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정훈 기자의 앵콜클래식] 로마의 길… 아피아(Appia) 가도

2016-11-17 (목) 04:28:17 이정훈 기자
크게 작게
[이정훈 기자의 앵콜클래식] 로마의 길… 아피아(Appia) 가도
마음이 혼탁할 때 가끔 레스피기(1879-1936)의‘아피아 가도’(교향시 ‘로마의 소나무’ 중)를 종종 듣곤한다. 이 작품은 무너진 로마의 영광… 그 영화스러웠던 시절을 회상하며 작곡가가 로마 군대의 거대한 행진을 환상풍으로 그린 작품인데 이 작품이 탄생했던 20세기 초(1924년)는 로마(이탈리아)의 존재가치가 살아진지 이미 오래였다. 유럽에서조차 (그 세력이)밀려난 로마(제국)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이탈리아 전역에 산재해 있는 문화재들 뿐이었다. 작곡가는 로마에 남아 있는 문화재들을 바라보며 로마의 영광을 역추적해 가고 있는데 그 희미한 제국의 그림자는 저멀리 하늘 끝에서 맴돌뿐이었지만 추억은 아름답고, 그 영광은 비록 꿈속에서나마 영원하고도 찬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은 비참할망정 인간에게 있어 꿈으로 재창조되는 세계가 얼마나 멋지고도 현실을 초월한 위대한 것인가를, 로마(인)의 창조적DNA로 보여준 걸작이라 하겠다.

LP 판은 모으던 시절, 초기 콜렉션 중에 레스피기의 작품들이 여러 장있었다. 주로 모차르트, 베토벤 등 독일 작곡가들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는데 곁다리로 무소르그스키와 레스피기의 작품들이 다수 끼여있었다. 이유는 독일의 작품과는 달리 레스피기가 전해주는 이태리 풍의 화려한 색채가 좋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치 진한 안개를 뚫고 펼쳐지는 가을하늘 같다고나할까. 서구인… 특히 이탈리아인의 차이점을 비교한 바에 따르면 이태리 민족은 그 어느 민족보다도 개성이 강한 민족이라고 한다. 날씨때문인지, 전통때문이었는지(모르지만) 획일적이면서도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우리 민족과는 달리 이태리 기질은 각자의 색채를 중시하는 개성이 미덕이었다고한다.

또다른 차이점은 빨리빨리, 모든 면에서 성급한 우리민족과는 달리 느긋한 만만디 근성이라고한다. 특히 건축에 대한 그들의 신중함은 대단한 것이어서 때론 수세기까지 걸리곤 했는데 그중 로마가 남긴 로마의 길… 그 도로 공법은 수천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오늘날까지) 건재할만큼 탁월한 것이었다고 한다. 로마가 닦은 길은 대략8만km. 이는 지구 한바퀴(6만4천km)보다도 긴 거리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길이 있었기에 그들은 사상과 문화를 세계에 전할 수 있었고 또 정복을 완성할 수 있었다. 길을 닦는 마음… 그것은 너와나를 위한, 홍익정신의 하나이기도 했다. 음악 정신에 있어서도 로마는 세계의 중심에 서 있었는데, 수백… 수천년의 세월을 두고 갈고 닦아 온 서양음악의 변천사, 그것은 또하나의 로마의 (정신적)도로라고 할 수있는 것이었다.

레스피기는 로마의 문화재 특히 로마의 길을 단순히 보지 않았는데 그것은 로마의 길이야말로 로마인을 대표하는 상징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단순히 듣는다면 하나 심포니 포엠(교향시)에 그칠 수 있지만, 그것은 혼심의 공력으로 길을 닦고 산을 뚫어 세계의 마지막까지 도달하고자했던 그들의 야심과 도전정신… 예술의 극치이자 로마의 진취적인 정신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대 서사시이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두 번 태어나게 되는데, 하나는 부모로부터 태어남이요 다른 하나는 스스로부터 태어남이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을뿐, 스스로부터 태어남이 없는 인격은 개성이 없는 인격을 말한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조상으로부터물려받은 고유의 전통이 있고 또 각자 시대가 만들어가야하는 막중한 과제가 있기 마련이다. 1970년도의 한국은 산업화의 진통기였다.

청아한 소리를 따라가기 보다는 요란한 소리에 상처받고 싶었던 조급함이라고나할까. 오늘날 한국의 정세는 졸속으로 닦아온 길… 그 막장 드라마의 귀결인지도 모른다. 로마의 길… 그것은 인간의 이기심, 좁은 시야와 조급함… 무리한 포부에서부터 자유로웠던, 어쩌면 그들만의 지혜와 개성의 승리였는지도 몰랐다.

<이정훈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