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의 또 다른 모습,1.7㎞ 해변따라 가지런히 누운 10m 길이 돌기둥 부채꼴·꽃봉오리 등 신비한 자태 연출
▶ 죽어도서 왜구 맞서 신라의 바다 지킨 문무 대왕의 혼 고스란히 간직한 ‘감은사’ 절터
신문왕이 부’ 왕(문무왕)의 큰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 은사’라고 이름 지었다.
◆양남 주상절리
경상북도 경주라고 하면 우리는 석굴암과 불국사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그 외에도 경주에는 볼거리가 널려 있다. 물론 석굴암과 불국사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지만 두 곳에는 언제나 인파가 붐빈다. 그래서 이번주에는 호젓한 경주의 모습을 보고픈 이들을 위해 비교적 덜 알려진 명소를 찾아봤다. 덜 알려졌다고 해서 볼거리가 빈약한 곳은 아니며 어쩌면 경주의 진면목으로 추가할 여지마저 있는 명소들이다.
주상절리는 마그마에서 분출한1,000도 이상의 뜨거운 용암이 땅속에서 솟구쳐 올라오면서 차가운 지표면과 닿은 바닥이나 공기와 접촉하는 윗부분부터 식으면서 수축해 용암표면에 오각형 또는 육각형 모양의틈(절리)이 생기는 모습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주상절리라면 제주 서귀포시 중문에 있는 대포주상절리를 꼽지만 아름다움으로 따지자면 경주 양남면의 주상절리도 만만치 않다. 양남면 주상절리 해변의 난간을 따라서 10m 길이의 돌기둥들이 1.7㎞에 걸쳐 펼쳐진 이곳은 제주도 대포 주상절리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대포주상절리가 절벽에서 수직으로 쏟아져 내리듯 바다를 향해 있다면 양산 주상절리는 해변에 가지런히 누워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대부분은 해변에서 바다 쪽을 향해 펼쳐져 있지만 개중에는 부채꼴 모양, 꽃봉오리 모양 등 다채로운 모습이 펼쳐지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주상절리 전 구간(1.7㎞)은 ‘파도소리길'에 포함돼 있는데 구간별로 몽돌길·야생화길·등대길·데크길 등이름이 붙어 있다. 이 중 등대길 구간에서는 출렁다리 위를 걸으며 파도·등대·주상절리를 구경할 수도 있다.
이곳 산책로 전 구간에는 조명이 설치돼 있어 밤에도 산책할 수 있다. 읍천항 갤러리까지 4㎞에 걸쳐 어촌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양남면 읍천리.
◆감은사지
감은사는 문무왕이 바다로 침입 해오는 왜적을 막기 위해 지은 절이다.
대부분의 절터가 그러하듯 이곳 역시 옛 영화는 간 데 없고 황량한 터전만이 객들을 맞고 있다. 하지만 그규모와 잔흔은 과거의 영광을 설명하기에 차고도 넘친다.
절을 짓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문무왕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절을 완공하고 ‘부왕의 큰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이름 지은 것이 ‘감은사'다. 문무왕은 죽어서 용으로 변해 신라를 지켰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것처럼 바다와 인연이 깊은 왕이다.
신라로 쳐들어오는 적을 바다에서부터 막겠다는 그의 집념은 양북 면봉길리 26 앞바다에 있는 문무대왕릉의 존재로 방점을 찍는다.
후대에도 그 숭고한 뜻이 전해져 왕의 이름을 딴 신형 구축함 문무대왕함이 우리 영해는 물론 아프리카 앞바다까지 진출해 ‘청해부대'를 이끌며 활약하고 있다.
절터에는 신라시대 석탑 가운데 가장 큰 삼층석탑 두 개와 금당과 강당, 회랑을 둘렀던 흔적이 남아 있다. 삼층석탑의 상륜부에는 높이 약 3.9m되는 찰주가 꽂혀있다. 찰주는 탑의 상륜부를 장식하는 석재들을 꽂기 위해 세운 쇠기둥으로 세월이 흐름에 따라 부식도 진행된다는데 이 찰주는 상태가 온전한 것으로 보아 후대에 새로 꽂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1959년 발굴조사 때는 서쪽탑에서 화려하고 섬세한 청동제 사리장치가 발견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양북면 용당리 55-1.
경주시 양남면 주상절리 중 대부분은 해변에서 바다 쪽을 향해 펼쳐져 있지만 개중에는 부채꼴 모양, 꽃봉오리 모양 등 다채로운 모습이 펼쳐지면서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의 문무대 왕릉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문무왕은 죽어서 용으로 변해 신라를 지켰다는 전 설이 전해지고 있는 것처럼 바다와 인연 이 깊은 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