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필가 방인숙의 디즈니 월드의 매직 킹덤(Magic Kingdom)

2016-06-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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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속 주인공 되어 웃음꽃 만발

▶ 나이들수록 마음은 어린애로...

수필가 방인숙의 디즈니 월드의 매직 킹덤(Magic Kingdom)

장대 위에 올라간 사람들

어둑어둑한 여명에 주변 답사 겸 홀로 나섰다. 코앞의 나무까지 짙은 안개의 베일에 숨어 숨바꼭질 하잔다. 헤르만 헤세의 ‘안개 속을’이란 시가 슬며시 떠오른다. '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숲이며 돌은 저마다 외로움에 잠기고/나무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모두가 다 혼자다...' 끝 구절이 안개처럼 촉촉하게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다.

일정이 올란드공항에서 20마일 떨어진 매직킹덤 방문이다. 디즈니월드 테마 파크 중 1번 타자로 태어난 동화왕국이라 그런가. 입구 화단에 디즈니 캐릭터 인형과 꽃들도 미키마우스 얼굴로 피어났다. 테마별로 Liberty Square, Fantasy land, Adventure land, Frontier World, Tomorrow World로 돼있는데, 판타지 랜드가 가장 디즈니틱 하단다.

모험의 세계 초입에 란 간판이 있다. 높은 나무들 사이로 출렁다리에다 새둥지마냥 통나무 오두막집들이 옹크리고 있다. 척 봐도 영화 ‘Swiss Family Robinson’(배가 난파된 후 무인도에 정착한 가족의 모험과 삶, 결국엔 해적도 물리치고 섬을 탈출)의 패러디다. 1960년에 존 밀스, 도로시 맥과이어, ‘하와이 50수사대’로 유명한 제임스 맥아더가 나왔던 오리지널, 1998년 나온 Jane Seymour, James K'each주연의 리바이벌도 봤다. 어릴 때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읽던 순간만큼 재밌게. 그랬기에 영화 속의 정글생활을 간접적으로라도 음미해보고 싶었지만, 일행들은 도통 관심이 없다.
수필가 방인숙의 디즈니 월드의 매직 킹덤(Magic Kingdom)

배를 타고 여행하는 밀림 수로의 정글 크루즈


말도 안 꺼내고 오두막집만 흘끗거리다가 일단 일행을 따라 정글 크루즈로 갔다. 입구에 놓인 나무새장안에서 독거미 일종인 Tarantula한 마리가 여치 집을 들락거린다. 새까맣고 커서 정글공포조장 소도구역할로 그만이다. 배를 타고 강 같은 수로를 돌았다. 나무들이 제법 빽빽한 원시림의 정글세계모방이다. 실물크기의 조형동물들을 적재적소에 포진시켜 생활상을 재밌게 표현했다. 예컨대, 코끼리들은 물가에서 연신 긴 코로 물을 뿜으며 샤워한다. 뱃전 옆에선 하마가 불쑥 얼굴을 내밀며 입을 쩍 벌리는 통에 기겁했다. 스멀스멀 배 쪽으로 다가오는 악어도 가짜인줄 알지만 으스스하다.


또 보석상자들이 널려있고 해적들이 모여 있는 보물섬도 있다. 밀림 속엔 떨어진 비행기의 잔해도 있다. 인상적인 건 나무숲에 벌렁 뒤집혀진 지프차다. 옆에 해골로 보아 차 주인이 변고를 당한지도 오래다. 차바퀴만 바람 따라 무상하게 돌고 있으니 비극이다. 사람들이 잔뜩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죽기 살기로 긴 장대에 매달려 있고, 밑엔 코뿔소가 노리고 있다. 설령 밀랍인형들이라 해도 표정이 적나라해 슬며시 웃음 짓게 된다. 설치물마다 스토리텔링에 주력한 점이 돋보인다. 인위적인 밀림과 수로라도 시원하긴 했다.

이다. 황토구릉과 서부의 골드러시 광산을 기차로 달리는 거다. 얼핏 굴 앞을 스치는 기차의 달리는 폼이 전광석화 롤러코스터 스타일이다. 안타겠다니까, 친구들이 나이 더 들면 진짜 못타니까 타보잔다. ‘그래. 영화<버킷 리스트>에도 “한일의 후회보담 못해본 일의 후회가 크다”고 했지.’ 결과는, 지옥구경만 톡톡히 했다. 산 뒤에선 기차가 천둥번개요, 굴속의 경사도와 굽이도는 상상초월이었다. 재방문인 S가 눈뜬 게 덜 어지럽다기에 눈을 부릅떴지만 허사다.

눈을 질끈 감고 일분이 영원 같은, 그저 이 기막힌 순간이 어서 끝나주기만 기도했다.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다. 여하튼 일행 전원은 땅으로 ‘무사귀환’ 했다. <모모>란 책에 보면 모모가 “사람이 뭘 하기에 너무 어린 경우는 절대 없어요.”말한다. 지금 경우에 빗대 말하면 “뭘 하기에 너무 늦은 경우도 없어요.”다. 그래도 ‘스위스 패밀리’의 나무집에 가보는 게 백번 천 번 나았겠다. 이쯤 살고 보니, 내 경우도 안 가본 길일 수록 미련이 자꾸 커지니까.

하도 소리 질러 목도 아프고 머리도 띵해 한숨 돌릴 겸 목마를 탔다. 어릴 때 창경원에서 아버지가 태워 주셨던 이후로 처음이다. 괴물기차에 비하면 이건 일도 아니다. 마음이 평온해 그야말로 ‘강 같은 평화’다. 옛 현인들의 전언대로 늙을수록 마음은 어린애를 닮아간다.

다. 지하수로에서 조가비배에 앉아 수중의 인어를 비롯해 물고기 니모, 모조해양생물들 탐방이다. 타고 있는 조개가 휙휙 돌아서 양쪽 다 보니 좋긴 한데 좀 어지럽다. 바다 속 호기심이 그득한 어린이들에겐 꿈의 세계겠다.
광장의 낮 퍼레이드는 인기 영화의 주인공들로 분한 배우들이 춤추며 걷거나 꽃차위에서 손을 흔든다. 밤 퍼레이드가 더 화려하고 상상력을 자극해 책에 나오는 진짜 동화나라다.

민생고 해결 차 외관이 이국적이고 근사한 식당으로 갔다. 아뿔싸! 사람은 겉만 보고는 몰라 겪어봐야, 살아봐야 알고, 식당도 음식 맛을 봐야 안다더니, 맛이 영 요상타! 전부들 먹다 말은 셈인데도 값은 착한편이 아니라 뒷맛이 쓰다.

마침 가 뚜우! 뱃고동을 울린다. 후딱 배에 오르니 3층짜리 증기선이다. 완전 ‘톰 소여의 모험’시대로의 역행이다. 갑판에서 강 연안을 살피는데 ‘허클베리’인양 마냥 자유롭다. 가슴이 확 트여와 심호흡을 계속했다. 지하에서 쭉 뭔가에 타고 돌다보니 머리가 맑지 않던 차. 뺨에 와 닿는 강바람이 그지없이 상쾌해서다. 통나무집, 물레방아, 풍차, 출렁다리, 인디안 마을 등의 경관들이 시골냄새 나고 한가로워 좋다. 강 건너 사슴과 곰들도 거리를 두고 보니 거슬림이 없어 처음엔 진짠 줄 알았다. 인간관계에서도 적당히 조화로운 거리를 유지해야 자연스럽고 돈독(敦篤)하듯이...

배에서 내려 를 방문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미니어처들 세상의 소인왕국인데 너무 귀엽다. 구경꾼들을 자연스레 걸리버로 전환시킨다. 각 나라의 풍물과 고유의상을 입은 작고 깜찍한 입체인형들을 전시해 놓았다. 한복인형을 찾다가 드디어 꼭두각시 옷을 입은 각시와 도령을 발견했다.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것과 진배없다. 출구가 가까워지자 Good Bye란 뜻을 각 나라 언어로 써놓았다.


“왜 한국말 인사만 없지?”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귀퉁이 나비그림 위에 ‘An Nyung He GaSeYo!'가 눈에 포착되는 찰라, 너무 반가워 눈물이 핑 돈다. 일행들이 “어디 어디?”하다가 애국자들 아니랄까봐 전부들 환히 웃었다. E가 “오늘 본 것 중 최고!”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오늘의 종착역은 . 작은 범선을 타고 피터팬 스토리를 따라 하늘을 나는데, 먼 미래를 독창적으로 표출한 가상의 세계다. 칠흑의 까만 하늘엔 달과 별들이 총총 명멸한다. 유성이 떨어지는지 파란 불빛들이 수직으로 낙하한다. 별똥별은 손으로 받고 별은 가슴으로 안으며 별나라를 향해 솟구쳐 올랐다. 저 별들 가운데 행복의 별도 있으려나. 가까우니 손만 내밀면 딸 수도 있으려나. 여하튼 첨단산업기술 덕에 우주 속을 유영하니 인공위성에 탑승한 셈 쳤다. 영상모험인 게 빤한데도 우주를 나는 기분은 신선하다.

어느새 저물녘, 어둑어둑한 호숫가. 저쪽 하늘엔 노을퍼레이드다. 역시 자연의 솜씨는 인간의 재주보다 한 수 위다. 어린왕자가 좋아했다는, 특히나 마음이 슬플 때 지는 해의 모습은 정말 좋다고 했던, 그 석양의 그림전시회다. 이 순간, 나는 마냥 행복한데 슬프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워서.

숙소로 오니 J언니 딸이 어제처럼 늦게까지 내일 스케줄을 선별 작성하고 있다. 깊고 세심한 효심도 예쁘지만, 매사에 대한 열정과 끈기, 똑 부러지고 당당한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젊음도 젊음이지만, 그렇게 못 살아온 나는 회오 속에 그 자신감이 살짝 부럽다.

다시금 <청춘>시의 마지막,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머리를 드높여/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그대는 80일지라도/영원한 청춘의 소유자인 것이다.’를 떠올리며 위안 삼을 밖에.

‘어차피 인생은 도돌이표가 없다. 그러니 겨울로 진입했더라도 매순간, 열정, 꿈, 희망을 놓치지 않게끔 유념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