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캡틴’ 마블의 ‘일관성’…영웅들 웃음 코드·확고한 세계관 구축
▶ ‘배트맨’ 워너브러더스… 사공 많고 제작자 입김 강해 일관성 결여
‘배트맨 대 슈퍼맨: 정의의 시작’(좌)-‘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우)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정의의 시작’과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간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 두 작품은 미국의 대표적인 만화 산업계의 양대 산맥인 DC코믹스와 마블코믹스가 창출해낸 슈퍼 히어로 영화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 워너 브라더스(DC 필름)와 월트 디즈니(마블 스튜디오) 간 자존심 경쟁이기도 했다.
사실 두 영화는 올해 ‘마블 영웅들 vs DC 영웅들’의 첫 대결이라는 점에서 진작부터 관심을 모았다. 게다가 두 영화 모두 똑같이 2억5천만 달러(2천933억 원)가 투입된 데다 슈퍼 히어로 간 갈등과 화해를 그렸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흥행 면에서 ‘배트맨 대 슈퍼맨’은 ‘캡틴 아메리카’에 현저히 뒤로 밀려있는 형국이다. DC 영웅들이 마블 영웅들에게 ‘판정패’했다는 얘기가 나온 이유다.
마블 스튜디오의 ‘캡틴 아메리카’는 8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6억7천314만 달러(약 7천898억 원)의 흥행성적으로 거뒀다.
뒤늦게 개봉한 북미지역에서 개봉 첫 주말 1억8천만 달러(약 2천102억 원)를 뽑아냈다. 이는 역대 개봉 첫 주말 흥행 순위 5위다.
지난 3월 25일 개봉한 ‘배트맨 대 슈퍼맨’은 이날 현재 전 세계적으로 3억2천725만 달러(약 3천840억 원)에 그치면서 흥행 실패작이라는 꼬리표가 달릴 전망이다.
5월 첫째 주 박스오피스 ‘톱(Top)-10’
두 영화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린 이유는 제작 시스템, 의사결정, 조직문화 등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전했다.
우선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들은 CEO(최고경영자)이자 대표이사인 케빈 파이기가 영화 제작 전반에 걸쳐 주도권을 쥐고 있어 의사결정이 빠르고 일관성이 있다.
반면 워너브러더스는 영화 전반을 관리하는 총괄 책임자가 없다. ‘배트맨 대 슈퍼맨’을 비롯해 DC 영웅들을 영화화해온 잭 스나이더가 있기는 하지만, DC 영웅들의 통합적인 세계관을 관리할 뿐이다.
대신 스나이더와 그의 부인이자 제작자인 데버러 스나이더, 워너브러더스 기획·제작 부사장 존 버그, DC코믹스 총괄 크리에이터 제프 존스·찰스 로벤, 프로듀서 겸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이 참여하는 위원회가 영화 제작에 깊이 관여한다.
이처럼 각자 지분을 가진 사공이 많아 의사결정이 느린 데다 영화 제작에 간섭이 심해 영화의 일관성이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이 어설픈 잡탕 비빔밥처럼 내용이 뒤죽박죽 섞인 데는 제작 과정에서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리더십 부족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오랜 기다림 끝 성사된 두 히어로의 대결은 거대한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부실하고 밋밋하다는 혹평을 받으며 시작부터 삐거덕거렸다.
워너브러더스가 오는 8월에 개봉할 블록버스터 영화 ‘수어사이드 스커드’가 다소 어둡다는 지적에 따라 웃음 코드를 집어넣기 위해 재촬영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나돈 것은 대표적 사례다.
감독인 데이비드 에이어가 ‘바보 같은 소문’이라고 일축했지만, 여진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다.
이는 ‘배트맨 대 슈퍼맨’의 내용이 너무 음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마 블스튜디오가 2월 시끄럽고 유쾌한 영웅 ‘데드풀’을 내세워 7억6천170만 달러(8천937억 원)의 흥행성적을 거둔 와중에 나온 것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좌)-‘데드풀’(우)
실제로 마블 영웅들에게는 ‘웃음 코드’가 있으며,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만의 캐릭터를 잃지 않는다. 캐릭터별로 확고한 세계관이 구축돼있는 것도 차이점이다. 이것은 제작 과정에서 일관성을 놓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지난주 시나리오 작가인 세스 그레이엄-스미스가 워너브러더스의 내년 개봉작 ‘플래시’를 자신의 감독 데뷔작으로 삼으려다가 경영진과의 갈등으로 포기하고 하차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디즈니의 마블 스튜디오가 영화 제작에서 일선 프로듀서 중심으로 돌아가는 반면에 워너브러더스는 제작자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계 관계자는 “불행하게도 마블 스튜디오와 워너브러더스는 끊임없이 비교된다”면서 “마블 스튜디오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그것이 지금까지 히트작을 잇달아 내놓은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블 스튜디오는 현장 팀 중심으로 영화를 제작하며 감독도 팀의 일원이 된다”면서 “그들은 자신의 브랜드를 잘 인지하고 영화 제작 과정을 꿰뚫고 있다. 실패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했다.
워너브러더스와 21세기 폭스에서 작가와 프로듀서로 일한 맥스 랜디스는 “마블 스튜디오의 ‘데드풀’이 성공을 거둔 반면 워너브러더스의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개봉 전 벌써 식어버린 것을 보면 두 회사 간 차이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워너 브러더스(좌)-월트 디즈니(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