪽은 광산주측이 되어서 10월 13일에 그들은 노조와 타협을 시작하겠다고 대통령에게 통보하였다.

광부들은 광산에 돌아가 일을 다시 하기 시작하였고 계속된 협상에서 결국 그들이 원래 요구하던 조건들을 거의 다 광산주들로부터 받아내게 되었다. Teddy 는 광부들이 그가 주장하던 “Square Deal” 을 받도록 후원해 주었으며 아무리 대기업들이 활개를 치는 시대 일지라도 정부가 일반 소시민들의 권익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었고 Teddy 행정부의 향후 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지향할 것임을 행동으로 잘 암시해 주었다.

“산넘어 산” 이라는 우리나라의 옛 격언이 있지만 광부파업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해결 하기 어려운 문제가 해결사 Teddy 의 손보아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거대 기업들의 불법적인 합병과 독점이었다. 이와 같은 자본주의의 병폐를 통제하기 위하여 Teddy 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20여년 전에 Sherman Antitrust Act 가 입법되어 있었으나 그 법이 제대로 집행되어오고 있지 않았다. Teddy 는 이 법을 강력히 집행하기 시작하였다.

미 서북부의 철도는 James J. Hill, Rockefeller, J. P. Morgan, E. H. Harriman 등의 네 거부 들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담합끝에 Northern Securities Company 이라는 지주회사 (Holding Company) 를 창설하였다. 지주회사는 다른 회사들의 과반수 주식을 소유함으로 서 그 회사들을 자회사처럼 운영하여 한 회사처럼 (Trust)운영하는 방법으로 독점기업 단속법을 슬그머니 피해가는 수단으로 많이 쓰이고 있었다.


철도회사들끼리 경쟁을 해오다가 이 지주회사가 설립되게 되었는데 그 결과는 북서부쪽의 철도운행을 이 지주 회사가 독점하게 되어서 철도 운임을 이 회사 마음대로 올릴 수 있게 되었다. Teddy 는 이 지주회사가 Sherman Antitrust Act 를 위반하였음으로 해산되도록 기소하였다. Teddy는 평소 당시 미국의 금융계를 주름잡고 있었던 J. P. Morgan 과 친분이 있는 관계이었으며 J. P. Morgan 의 개인적인 호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송을 끝까지 밀어부쳐서1904년에 연방대법원은 5대4로 이 지주회사의 해산을 명령했다.

대단한 결단이 필요했던 이 첫 test case 에서 승리하자 Teddy 는 유사한 성격의 탈법적 Beef Trust, Oil Trust, Tobacco Trust 등도 Sherman Antitrust Act 를 적용하여 해산하였다. 그 당시로는 Teddy 와 같은 용단이 있던 대통령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치적이었다.

Teddy 는 마음속으로 Trust 중에는 자본주의의 존속을 위해 꼭 필요한 자유경쟁을 저해하는 Bad Trust 가 있고 제품의 질을 올려주고 무절제한 가격 인상까지 막아주는 Good Trust 가 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는 Department of Commerce and Labor 를 신설하고 그안에 “Bureau of Corporations”를 설립하여서 Bad Trust 는 해산하도록 하였고 Good Trust 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단속하 도록 하였다.

위에 열거한 Teddy 의 업적들은 그가 부통령에서 대통령으로 승계한 후 McKinley 대통령의 3년 조금 넘는 잔여임기 동안에 이뤄놓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에 Teddy 가 노동계층을 위해서 독점 Trust 들과 투쟁해옴으로써 그의 첫 임기 는 아주 성공 적인 것이 되었고 1904년의 대통령선거에서 그가 민주당후보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하였다.

미국민들은 그의 정책을 열렬히 지지하였으며 그는 앞으로 4년간 더욱 열심히 일해 달라는 위임 (mandate) 을 받았던 것이다. Teddy 는 재확인된 임무를 국민으로부터 받은 정치인답게 제2차 임기동안에 더욱 확대된 혁신, 개혁을 자신감을 가지고 강력하고 신속하게 펴나갔다.

제2차 임기 초에 Teddy 는 제일 먼저 본보기로 붕궤 시켜야할 독점기업으로 철도산업을 손봐주기로 작정하였다. 철도산업 은 거대한 자본이 독점기업에 집중된 대표적인 예이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 전반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기업이었다.

철도운임 체계가 불공정하였을 뿐만아니라 운임 체계의 불공정은 다른 대기업들에게만 우선적인 혜택을 주도록 되어 있었다. 철도산업통제의 성패는 대통령에게 아주 중대한 정치시험대이었다. 보통 배짱의 대통령으로서는 파내어 버릴 엄두도 못내는 위험한 지뢰와 같은 것이었다.

Teddy 는 독점기업들의 횡포를 단속하기 위해서 Interstate Commerce Commission (ICC) 의 통제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기존법의 취약점은 ICC 가 독점규제법 위반 사실을 시정하도록 명령할 권한이 없이 법원에 기소하여 법원의 판결로 위반사항을 시정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었다.

Teddy 는 제2차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자 16개월 동안 그의 정치력을 총동원하여 1906년에 Hepburn Act 를 입법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이 법은 우선 ICC 의 통제영역을 대폭 확장시켜서 Pipeline, 급행열차, 침대열차, 교량, 통근선박, 정류장등까지 통제할 수 있도록 되었다. 열차 회사들이 대기업들에게 제공해 오던 rebate 와 무임승차권등을 금지 시켰다. 새로 추가된 가장 중요한 ICC 의 통제권은행정명령권 이었다.

만일 어떤 철도 회사의 고객이 철도운임의 불공정을 고발하면 ICC는 고발내용을 검토한 후 철도회사에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었고. 철도회사가 ICC의 명령을 거부하려면 법원에 ICC 의 명령이 부당하다고 소송을 제기해야만 하도록 규정이 변경되었다. 독점기업의 통제가 훨신 더 쉬워졌다.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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