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

2016-07-22 (금) 07:53:42 대니얼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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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인터넷을 통해서 어느 TV방송 다큐 프로에서 제주도 올레 길을 소개한 것을 보았다. 제주 시내를 떠나 시퍼렇게 출렁이는 푸른 바닷가를 옆으로 하고 올레길 가에는 오색 야생화들이 끝이 없이 피어 있고,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행복해 보였다. 올레 길에서 내가 주의 깊게 본 것은 들국화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노란 들국화였다. 그것은 나의 집 꽃밭에서 피어있는 노란 들국화와 너무 닮아 있어서였다.

지난 해 나는 집 주위로 가을에 피는 화려한 오색 국화들을 따라 그 앞쪽에 노란 들국화(black eye susan)를 한 줄로 씨를 뿌렸더니 7월 중순에 꽃이 활짝 피었다. 짙은 녹색 잎의 가을 국화와 노란색과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그런데 한 가지 미흡한 점이 있었다. 노란 들국화가 귀엽고 예쁘기는 하나, 제주 올레 길의 그것처럼 군집된 장엄한 들국화의 아름다움의 감동을 체험할 수가 없었다. 올해는 수많은 들국화가 나의 집을 들러 싸고 수놓는 들국화 둘레 길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지난해 수확한 들국화 꽃씨들과 화원에서 산 꽃씨들을 합해 3월 중순경에 둘레 길에 골고루 뿌렸다. 집 주위가 노란 색만으로 채워져 있으면 어쩐지 단순해 보일 것 같아서 연분홍색의 들국화 꽃씨, 빨간 분꽃씨, 봉선화 꽃씨들을 둘레 길 사이에 적당한 간격으로 심었다. 7월 중순이 되어 나의 집 앞 화단과 집 둘레를 싸고도는 들국화 둘레길이 완성 되었다. 나는 완성된 들국화 둘레 길을 걸으면서 화가 반 고흐를 생각했다. 고흐는 평생을 독신으로 가난한 삶을 살았다.


여성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여성의 누드화 한 번 그려보지 못했던 고흐는 단간 방 근처의 공원이나 자신의 자화상 등이 그의 유일한 화폭에 담을 소재였었다. 평론가들은 고흐는 그의 정신병적인 이유로 노란색을 그의 그림에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그림들, ‘해바라기’, ‘쎙 피에르 공원의 석양’이나 ‘회색 모자를 쓴 자화상’을 보면 그가 구사한 노란색은 고흐 자신의 지독한 경제적 고통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소망을 갈구하는 색이며, 현실 세계에서 얻을 수 없었던 인간적 욕망을 채워주는 행복의 색이었다. 고흐는 자신의 캔버스의 화지에 노란 색칠을 했을 때가 가장 행복했었던 순간 이었지 않나 싶다.

인간의 소박한 꿈이 무엇일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인정을 나누면서 자유롭게 먹고 사는 걱정 없는 사회 속에 사는 것이 아닐까. 둘레 길에 핀 들국화를 한 다발씩 여러 개의 화분에 나누어 담아 꽃을 사랑하는 친지들에게 선물을 했다.

8년 전 큰 아들이 중병으로 나의 곁을 떠난 후 아들을 따라 죽고 싶은 마음의 수렁 속에 있을 때, 친지의 권유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푹 빠지고, 집 주위를 아름다운 꽃으로 담을 정원 만들기에 몰두했다. 지독한 트라우마로 부터 탈출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매일 글을 쓰지 않으면 아니 된다. 지금은 글을 잘 쓰려고 애쓸 때 행복하다. 나를 위로해주고 사랑해준 가족과 친지들에게 감사하며 들국화 둘레 길에 서 있는 이 순간이 나를 지극히 행복하게 한다.

<대니얼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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