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129)진보와 개혁의 시대 ①

2016-11-04 (금)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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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에 들어설 즈음에는 미국은 국토가 널리 개발되고 혁신적인 산업육성으로 부유한 나라가 되었고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높아져서 국제정치에서도 큰 목소리를 내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를 고속도로 성장시킨 미국의 자본주의 제도하에서 자본가들의 노동자와 소비자 착취가 점점 심해졌고 빈부의 격차는 점점 넓어져 가고 있었다.

자본가들은 독점재벌들로 변신하고 끈임없는 기업합병으로 정부조차 쉽게 통치 하기 어려운 공룡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치는 자본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고 ,시, 주, 연방정부의 제도도 국민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었으며 특히 주와 시정부 차원에서는 무능과 부패가 만연하였다.

다행히도 1900년부터 20여년 동안에 미국에서는 진보운동과 개혁운동이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의 참여로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국민들이 정치에 더 직접적이고도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있는 법률과 제도들이 제정되고 대기업들을 통제할 수 있는 법률들 이 제정되고 집행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개혁은 어느 한 정당이나 한 정치인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공화, 민주 양당과 Theodore Roosevelt 대통령 (26대, 공화당), William Howard Taft 대통령 (27대, 공화당), Woodrow Wilson 대통령 (28대, 민주당) 등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대통령들의 적극적인 주도아래 이루어졌다.


이때에 미국의 학계, 지식인, 사회활동가들의 합세로 개혁운동은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 당시 때로는 불공정한 방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해 가면서 전국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자유스러운 미국 언론도 정권을 감시하고 독려하는 공로가 컸고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부조리를 규탄한 미국 작가들의 붓을 통한 공헌도 컸다고 한다. 부자들 중에서도 선각자적인 신념을 가진 개혁주의자들이 연방, 주, 시정부에 직접 참여하여 개혁을 주도하기도 했었다.

정치, 경제, 사회제도의 진보와 개혁의 선봉장으로는 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을 원조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시와 주정부 차원의 정치개혁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살펴 보기로 하자.

시정부들의 개혁은 중소급 도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개혁은 중산층 계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그들 지지자들의 직업도 다양해서 의사, 변호사, 목사, 소기업주, 사업자, 사무직원, 사회비평가, 기타의 지식인들로서 대게 미국에 정착한지 오래된 집안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1890년대의 혼란과 폭력 등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사람들로서 시정부가 정치 보스들에 장악되어 있음을 개탄하였고, 비대해진 회사들을 불신임하기 시작했었다.

그들은 사회 빈곤층과 약자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들 진보주의 자들은 정부의 역할이 공정한 심판자에 그쳐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시민들은 민주주의 하에서도 시민들과 큰 회사들의 힘은 동등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고 1900년에 이르러서는 정부는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해야할 임무가 있다고들 생각하였다.

드디어 1889년 부터 미국의 여러 도시들에서 개혁주의 시장들이 선출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개혁주의 시장들이 잠깐 번쩍하다가 시정부가 다시 정치보스들의 손으로 되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정치보스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계속 개혁에 성공한 시장들이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부자인 기업가 출신들이었다.

Detroit 의 Hazen S. Pingree 시장은 네 번이나 시장을 연임하면서 시정부 개혁을 단행하고 후일 미시건 주지사도 지냈다. Toledo의 Samuel M. Golden Rule Jones 시장은 정치에 뛰어들기 이전에 그의 회사의 공장직원들을 후대했던 사람이었는데 시장이 된후 시의 법규를 강력히 집행하기 시작하자 그를 원래 지지했던 공화당 측과 마찰이 생겨서 재선 때에 시장후보로 공천을 주지 않았으나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무난히 재선되었다.

개혁 후의 원상복귀라는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어떤 도시들에서는 시정부 제도를 바꾸기도 하였다. 미국 종래의 시정부제도는 대개 시의회가 있고 시장이 통솔 하는 여러 국장들이 행정을 담당하는 것이다. 개혁된 시정부 제도의 한 예는 1900년 부터 텍사스 주의 Galveston 시가 채택한 시정위원회 제도이다. 이 제도에서는 아주 시장이라는 직책을 없애버리고 대개 무정당 소속으로 선출되는 소수의 “국장” (Commissioner) 들이 시의회 대신 조례를 입법하고 시의 정책을 수립하며 각 부서의 국장으로써 직접 행정을 하는 제도이다. 뉴욕시는 시정위원회제도를 한번도 써본 적은 없지만 이러한 연유에서 경찰국장을 “Chief of Police” 라고 부르지 않고 Police Commissioner 라고 부른다고 생각된다.

1912년에 이르러서는200개 이상의 도시들이 “시정위원회” 제도를 채택하였다. 시정위원회제도 보다 훨씬 더 많이 채택된 제도가 City Manager (시행정전문가) 제도이다. 시의회에 의해서 임명되는 City Manager 는 시행정 전문가로써 시정부를 대회사처럼 운영 하는 것이다.

대개 행정전문가라기 보다는 정치인인 기존의 시장은 부패하고 무능하기가 쉬운 반면에 City Manager 는 전문가이고 비정치적이라는 장점이 있으나, 대도시 시장의 역할은 행정보다는 정치가 우선되는 경우가 더 많아서 City Manager 제도는 중소도시에서 많이 쓰이는 제도이다. 그런 연유로 각도시의 정치에 시장이 관여하게 되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도시들은 계속 시장과 시의회제도를 쓰고 있다.


정치제도 개혁주의자들은 시정부의 개혁만으로는 충분한 정치개혁이 이뤄질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주정부제도의 개혁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최초의 유능한 주정부 개혁자로는 위스컨신 주의 Robert M. La Follette 주지사를 들 수가 있다. 1900년에 “battling Bob” 이라는 별명을 들으며 주지사에 선출된 La Follette 는 어려운 투쟁 끝에 주의회를 장악한 후 세 번이나 연임된 임기중 여러 가지의 진보적인 개혁을 위스컨신 주에서 실천하였다.

주정부의 공직자후보 공천을 주민들의 직접투표로 결정 하도록 하였으며 열차운임의 통제를 위해서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공무원 공개임용 제도가 채택되었으며 lobbying 을 제동하는 규정이 제정되었다. 자연자원 보호법, 은행 감독법 등이 입법되었고 회사세금을 인상하였다. 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은 후일 위스컨신 주를 “민주주의의 실험장” 이라고 칭찬하였으며 다른 여러 주들도 위스컨신 주의 진보적 개혁을 본받았다.

1912년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주들 중 4분의3이 청소년의 노동을 금지하거나 제한 하는 청소년 노동법을 입법하였다. 노동자가 근무중 입은 상해를 치료해주는 Workmen’s Compensation Laws 가 입법되었고 많은 주들에서는 노동자가 아프거나 불구가 되거나 노약해졌을 경우에 지불하는 기금을 적립시키기 위해서 강제보험제도들이 입법되었다.

1912년에 매사추세츠 에서는 여성 최저임금제도가 입법되었고, 곧이어 다른 주들에서도 여성의 근무시간과 노동환경을 조정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각 주들이 뒤따라서 금주법을 제정하기 시작하여서 세계 제1차전쟁이 시작된 1914년에는 26개의 주들에 금주령이 내렸다.

개혁주의자들은 소득이 올라 갈수록 과세율이 높아지는 누진세 제도로 세법을 개정 하였다. 회사 이익금에 대한 회사세금이 부과되었고 상속재산과 고액의 소득에 대해서 과세하였다. 대부분의 주들은 철도운임과 기타 공공요금의 통제를 위해서 관리위원회들을 설립하였다.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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