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물자와 서비스 등의 총 생산량은 1870년부터 1890년 사이의 20여년 동안에 두 배로 증가하면서 180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농산물들은 전 국민이 다 먹고도 남아 돌아가고 공산품들도 미국민이 필요한 소비량 보다 과잉생산되어 남아 돌아갈 정도로 먹고 사는 형편이 나아지자 미국은 어쩌면 자연스럽게 영토확장주의 mood 에 휩쓸려 가고 있었다.
Mahan 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기독교를 외국에 전파해야 한다고, 다른 나라들도 미국식 민주주의를 채택하도록 해야 한다든가, 해외통상을 보장하기 위해서 세계 각지에 미국의 기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더러는 미국인들에게 새 모험과 개척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해외 영토확장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미국은 건국초기부터 쿠바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제4대 Quincy Adams 대통령은 1823년에 “쿠바 는 북미대륙의 부착물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하였고 그후의 대통령들도 기회가 있을 적마다 스페인으로 부터 쿠바 를 획득해 보려고 하였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나고 조금후인1868년에 쿠바 의 “반동분자”들이 독립을 주장하기 시작하자 미국에서 는 이 새로운 “미대륙의 혁명”을 지지하는 여론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1895년 2월에 반동분자들이 독립을 선언하자 스페인은 무자비한 진압군을 쿠바에 파병하고 1896년 2월 10일까지 모든 쿠바 국민들은 도시들에 집결하도록 명령하였고 위반자는 즉시 총살될 것이라고 하였다. 쿠바 의 모든 도시들은 집단수용소들이 되었고 반동분자 들은 고문당하고 살해되었으며 소수의 미국인들과 어린이, 여자들을 을 포함한 많은 쿠바 사람들이 이 수용소들에서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갔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언론의 자유에 힘입어 신문들은 하루에 6판을 발행 하였고 1896년에 오지의 농촌까지 우편배달제도가 생기자 신문들은 발행부수도 급격히 증가하였고 미국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에서 Hungary 출신으로 미군에 자원입대함으로써 시민권을 따낸 Joseph Pulitzer (Pulitzer 상 창설자) 의 New York World 와 William Randolph Hearst 의 New York Journal 이 가장 성공한 신문들이었는데 이들은 선전이 필요한 사람들로 부터는 “계제료” 를 받았고 약점이 있는 사람들로 부터는 “불계제료” 를 받는 방법등 으로 신문왕들이 되었다.
이들은 엄청난 언론재벌들이 되었으며 작은일을 침소봉대하여 보도하기가 일쑤였고 기사거리가 없을 때에는 거짓기사를 창조해 내는 등 진실보다는 부수확장을 위해서 sensationalism 에 의존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와 공권력 감시라는 언론의 중요한 역할도 했던 신문들이었다.
이 두 신문들이 “Yellow Kids” 라는 악동들의 모험을 신문만화로 연재해왔던 까닭에 sensationalism 에 부수확장을 의존하는 이들같은 신문들을 Yellow Press 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신문들이 쿠바 의 독립투쟁과 스페인 진압군의 만행을 연일 대서특필하기 시작하여 미국의 여론을 들끌게 만들었다.
미국의 기업가들은 당시에 5천만불을 쿠바 의 사탕수수농장과 제당공장에 투자해 두고 있었는데 쿠바 의 독립투쟁에 미국이 개입해 주기를 원하던 쿠바 의 독립투사들은 1895년에 사탕수수농장과 제당공장들을 파괴해 버렸다. 마침 1896년에 McKinley 가 “미국의 기업을 보호하고 쿠바 를 해방시키자” 라는 주장을 선거공약에 넣은 채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스페인 이 협상으로 McKinley 의 주장을 받아들일 뜻이 있음을 내보였음으로 쿠바 의 문제는 평화스러운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쯤에 이르러서 만사형통의 영향력을 행사하던 미국의 신문들이 스페인 과의 전쟁을 독려하기 시작하였다. 마침 이때에 운명의 장난처럼 두가지의 작고 큰 일들이 벌어졌다.
1898년 2월 9일에 New York Journal 은 특종기사로 주미 스페인 대사가 McKinley 대통령을 비하하고 모독하는 편지를 쓴 것을 취득하여 보도하였다. 스페인 대사는 즉시 사임하고 떠나갔지만 미국사람들의 분노는 쉽게 사그러지지 않았다.
엎친데 덥친다더니 훨씬 더 심각한 사건이 곧 뒤따라 발생하였다. 미국은 미국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전함 Maine 호를 Havana 로 보냈다. 항구에 정박 중이던 Maine 호가 1898년 2월 15일밤에 원인불명으로 폭파해 해군장병 260명이 전사했었다. 해군 조사단은 수중어뢰로 Maine 호가 폭파 되었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추후의 조사는 전함내부의 폭발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도 주장하였다고 한다.
결국에 스페인이 Maine 호를 폭파했다는 확증이 없었지만 막무가내로 흥분한 Yellow Press 들은 “Remember the Maine!” 라는 구호를 대서특필하면서 스페인과의 전쟁을 주장하였다. 만일 McKinley 대통령이 이때 미국의 정계를 장악한 강력한 대통령이었다면 당시의 문제들을 평화적 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30대의 젊은 나이로 괄괄한 성격에 호전적이기도 했던 Theodore Roosevelt 해군차관은 McKinley 대통령이 주저하는 것을 보고 그를 척추가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며 강한 불만을 토했다고 한다. 그는 결국 미국의 장래와 국제정세에 큰 변혁을 가져오는 일을 저지르고야 만다.
2월 25일 오후에 해군장관은 사무실을 떠나 있었다. 장관이 공석중이었음으로 Roosevelt 차관은 법리적으로 미국 전 해군을 지휘할 수 있는 장관직무대행이 되었다. 그는 어느 누구와 상의도 하지 않은 채로 홍콩에 있는 미국의 Asia 함대사령관인 George Dewey 해군준장에게 만일 전쟁이 발발하면 필리핀에 있는 스페인 함대를 공격할 준비를 하라고 전신으로 명령했다. 다음 날 아침 해군장관은 그 전날 Roosevelt 가 보낸 전신명령을 보고 기겁을 했지만 그 명령을 취소하지는 않았다. 전쟁의 불씨는 쿠바에서 아직 불붙지도 않았는데 바다 건너에 있던 미국해군은 전쟁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스페인은 미국의 말을 듣겠다는 의사표시가 있었으나 신문들은 전쟁을 해야 한다고 대통령을 계속 압박했다.
스페인 이 쿠바 를 내놓겠다는 뜻을 전한 다음날인 4월 11에 McKinley 대통령은 국회에 대 스페인 선전포고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5월 1일에 필리핀에서 Dewey 제독은 스페인 함대를 일곱 시간 만에 전멸시켜 버렸다. 미국해군의 이같은 강력한 전투력에 비해서 육군의 전투준비는 엉망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Tampa 에 있던 전투훈련병들은 몇 주 전에 25마일이 떨어진 장소에 잘못 전달된 보급품을 받지못하여 허송세월을 하고 있었고, 쿠바 침공부대장인 육군소장은 3백 파운드나 되는 체구가 너무 무거워서 전방에서 지휘를 할 수가 없었다.
만년 보이스카웃 같았던 Theodore Roosevelt 해군차관은 자신을 육군중령으로 임명한 후 미국서부쪽에서는 cowboy, 불량배, sheriff 등을, 동부에서는 한량승마수, 직업경마수 등 가릴 것 없이 모병 하여 “Rough Riders” 라고 불리게 되었던 새 기병연대를 조직하여 쿠바 의 Santiago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San Juan 을 점령하려 갔는데 급한 김에 실수로 말들을 배에 싣지않고 전부 플로리다에 놓아두고 와서 Roosevelt 를 포함한 모든 기병들이6월22일에 구둣발로 샌후앙을 돌격하고 점령하였다. 이들은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대포를 장착해 아래 내려다 보이는 샌디애고 항의 스페인 함대들에게 포격을 할 예정이었는데, 스페인 함대는 이것을 알아차리고 항구를 빠져 나가려 하였으나 대기하고 있던 미국 해군함정들에 의해 완전히 섬멸되었다고 한다.
이로써 스페인 의 해군력은 필리핀에서 절반을, 샌디애고 에서 나머지 절반을 섬멸당해 완전히 분쇄되어 버렸다. 세계최강의 해군이 신생국 미국해군에게 전멸된 것이었다. 미국 전역에서 승전축하가 있었다고 한다. .
미서전쟁은 8년이 걸린 독립전쟁이나 4년이 걸린 남북전쟁에 비교하면 4개월 밖에 걸리지 않은 “눈 깜작 전쟁”이었지만 385명의 전사자와 수 천 명의 전상군인들과 질병 사망자가 났으며 2억5천만불의 전쟁비용이 들어갔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서전쟁의 승리는 미국의 국위를 선양하였으며 역사의 흐름을 돌려놓아 미국이 국제관계에서 밀리는 나라가 아니라 영도하는 나라로 위상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미국은 식민지에서 갓 독립한 나라가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유럽의 열강들처럼 ”제국주의” 국가가 될 수 있는 준비가 다된 나라임을 전 세계에 증명하여 주었던 것이다.
<
조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