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년 동안 여섯 차례나 도시 국적 바뀐 프랑스와 독일 문화 혼합된 곳
▶ 스트라스보그 성당 첨탑아래 독일의 알프스 블랙포레스트 한 눈에
스트라스보그 시 전경
제 6일 5월 5일 (목)
■프랑스
프랑스는 바이킹크루즈가 정박하는 3번째 나라다. 프랑스 영토는 한반도의 약 2.5배 가까우며 인구는 약 6,700만이다. 프랑스인들은 잔 다크, 나폴레옹, 드골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가톨릭이83-88%이며 개신교는 2%에 불과하다.
무슬림교도가 5-10% 정도로 개신교도 보다 수가 우세하다. 국토의 3분의 2이상이 비옥한 평원이며 국토의 반이 농작을 하고 있다. 따라서 농부의 파워가 강하며 농업조합이 가장 강한 조합이다. 세계 제3의 농산물 수출국가다. 미술, 음악, 패션 등으로 유명한 나라다. 2015년 통계로 관광객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다.
국민 개인소득이 4만 달러 이상의 부국이지만 청년실업문제로 사회의 불안요소의 하나가 되고 있다. 고용인들의 권리가 극대화 되어 함부로 해고를 할 수 없으며 고용인들의 업무시간도 제일 적은 나라의 하나다. 중요한 산업투자에 국가가 개입하고 있는 사회주의 체제가 아직도 남아있다. 현재 사회당이 정권을 잡고 있다.
■스트라스보그 시 (Strasbourg)
아침 8시에 배는 프랑스 영토 스트라스보그에 도착했다. 아침 8시30 시내관광을 위해 버스에 분승했다. 이날은 예수님 재림일이다. 유럽에서는 재림일은 공휴일로 모든 곳이 문을 닫는다. 그러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상점, 식당 등은 영업을 한다.
스트라스보그는 프랑스 22개 행정지역의 하나인 알사스(Alsace)의 수도다. 라인강 상류에서는 가장 큰 강변도시이며 프랑스와 독일의 문화가 혼합된 도시다. 시 인구는 30만 명에 가까우나 인근주위를 합한 매트로는 약 80만 명으로 프랑스의 제9의 도시다. 국적이 수차 바뀌는 수난을 겪었다. BC 12세기에 세워진 도시로 923년에서 1262년까지 로마제국의 지배 하에 있었다.
1681년 프랑스에 소속이 되었으며 1697년에 신성로마제국에 편입되었다. 1870년 프랑코-프러시아 전쟁으로 프러시아의 승리로 1971년 신생 독일제국에 편입되었다. 1차대전 이후 다시 프랑스에 편입되었으나 2차 대전당시 독일에 점령당했다. 1944년 프랑스군에 의하여 해방되었다. 현지 관광안내원에 의하면 지난 300년 동안 여섯 차례나 도시의 국적이 바뀌었다고 했다.
유럽의회가 이곳에 있으며 유럽인권법원이 이곳에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문화가 혼합된 곳이라 독일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프랑스에는 개신교교도들이 거의 없지만 이곳에는 가톨릭과 개신교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무슬림사원이 2012년 세워졌다.
스트라스보그대학은 프랑스에서 두 번째 큰 대학이다. 이 도시에서 국제적으로 알려진 많은 명사들이 거주했다. 종교개혁가 존 칼빈이 가톨릭의 박해로 이곳에 한때 은신했으며 괴테와 슈바이처도 이곳에서 있었다. 일본후예로 전 페루대통령이었던 후지모리도 스트라스보그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지 관광안내원은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도 이곳에서 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안내원을 따라 스트라스보그의 옛 도시를 걸으면서 관광이 시작되었다. 시는 운하로 둘러 쌓여있다. 시 중심부를 거닐면서 “작은 프랑스 (Little France)”라고 지역에 도착했다. 시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이라고 한다. 수 차례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은 르네상스시대 건물로 가득한 그림같이 아름다운 곳이다. 패션가게, 작은 식당들이 운하에 접해 있으며 운하를 따라 작은 산책로가 있다. 이곳은 1988년 유네스코세계 유산지역으로 등재되었다.
이곳을 떠나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향했다. 노트르담 (Notre Dam)은 불어로“our lady”란 뜻이라고 한다. 성모마리아를 기념한 성당은 모두 노트르담 성당이다. 파리 노트르담대성당이 노트르담성당으로는 가장 유명하다. 스트라스보그 성당도 파리 성당처럼 오래되고 마찬가지로 고딕양식이다. 1176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1275년에 완공된 건물로 독일양식 프랑스 성당이다.
성당의 첨탑은 1439년에 세워진 것으로 466피트의 높이로 우뚝 솟아있다. 원래 두 개의 첨탑을 세우도록 계획하였으나 다른 하나는 세우지 않았다. 지반이 약해서 또는 재정이 약해서 등 여러 가지 루머가 있으나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두 번째 첨탑이 세울 예정이었던 지붕까지 330피트는 걸어서 올라갈 수가 있다.
아내가 성당광장에서 쉬고 있는 동안 올라가보니 아름다운 시내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라인강 건너편 독일의 유명한 산림지대인 Black Forest가 멀리서 눈에 들어왔다. 성당지붕에서 내려와서 곧 아내와 함께 식당에 들러 한가하게 점심을 먹었다. 다음에는 이곳저곳 골목상가를 기웃거렸지만 쇼핑은 하지 않았다. 쇼핑을 하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물건 처리이다. 대부분의 경우 가방에 들어갈 여지가 없어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있다. 물건을 살 때는 좋아 보여 사지만 집에 와 보면 별로일 때도 있다. 또 가격이 미국보다 비싼 경우가 많다.
배가 떠나는 시간이 밤 10시30분이라 충분한 시간이 있다. 그러나 크루즈로 가는 마지막 셔틀버스가 오후4시40분이라 이 버스로 배로 돌아왔다. 저녁식사 후 “라인에서 세느까지”란 독일과 프랑스 음악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부부는 이날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몇 음악인들이 연주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밤 10시 30분 배는 독일 Breisach로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블랙포레스트 광광안내자와 함께
제7일 5월 6일 (금)
■독일 브라이사흐 (Breisach)
아침 8시 배는 Breisach에 도착했다. 도시 약 16,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다. 크루즈 종착지인 스위스 바젤까지 60km떨어져있다. 프랑스 행정지역 Alsace로 연결하는 다리가 라인강에 걸쳐 있다. 16세기 신성로마제국의 군사보류였으며 이곳도 수 차례에 걸쳐 국적이 바뀌었다. 한때 프랑스, 오스트리아의 땅이 되기도 했다. 이곳에 정박한 것은 독일 Black Forest 지역과 프랑스의 중세도시 Colmar 시를 관광하기 위하였다.
이곳에서 몇 가지의 옵션관광(관광일정에서 포함되지 않고 추가로 돈을 내는 관광)이 있었다. 독일의 알프스라 칭하는 Black Forest를 종일 관광하는 것이 있다. 그 외에 4시간 정도의 시간이 요하는 것으로 프랑스 중세도시 Colmar관광, 2차대전박물관 관람, Black Forest 하이킹과 농장방문 등이 있었다. 아내와 나는 옵션으로 아침 일찍 떠나는 프랑스 중세도시 Colmar시를 택하기로 했다. 오후에는 여행일정에 포함된 Gateway to Black Forest를 택하여 Black Forest 입구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프랑스 중세도시 콜마 (Colmar)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조각한 곳
아내와 나는 아침 8시45분에 Colmar로 가는 옵션관광버스에 올랐다. 콜마시를 들어가는 입구 순환도로상에 뉴욕의 “자유의 여신”의 모형이 세워져 있다. 프랑스 행정구역 Alsace에 속해 있으며 인구는 약 7만으로 이 행정구역에서 3번째 큰 도시다. 제일 큰 도시는 이미 관광이 끝난 스트라스보그다. 알사스 포도주로 유명하여 소위 알사스포도주 수도라고 칭하기도 한다. 많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파괴되지 않았으며 랜드마크 건물과 박물관들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콜마는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가 있어 관광이 주산업이다.
9세기에 처음으로 설립된 도시로 지난 500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국가가 바뀌었다. 1672년 루이 14세에 의하여 정복당하여 프랑스 영토가 되었으나 1871년에 독일로 넘어갔다. 1차 대전 이후 다시 프랑스로, 그러나 1940년 독일 나치에 의하여 다시 독일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1945년 소위 콜마 전투로 프랑스의 통제로 넘어갔다.
독일이 점령한 14세기에는 독일식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많이 남아 있으며 프랑스 점령당시는 클래식과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많이 이곳에 남아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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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진/ 빛과 사랑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