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산문] 가시면 어디서 묵으세요?
2016-11-10 (목) 07:03:33
최 정
한국이 그리워도 가서 편히 묵을 곳이없는 나는 누가 한국엘 간다면 늘묵을 곳 부터 물어봤다. 더러는 자신의 아파트나 오피스텔이 있다고도 하고 더러는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셔서 엄마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언니나 오빠 집에 간다고도 했다. 그것도 아닌 분들은 호텔에 든단다. 호텔이라니! 까마득히닿을 수 없는 곳을 바라보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어디서 묵으세요, 하고 물으니 강북의 2스타 호텔에 묵는단다. 하긴 빠리에갔을 때 메리엇에도 묵어보고 투스타 호텔에도 들어봤지만 정취는 오히려 투스타 호텔이 좋았던 기억이있다. 좋은 호텔은 세계 어딜 가도똑같고 어딜 가도 차갑다. 그러나작은 호텔들은자신이 원하는게 어떤 것 인가를 잘 생각해 선택하면 가격 대비 훨씬 알차고편하게 지낼 수있다.
소개받은 호텔은 조촐하지만잠자리도 깨끗하고 친절했다. 그리고 매일 방을 치워 주면서 냉장고에 물 두 병을 넣어준다. 오성급호텔에선 반들반들 닦인 선반에 색깔도 화사한 드링크들을 요요하게진열해 놓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홀랑 넘어가 한 병 꺼내 마셨다하면 곧 어마무지한 청구서를 감당해 내야 한다. 예의는 엄청 바른데진짜로 환영하는 것 같지는 않은부잣집의 얄밉게도 야박한 인심 같다.
그때마다 여기가 내 집이 아닌걸 확실히 깨우쳐 주는 듯 하다. 일불 조금 더 되는 그 물 두 병이 내겐 반드르한 제복을 입은 벨보이가허리 깊히 굽혀 인사하며 열어주는문 보다 훨씬 좋았다. 고급 호텔의깔끔한 벨보이들은 문도 잘 열어주고 인사도 깊숙히 잘 하지만 마른하늘에서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져도 내가 젖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다.
근데 허름한 그 호텔의 로비엔커다란 질그릇 같은 통에 수십 개의 우산을 비치해 두어 아무 투숙객이든 필요할 때 들고 나가 쓸수있었다. 별것 아닐 수도 있는 그 소소한 편의가 내 마음을 편하게 했다. 게다가 지하철 가깝지 먹자 골목이 바로 앞이지 내겐 어느 오성급 호텔보다도 좋았다. 한국은 먹는것에 세금도 안붙고 팁도 내지 않아 밥 값을 낼 때마다 마치 크나큰특혜를 받는 기분이었다. 비싼 곳은엄청나게 비싸지만 서민들이 먹는국밥 같은 건 육 칠천원 정도.
모든 지하에는 상가가 형성되어있어 물건들이 넘쳐 나고, 백화점물건은 만지면 델 것처럼 비싸건만거리 곳곳에 펼쳐있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오천원 만원 인데 내 눈엔제법 그럴듯 하니 좋아보였다. 오천원이면 4불 몇 십전. 그 돈으로 기계 들이고 재료 장만하고 임대료와인건비를 빼고 나면 얼마의 이익을얻는걸까? 공연한 남의 걱정을 하며 그러나 두툼한 겨울용 바지 두벌을 이만 원 주고 사면서 행복했다.
나는 어렸을 때 상인들이 늘 무서웠다. 상인들은 항상 싸울 준비를 갖춘 전사같았고 기회만 잡으면 온갖 욕과행패를 부릴 수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많은 사람들의 눈빛과 언행이 부드러운 걸 느낄수 있었다. 다만한번 남대문 시장에서 길 한 구석에 앉아 환전해주는 할머니 한 분이 온 시장이 떠나가게 악다구니를 하면서 욕을 하는데 왜 저렇게 화가 났을까, 웃읍기도 하고 딱하기도 했다.
그 옛날에 익숙히 보던 구루마에 폐지를가득 싣고 기우뚱 기우뚱 힘겹게밀고 가는 노인들이 많이 눈에 뛴다. 그리고 시장에선 손바닥만한 플라스틱 위에 간신히 엉덩이를 붙이고 하루종일 지나가는 사람들 상대로 장사하는 여인들, 골목 모퉁이마다 나무 상자만한 가게 속에 들어앉아 하루 해를 보내는 사람들을보며 그 때마다 내가 무슨 연유로이렇게 팔자가 좋은건지 알고 싶어진다.
이번 휴가가 좋았던 것의 가장큰 이유는 함께 한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전부 은퇴한 시점이 되어서인지 한국엘 가는 친구들이 셀수 없이 많았다. 여기서 함께살던 이웃을 한국에서 만나니 두배로 반갑고 편했다. 더구나 늘 의지 되어주는 손윗 사람이 한 호텔에 묵으며 여러가지로 챙겨주어 어른들 밑에 있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내가윗사람 노릇을 해야할 때에 어떻게살아야 할지를 보여주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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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