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준하 선생이 주는 교훈

2016-07-02 (토) 08:02:34 김은주 뉴욕시 공립학교 과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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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회가 있기 전날 교장 선생이 전체 교직원들에게 전자 편지를 보내 문제를 제기하였다. 학교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우리 학교 유치원생들의 작품이 중학생들의 작품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평가가 난 것이다. (Bulletin Board 작품-전시물)

밝혀진 자초지종은 유치원생들은 장장 네 페이지에, 그것도 아주 멋지게 우리학교 설립자 James Weldon Johnson의 생에 대한 ‘그림’을 그렸는데, 중학생 특수교육반 학생들은 겨우 1페이지에 틀린 내용과 틀린 작문이 포함된 작품을 ‘전시’했다. 이 때문에 교장이 크게 화가 난 것이다.

과학 실험이나 사회학 논문을 쓸 때 이 논문과 실험 결과가 얼마나 유효성/ 신빙성이 있는지, 즉 reliability와 validity가 시험대에 오르기 마련이다, 당연히 이 평가에서 인정을 받아 통과가 돼야만 신빙성이 부여되고, 그 유효성이 확보된다.


나는 이 교사회에 문제의 유치원반 작품에 대한 ‘reliability/ validity test’를 실시하자고 제의 했다. 나의 제안이 받아들여지고, 조사 결과 유치원 학생들의 작품들은 5장짜리 학생들의 작품이 아니라, 교사가 만들어 준 작품을 아이들 필기체로 쓰게 하고 그림도 그럴싸하게 pre-printed(not authentic)한 종이에 색칠만 요란하게 한 것이다.

유치원 교사의 잘못된 판단에 따른 교육방법으로 스스로 비난을 자초한 셈이다. 이 때문에 전 교사들이 들고 일어나 난리가 났었다. 특수교육반 교사는 교장실로 불려 들어가 교장에게 훈계를 들었다. 난 이 와중에서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있던 장준하 선생의 교훈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 대신 ‘못난 교사가 되지 말자”를 떠올렸다. 이 교훈을 안고 난 교사회에서 발언을 했다.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고, 절대로 눈 가리고 아옹 한다고 다 속아 넘어 가지 않는 것이 이 우주의 보편적 원칙입니다,” 라고 발언 하면서, 교사로서 장준하 선생의 교훈을 나의 신조로 삼은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결국엔 교장 선생님도 나를 격려해 주실 것이다.

<김은주 뉴욕시 공립학교 과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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