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132) 제26대 Theodore Roosevelt 대통령 ②

2016-11-25 (금)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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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dy 는 독서량도 많고 분야도 다양하여서 그가 Jefferson 대통령에 버금갈 정도의 학식이 높은 대통령이었다고 한다는데 마치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고 했던 것처럼 그는 예의, 여행, sports, 사냥, 정치 등등 다방면의 책 18권 (20권이라고도 함) 을 썼다고 한다.

그는 일찌기 22세때 결혼해서 26세때 부인 Alice Hathaway Lee 가 딸 Alice Lee Roosevelt 를 출산한후 산후병으로 이틀만에 사망하고 또 그의 모친이 같은 집에서 그 열한시간 전에 사망 하자 아주 슬픔에 잠겨서 그의 일기장에 큰 X 자를 써놓고 “The Light has gone out of my life!” 라고 썼다고 한다. 갓 태어난 딸을 누님에게 맡겨두었던 Teddy 는 세 살때 아이를 데려와 자신이 양육하였는데 이 딸이 후일 백악관에서 결혼식을 한 최초의 대통령의 영애가 되었다. 그녀의 신랑은 Nicholas Longworth 연방하원 의장이었다. Teddy 는 부인과 사별 2년 후에 재혼하여 다섯 명의 자녀를 더 얻었다.

Teddy 는 24세에 뉴욕주 하원의원이 되어서 25세 때에 소수당 원내총무로써 뉴욕시의 개혁 을 위해서 입법활동을 열심히 하였었고 39세때 미국해군 차관으로서 Massachusetts 주의 Henry Cabot Lodge 상원의원과 함께 미국해군의 증강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람이다.


Teddy 와 Lodge 는 Mahan 제독의 저서를 읽고나서 미국해군의 증강이 미국의 국제위상 향상을 위해서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었다. 그는 해군차관으로 있을때에 미서전쟁이 촉발되도록 만든 장본인이었으며 미국이 Spain 군과 싸우기 위해 Cuba 를 침공하였을 때는 자신이 모집한 “Rough Riders” 라는 기병연대를 해군차관인 사람이 육군중령 계급장을 달고서 이끌고 진격하였을 정도로 저돌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41세에 뉴욕주지사로 활약하고 있었는데 공화당 내에서 항상 시끄럽고 고집이 센 “말썽꾸러기” 였다고 한다.

Teddy 의 소음이 당내외에서 점점 커가기 시작하던 1900년에 McKinley 대통령은 제2차 임기 의 대통령 선거를 치루게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공화당 내에서는 “소란한” Teddy 를 부통령으로 귀양을 보내면 Teddy 가 조금 조용해 지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McKinley 대통령은 제1차 임기 때의 부통령을 갈아치우고 Teddy 를 제2차 임기 때의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1890년대 말에는 미서전쟁이 있었고 필리핀, Cuba, Puerto Rico 등을 인수하여 미국은 국제적 으로 전쟁도 하고 위상도 높아졌으며 그 덕택에 국내 경제도 번창하여서 McKinley 대통령은 어렵지않게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미국정치의 전통적인 공식에 의하면 이제부터 Teddy는 43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의 그늘밑에서 조용하게 지내야 되는 것이었다.

1901년 3월 4일에 제2기 대통령으로 취임한 McKinley 는 첫 몇달간 미국 전국을 순시한후 Ohio 주의 Kenton 에 있는 자기집에서 두달동안 여름휴가를 하였다. 그는 Buffalo 에서 9월 6일에 거행된 남북미주 박람회에서 5만여 명의 청중 앞에서 연설을 끝내고 소규모의 연회장에 입장하던 중에 28세의 무정부주의자 Leon Czolgosz 가 쏜 두 발의 총알에 맞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중 9월 14일에 세 번째로 암살된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모든 정부를 부인하고 미국의 혼란을 원했던 암살자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McKinley 대통령보다는 훨씬 유능하고 강력한 정치지도자 이었던 Teddy 는 예상하지 않았던 대통령직을 43세에 숙명적으로 인수받게 되었다. 이 암살 사건은 McKinley 대통령에게는 엄청난 비극이었지만 취임후 Teddy 의 업적으로 보아 미국이라 는 나라에게는 역설적으로 전화위복적인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치논쟁을 즐겨하고 선거운동하기를 좋아했다는 타고난 정치꾼 Teddy 에게는 대통령 이라는 직책은 아마도 취미에 딱 맞는 안성맞춤격의 직업이었는 지도 모른다. Teddy 는 자기 전임의 대통령들과 대법원이 이미 제정되어 있는 독점단속법들을 그때까지 제대로 집행해 오지 않은 것에 경악하였고 독점기업들의 세력이 점점 강해지는것을 우려하였다.

그는 “세상의 폭정 중에서 가장 추하고 천박한 것은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행패하는 부자의 폭정이다” 라고 주장하 였다. 그는 정부는 모든 기업들의 partner 인데 항상 Senior Partner 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Teddy 의 국내외 정치 style 을 풍자하는 만화에 흔히 그는 한 손에 큰 몽둥이를 들고 고함을 치고 있는 것인데 그는 “정치에서는 큰 몽둥이를 휘두르되 목소리는 부드럽게 하여야 한다” 라고 말하였으나 실제 정치에서 그는 몽둥이를 위협적으로 휘둘러대며 큰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국제외교에서도 그는 자주 미국의 해군력을 과시하는 “Gunboat Diplomacy”를 효과적 으로 써왔었다. 그의 위압적인 태도가 자기의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는 “폭군,” “독재자” 라고 불리었을 것이지만 국민들은 그가 독점대기업들과 힘이 없는 소시민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투쟁해오고 있는 것을 알았던 탓에 그는 미국의 국민들로부터 “강력한 지도자” 라는 추앙을 받았다.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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