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림이 있는 산문] 뭐, 문명이 싫다는 건 아니구요

2016-04-14 (목) 03:37:18 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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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산문] 뭐, 문명이 싫다는 건 아니구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 손으로 하는 일이라면 뭐든 좋아하고 또 몸 사리지 않고 쓴 결과, 드디어 손목이 나갔다. 수 년 전, 이미 오른 손이 나가서 수술을 받았는데 이번엔 왼손이다. 그 뿐 아니고 수술받고 한동안 잘 쓴 오른 손목도 다시 나빠지기 시작한다. 버틸만큼 버티다가 드디어 왼쪽 손목 수술을 받았다. 왼 손인 게 다행인데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밥도 못해 먹고 설거지도 못하고 정원 일은 엄두도 못낸다. 샤워 할 때도 비닐 봉지로 왼손을 싸매고 꾸물꾸물 물만 뒤집어 쓴다. 게다가 수술자리는 왜 그리 아픈건지 오른 손으로 왼쪽 손목을 바쳐들고 보물단지 모시듯 안고 다닌다.

나이 먹을 수록 어떤 식의 고통도 피하고 싶은 엄살이 느는 것 같다. 수 년전, 오른 손목에 같은 수술을 받았을 때 어떻게 견뎌냈는지, 손목을 싸매고도 친구들과 맘모스 산에 놀러 간 것은 기억이 나는데 밥 해 먹고 설겆이 하며 일상 생활 힘들었던 건 다 잊어 먹었다. 젊었을 때 몸이 내 맘처럼 잽싸게 움직여줄 때는 모든 게 당연 한 것 같았는데 이제 보니 내 몸도 내 것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몸의 콘디숀이 좋으면 내 몸에다 대고 고맙다고 절하고 싶다. 온 몸이 부숴지게 아프면 갖은 엄살을 피우다가 제발 살살 협력해 줍시사 사뭇 내 몸에다 대고 아부까지 하는 듯 하다.

이렇게 일상 생활이 불편해 지면 새삼스레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생각해 보게 된다. 며칠 한손 못쓰는 것도 힘드는데 손가락이 두 개라거나 아예 손이 없다거나 혹은 걷지 못하고 혹은 보지 못하며 혹은 듣지 못하는 이들은 얼마나 불편할까? 우리들은 아주 쉽고 당연하게 헬렌 켈러 대단하다고 하지만 정말 곰곰히 상상을 해 보면 감히 상상해 본다는 말을 꺼내기도 죄송스럽다. 매 순간, 일거수 일투족에서 당면해야 했던 그 엄청난 핸디캡을 그 분은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던 걸까?


이번 수술은 보험 때문에 갑작스레 일정이 잡힌 탓에 미처 원고를 써놓지 못해 지난 번 원고를 펑크냈다. 예전엔 글을 써도 오른 손으로 펜으로 종이에다 쓰면 되는데 이제는 컴퓨터를 잘 하지도 못하면서 컴퓨터가 아니면 글을 쓰지 못한다. 처음 컴퓨터로 쓸 때는 종이 위에선 잘 나오던 생각도 자판 앞에선 하얗게 사라지곤 해서 일단 종이에다 쓰고 그걸 입력했었다. 사람이 어떤 기기에 익숙해 지면 어느 면에선 그 기기의 노예가 되는 것 같다. 내가 살아온 세월동안 너무나 많은 문명이 발달해버려 예전엔 없어도 전혀 불편을 못 느끼던 것들이 이젠 없으면 꼼짝도 못하게 된다. 부모님 세대땐 쌀과 연탄을 들여 놓으면 사는 걱정이 별반 없었다.

지금의 우리에게 매일 필요한 생활용품의 가지수는 수를 셀수도 없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는데 커피콩 가는 그라인더, 커피 머쉰, 냉장고의 물, 토스터, 스토브, 오븐, 마이크로 오븐, 식기 세척기, 전동 치솔, 샴푸, 컨디셔너, 바디 젤, 헤어 드라이어, 각종 화장품, 티브이, 스마트 폰, 충전기, 컴퓨터, 아이 패드, 청소기, 로봇 청소기, 공기 청정기, 내가 어렸을 때 전기가 나가면 촛불 하나 밝혀 놓으면 걱정 없었는데 이제 전기가 나가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 걸까? 냉장고속의 식품들이 녹기 시작하고 부패하기 시작한다면? 이건 재앙이다. 더운 물은 어떻하고 빨래와 청소는 어떻하나? 아마도 우리 일상이 그만 정지 수준이 될 것이다.

게다가 전기 자동차 테슬라가 대세인 이즈음, 언젠가 모두가 전기 자동차를 쓰게 되는 날, 그땐 정말 전기 없으면 꼼짝 할 수 없게 될 터이다. 나는 아직도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 할 때마다 어떻게 그 큰 비행기가 둥실 뜨는지 번번히 신기하다.

지금도 금문교를 볼 때마다 다리 놓은 그 건축가가 존경스러워 지며 이즈음엔 아직 초등학교 일학년인 주제에 눈부시게 화려한 손동작으로 온갖 게임을 섭렵하는 손자까지 슬슬 존경스러워 지려 한다. 사방 눈 돌리는 곳마다 새로운 게 휘황한 이즈음... 이거 참, 자존감의 문제다.

<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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