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121)재선되어 백악관에 되돌아온 제24대 Grover Cleveland 대통령

2016-09-09 (금)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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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의 총선거에서 공화당의 해리슨 은 대통령에 당선되고 오랜 만에 상하 양원도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자 해리슨은 대통령임기의 전반부 동안에 비교적 순조로운 정치를 할 수 있었다.

국가예산을 흥청망청 거리며 썼다는 비꼬움으로 국민들로부터 “10억 달러짜리 국회” 라는 비평을 들었던 공화당 주도하의 새 국회는 국고를 비우게 만드는 고액지출의 법률들을 마구 통과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는 하천과 항구들을 개량하는 법, 증기기선 운영보조비, 남북전쟁 중에 북부 주들이 미합중국에 내었던 세금의 환불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자린고비라는 소리를 듣고 남북전쟁 참전자들의 연금법률까지 veto 해 가면서 전임 Cleveland 대통령이 애써서 모아 놓았던 10억 달러의 잉여금은 해리슨이 대통령이 된 후에 얼마가지 않아서 다 사라졌다. 퇴역장군인 해리슨은 참전군인들에게 마구 선심을 써서 1889년에 8,100만 달러이었던 연금이 1893년에는 1억3,500만 달러로 증액되었다, 1894년에 이르자 연방정부 잉여금은 완전히 탕진되었고 그 후에 다시 연방정부에 잉여금이 생기기 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890년에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게 되자 공화당은 지난 2년 간에 공화당 주도하의 국회가 이뤄 놓은 업적이 많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농산업자들은 곡물가의 계속적인 하락으로 장기융자금의 지불에 계속 허덕이고 있었다. 은행들과 채권 보유자들은 무분별한 고액의 은화발행으로 생긴 인플레이션 때문에 망해가고 있다고 불평을 하고 있었으나, 반대로 은광업자들과 농산업자들은 충분하지 못한 은화발행 때문에 디플레이션으로 어렵다고 불평하고 있었다.

정치개혁주의자들은 해리슨 이 공약대로 엽관제도를 폐지하지 않았다고 비난하였으나 공화당계 중진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공로 만큼 해리슨이 공직을 배분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공화당 국회가 정부예산을 남용하고 있는 데다가 McKinley 의 새 수입관세법 때문에 향후 전반적인 물가인상이 불가피하게 되어 불만이 고조되어 있었다.

결국 1890년의 연방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235석을, 제3당인 Populist 당은 놀럽게도 9석을 얻었고 공화당은 30년 만의 최소수인 겨우 88석을 얻는 대참패를 하였다. 수입관세 인상법의 발의자였던 7선의 공화당 중진 McKinley 의원조차 그 선거에서 낙선되었다. 압도적인 여소야대 정국이 되어서 해리슨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 중에는 아무런 중요한 법률이 입법되지 못하였다.

윈스턴 처칠은 독설가이었지만 동시에 witty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가 영국수상으로서 하원에서 정책연설을 하다가 야당의 반대에 하도 분통이 터져서 “이 의사당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 절반은 천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발언하자 야당의원들은 야유를 하며 소란을 피웠다. 처칠 은 곧 바로 “제말을 취소합니다. 이 의사당에 앉아있는 사람들 중 절반은 천치가 아닙니다” 라고 정중하게 사과했다고 한다. 그의 발언은 가끔 깊은 철학과 진리가 배어 있었다고도 한다. 그의 이런 명언 중에 “민주주의는 최선의 완전한 정치제도가 아닐런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제도 중에서는 가장 좋은 제도이다” 라고 하였다고 한다.

미국역사에서 민주, 공화 양당 간에 (그것이 큰 문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탁구공처럼 정권이 왔다갔다 해온 것을 보면 민주주의는 좋은 제도라고 생각하게 된다. 칼자루를 들거나 권총을 쥔 사람에 의해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한번도 중단되어 본 적이 없는 미국은, 정수기가 더러운 물을 걸러내듯이 선거를 통해서 전대의 잘못을 후대에 정화하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아마 때로 선거자금의 과용으로 부패했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선거를 자유롭게만 치루게 된다면 국민들은 긴 눈으로 볼 때에 항상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해리슨 의 재임 중에 가장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농산업자들이었다. 농산물 가격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서부쪽의 철도운송료와 각지의 곡물저장료는 계속 올라가서 장기대부금을 갚지 못해 도산하는 농산업자들이 수천 명이 되었다.

농사를 직접 짓지않는 자본가들이 토지의 소유주들이 되고 막상 농사를 지어오던 사람들은 소작인들로 전락되기 시작하자 미국은 이제 “Government by the Wall Street, for the Wall Street and of the Wall Street” 라고 농산업자들이 분통을 터트렸고 자구책으로 협동조합들을 만들어서 종자와 비료구입에서 절약을 시도했고 농기계 생산공장과 곡물 저장장도 직영하여 보았다.


농산업자들의 불만이 심해져서 미국 서부와 남부에서 농업보호를 위한 정당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에서Populist 당이 작은 제3당으로까지 성장하였다. 농업인구와 농경지는 줄어들기 시작하였으나 농기계류와 기술의 개발로 농산물 생산량은 도리어 전보다 많이 늘어나서 미국 내에서 다 소비되지 않는 농산물은 수출을 해야 했는데, 새로 개발되기 시작한 Australia, Argentina, Canada 등지의 농산물과 경쟁을 해야 했다.

농산업자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서 독점기업들이었던 철도회사 등의 단속법들이 주정부 차원에서 제정되었지만 거대 철도회사들이 그런 법들을 무시해 버리거나 주정부가 법 집행을 제대로하지 않거나 더러는 그 법들을 폐지해버리는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공익을 위해서 정부가 독점기업들을 단속해야만 한다는 인식들이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1892년 7월에 Populist 당은 여러 가지의 정치개혁을 주장하며 은화의 발행, 통화량의 대폭적인 증대와 고소득층들에게 소득세를 부과할 것 등을 당의 정강으로 채택하였다. 그들은 철도, 전신, 전화사업들을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노동자들의 근로시간 단축과 연방상원의원의 직선제 (그때까지는 주하원에서 선출했었음)까지도 당의 정강으로 채택하였다. 그들은 품위가 있고 정직하다는 평판을 듣던 James B. Weaver 장군을 대통령후보로 공천하였다.

1892년 6월에 공화당은 해리슨을, 민주당은 전 대통령 Cleveland 를 각각 대통령 후보로 공천하였다. Cleveland 는은화발행 과 정책적인 인플레이션 조장을 반대하였으므로 그가 건전한 통화정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많은 대기업 지도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세 후보 간의 격렬한 선거대결이 있었다. 여러 가지의 정치개혁을 싫어했던 남부쪽의 보수적인 민주당은 백인우월주의를 주장하면서 모든 Populist 당원은 “Law and Order”를 반대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였다. Weaver 장군은 “남북전쟁이 끝난 것이 언제인데 아직도 인종차별이 문제인가? 이번 선거는 누가 흑인들을 더 증오할 줄 아느냐에 대한 경쟁인 것같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국력의 낭비이냐?” 라고 개탄하였다.

재수가 없는 일을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선거운동이 한참 격렬해지고 있던 1892년 여름에 미국역사에도 기록이 남는 대규모의 노동쟁의가 일어나고 있었다. 우선 Carnegie 의 Homestead 철강공장에서 경찰과 경비원들이 수수방관하고 있는 가운데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회사 측이 불러온 폭력적 strike –breakers 들로부터 극심한 유혈폭행을 당해서 전국적으로 여론이 나빠졌던 일이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이다호 주의 광산에서 파업이 일어나자 주지사의 요청으로 해리슨은 연방군을 파송하여 파업을 진압할 수밖에 없었다. 기본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총검을 가진 군인들이 강제로 진압하는 것이 현직 대통령에게 선거에서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해리슨은 재선될 운이 없는 사람이었다. 정국이 이처럼 불안해지자 국민들은 재임시에 평화적으로 자신있게 정치를 했던 Cleveland 전 대통령을 “구관이 명관”이라고 생각하며 또다시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Cleveland 는 37만3,000여 표를 더 얻어 선거인단 표수로 277표를 받아서 145표를 받은 해리슨에게 압승하였다. Populist 의 Weaver 장군은 100만여 표를 받는데 그쳤으나 상원의원 세 명, 하원의원 11명을 당선시키는 선전을 하였다. 이때의 총선에서 민주당은 상하원 모두의 다수당이 되었다. 정권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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