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오후에 자그마한 액자가 하나 필요해서 집에서 가까운 월마트에 들렸다. 다양한 종류 중에서 어떤 게 적당한가 고르던 중, 바로 옆 칸에서 한 아버지와 두 아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일부러 엿들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대화에 배어 있는 약간의 긴장감이 내 귀의 레이다망에 포착되었다.
앞부분은 미처 못들었지만 아버지의 말이 아들의 마음에 거슬렸던 것 같다. 한 아들이 항의한다. “이제 방학 시작한지 겨우 3일 밖에 안 되었는데요.” 아버지가 반박한다. “네 엄마와 내가 너희들에게 아직 안하고 있었지만, 너희들이 여름방학동안 공부해야 할 부분에 대해 곧 해야 할 얘기들이 있다. 책도 읽어야 되고, 불어 공부도 좀 챙겨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아들의 탄성이다. “아, 방학인데요!”
조금 망설이다 궁금증과 참견하고 싶은 마음을 제어하지 못해 그들을 찾았다. 대화를 나누는 옆모습을 보았었기에 몇 칸을 둘러보아 곧 찾을 수 있었다. 그 아버지에게 아들들이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고 물어 보았다. 내가 잘 아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였다. 그런데 오는 가을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진학한다고 했다. 내가 교육위원이라고 소개하자 그렇지 않아도 낯이 많이 익다고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아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 중학교에 진학한다는 아들에게 말했다. “나에게도 너 보다 나이가 제법 더 많은 아들이 둘 있다. 이제는 그럴 필요 없지만 과거에 네 나이 또래였을 때 방학 때면 네가 네 아버지와 나누던 그런 대화를 종종 하곤 했단다. 내가 아버지이기 때문에 네 아버지 편을 든다고 할지 몰라도, 네 나이 때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아버지의 판단이 더 현명하단다. 너는 참 좋은 부모님들을 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여름방학 잘 보내길 바란다.” 나의 말을 경청하는 어린 학생과 빙그레 웃는 아버지의 얼굴을 뒤로 한 채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 나올 수 있었다.
이제 여름방학이다. 학생들에게는 정말 기다려졌던 쉼과, 재충전의 기회이다. 부모들에게는 어쩌면 자녀들만큼 설렘을 주는 방학은 아닐지 모른다. 그래도 자녀들과 평소와 조금 다른 일상적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가족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같이 할 수 있는 새로운 활동을 찾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론 자칫 잘못하면 자녀들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방학동안의 시간 사용 방법에 대해 자녀들과 견해차로 매일 서로 얼굴을 대하는 것이 힘들어 질 수도 있다. 역시 부모들의 좀 더 현명하고 성숙한 대처가 절대 필요하다. 이에 한 가지 권해 본다.
자녀들의 시간 낭비가 마음에 안 들 경우 부모들이 먼저 좋은 본을 보여보자. 예를 들어, 자녀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면 부모도 같이 책을 읽는 목표를 정하길 바란다. 물론 하루 종일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책을 읽는 게 힘들 수는 있다. 그러나 피곤한 가운데에서도 목표를 정해 독서를 하는 부모의 모습이 자녀들에게 충분히 신선하고 긍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다. 또한, 영어 실력을 좀 더 향상시켜야 하겠다고 생각되는 부모들은 영어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물론 이러한 것은 비단 방학 동안 뿐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권하고 싶다. 부모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모습을 솔선해서 보일 때 자녀들에게 같은 것을 권할 수 있는 도덕적 권위도 서지 않겠는가.
나도 이번 여름에 하고 싶은 게 있다. 7월 말까지는 교육위원회 회의가 계속 있기에 평소와 많이 다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참석해야 하는 학교 행사들이 없고, 8월 한달은 교육위원회 공식회의도 열리지 않기에 좀 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던 미국 역사를 조금 공부하기로 했다. 두껍지는 않지만 약 400쪽 정도 되는 미국 역사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에 관련된 책을 한권 씩 주문했다. 내가 미국 역사를 마지막으로 공부한 것이 미국에 이민 와서 두 번째 해 고등학교 시절이니 40년이나 된다. 오랫만에 다시 역사책을 손에 들 생각에 벌써부터 흥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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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