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군간 기억해야 하지 않나요”

2016-05-05 (목) 04:23:23 김판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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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 미군참전용사들 잊혀진 이야기 ‘한국전쟁의 영웅들’ 곧 발간 예정

▶ 한경림 할머니 자비로 광고, 대상자 찾아

“누군간 기억해야 하지 않나요”

영문판 ‘한국전쟁의 영웅들’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한경림 할머니.

“당신은 한국전쟁 참전용사이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린 여러분의 이야기(경험담)를 듣고 싶습니다.”(Are you a War Veteran of Korean War? If so, We would love to hear your story)라고 쓰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실리콘밸리 지역의 유력 일간지 머큐리 뉴스에 올 1월 20일부터 지난 4월 20일까지 한 달에 8번, 총 32번에 걸쳐 이런 내용의 광고가 실렸다.

81세 할머니의 손에는 접고 접어서 손바닥만 해진 신문지 한 장이 들려있었고, 펼쳐진 신문의 한편에는 이 광고가 있었다. 자비를 들여 미군 참전용사를 찾는 광고를 낸 건 산타클라라 거주 한경림 할머니였다.


한 할머니는 지금은 고인이 된 남편인 탐 클레이튼 변호사와 함께 참전용사를 찾아내 이들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영문 책으로 내자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2012년 7월 클레이튼씨가 사망하면서 한 할머니의 기억에서 남편과 같이 하기로 했던 책 발간은 잊히는 듯했다.

“누군간 기억해야 하지 않나요”

한 할머니가 머큐리 신문에 자비로 32번에 걸쳐 낸 한국전 참전 미군용사를 찾는다는 광고.



하지만 올해 그간의 아픔을 딛고 남편과 살아생전 함께 하기로 했던 작업을 홀로 시작했다.

“15살 되던 해 전쟁이 터졌지요. 당시 있었던 일들은 거의 기억할 나이였어요.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발전과 평화는 없었겠죠. 그런 마음에서 이분들의 실화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고, 그런 제 마음을 안 남편은 무작정 이일을 돕겠다고 했죠.”끔찍했던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놓였던 15세 소녀가 66년이란 세월이 지나 할머니가 된 지금, 책을 통해 과거 자신과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다.

첫 광고가 나가기 전 한 할머니는 과연 이걸 보고 참전용사들이 찾아올까 내심 걱정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광고가 나오자마자 전화와 이메일이 쇄도하는 거예요. 광고가 나가고 3일 만에 4명의 참전용사들과 첫 미팅을 갖게 됐어요. 이 분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이야기를 들었죠. 가슴이 벅차더군요.”

이어 연락 오는 참전 용사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고, 지난 4월 30일 가진 9번째 미팅에서는 미군 15명 포함, 25명(유재정 북가주 6•25 참전 국가유공자회 회장 등 한인 참전용사 4명)이 함께했다. 기록 등 산재해 있는 많은 일들을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던 한 할머니는 또 다시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이들의 한국전 경험담을 적어줄 파트타임 직원을 구했다.


“연세가 많아 거동이 불편한 참전용사 4명은 손 편지와 이메일로 한국전쟁의 이야기를 적어서 보내주기도 했어요. 편지 안에는 전쟁의 참상과 가슴 시린 기억들로 가득하더군요.”

한 할머니는 참전용사 대부분이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긴 사람들이고 불과 수 초전 이야기를 나눴던 전우가 죽어 있는 모습을 목격할 정도로 전쟁의 아픔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전쟁이라는 커다란 역사에 대해선 알고 있지만 한명 한명이 겪어야 했던 작은 이야기들을 우린 너무나 모르고 있어요. 잊혀져가는 전쟁사지만 이 책안에서는 이 분들은 주인공이고 페이지마다 각자 당시 참전했던 시절의 사진이 들어가게 됩니다.”

이같이 잊혀져가고 있는 한국전쟁이란 가슴 아픈 역사가 한국정부가 아닌 한 한인 할머니의 끈기와 노력으로 다시 세상에 빛을 발하려 하고 있다.

“책 제목은 ‘The Korean War Heros'(한국전쟁의 영웅들)입니다. 누군가는 이 분들의 희생을 기억해줘야 하지 않나요.”

한경림 할머니의 책 출간에 도움주고 싶은 한인은 (408)712-6933으로 연락하면 된다.

<김판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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