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림이 있는 산문]골무만한 내 그릇

2016-04-28 (목) 03:58:02 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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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산문]골무만한 내 그릇
잠깐 여름처럼 덥더니만 다시 바람불고 춥다. 한국의 추위는 이게 추위의 본모습이다, 하는듯 정직하게 추운데 산호세의 추위는 슬금슬금 옷깃 사이로 스미는 게 표현하기도 어렵다. 온도계의 숫자로 설명이 안되는 게 산호세의 기후다. 이것 저것 나가봐야 할 일이 있는데 바람부는 창밖을 내다보니 영 나가고픈 마음이 안든다.

날씨가 이런데도 그 할머니가 우리 집 앞을 지나는 모습이 보인다. 성성한 백발은 부스스 휘날리고 한창 젊었을 때는 육체파 소리 들었음 직한 큼직한 가슴은 이제 축 늘어져 한 걸음 뗄 때마다 빈 가방처럼 출렁거린다. 너덜너덜한 티셔츠는 구멍이 여기저기 있을 것 처럼 남루하다. 창문을 통해서도 운전을 하고 있을 때도 그 할머니는 종종 시선에 들어온다. 아마 하루에 적어도 대 여섯번은 눈에 띄는 것 같다. 앞마당에서 풀을 뽑고 있을 때 지나가면 무어라 말을 거는데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가 힘들어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게 된다. 지난 해엔 건강이 안좋아 한동안 볼 수 없었는데 힘겹게 조금씩 걷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최근엔 다 나았는지 다시 하루에도 열 두번씩 볼수 있다. 그 할머니는 집앞을 지나가며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집 주위에 있는 나무를 한 그루 한 그루 더듬기도 하고, 양귀비 꽃이 우리 집 주변을 구름처럼 감겨있던 때는 지날 때마다 한 송이 한 송이, 마치 신부님이 신자들에게 강복주듯, 잠시 서서 두 손을 얹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 할머니를 볼 때마다 나이들면서 매력적인 모습을 지니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구나 싶다.


그런데 며칠 전 앞집 여자로 부터 그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내 눈에 꼭 반 쯤은 미친 여자로 보이는 그 할머니가 젊어서는 시에라 클럽에서 하이킹 리더였단다. 게다가 피아노를 제법 프로급으로 잘 친단다. 시에라 클럽이라니! 내가 얼마나 동경하던 클럽이었는데.. 게다가 나는 피아노라면 도레미도 못친다. 그렇건만 지금도 몰래 시에라 클럽의 잡지를 숨겨놓고 소꼽장란하듯 들여다 보며 왜 내 젊은 날엔 그런 시간을 즐길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가, 통탄하며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보며 아쉬워 한다.


창피했다. 내가 누구를 붙들고 그 할머니 흉을 본적은 없건만 마치 누가 내 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부끄러웠다. 늘 사람의 겉모습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나름 자신에게 다짐하며 살건만 왜 늙어 부들부들 떠는 노인들은 일단 시시해 보이는가. 예수님은 변장의 귀신이라던데 나는 그런 변장을 꿰뚫어 볼 혜안은 없는 그릇임이 분명하다. 오래 전 한국일보 엘에이판에 나온 기사였다. 65세 먹은 할머니가 은퇴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혼자 산에 다니기 시작하여 엘에이에서 시애틀까지, 시에라 산맥을 종주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혼자 산에 다니는 게 꿈이었으면서도 도저히 혼자 나설만치 담대하지 못한 나는 그 기사를 꼬깃꼬깃 손에 들고 그 분을 찾아가는 공상을 하곤 했다.

나이든다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간혹 65세 넘어서 시에라를 종주할 수 있는 이들도 있고 90이 넘어서도 김 형석 교수님처럼 멋있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성취를 증거처럼 보여줄 게 없는 보통 사람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

얼마 전 몇몇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언제까지 사는 게 좋은 건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분이 남에게 도움을 줄수 있을 때까지, 라고 답을 했다. 문득 어느 수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일생을 수도자로 남의 본보기가 되었음직한 분이 말년 십년을 자리 보존하고 사셨다. 후에 그 분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도 할수 없는 상황, 남의 손으로 자신의 오물까지 치우게 한, 굴욕과도 같았던 그 세월이 없었다면 죽는 날까지 진실된 의미의 겸손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라며 자신에게 그런 시간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한다는 말씀을 했다. 뼈속까지 철저히 항복한다는 것, 자신이 먼지에서 와 먼지로 가는 존재임을 철저히 깨닫는다는 건 신의 은총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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