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92) 미국원주민들의 슬픈 역사②

2016-02-19 (금)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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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중에 징병기피를 위해서 동부에서 미개척지인 중부로 옮겨간 사람들이 있었는데 종전 후에도 미국사람들의 이주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들 초기 개척자들에게는 광활한 중부지역은 원시지역이었지만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미국원주민들에게는그들의 자연삶터이었다. 훼손하지 않고 남획하지 않으면서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원주민들의 땅이었다.

원주민들은 농사를 짓지않았던 까닭에 토지의 개인소유권 등은 필요없는 개념이었으며 땅은 부족전체가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으로써 사냥은 제한없이 아무데서나 할수있는 천부의 권리이었다. 원주민들의 토지소유에 대한 이와같은 전통적인 개념이 후일 “지상, 공중, 지하까지의 절대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백인들의 토지소유권 개념과 충돌되는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와같은 토지소유권에 대한 개념의 차이로 원주민들이 백인들에게 판 땅에 사냥을 하러 들어오면 백인들은 ‘불법토지침범 (trespass)’이라고 총격을 가했을 것이며 원주민들은 “우리는 농사지을 권리만 팔았지 사냥할 권리는 판 적이 없다” 고 맞섰을 것이다.


처음 중부 미개척지로 진입하기 시작했을 때에 백인들은 총구로 화약을 부어넣어서
쏘는 단발식 장총밖에 없었다. 당시 원주민들은 소가죽으로 만든 방패를 썼는데 총알이 방패에 직각으로 맞아야만 관통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했다고 한다. 이들은 안장도없이 말을 능숙하게 잘 타서 전투 중에는 한발을 말등에 걸고 말의 배를 방패 삼아 몸을 숨긴 상태로 축구장 세 개 정도의 거리를 단숨에 달리면서 말의 턱과 앞가슴 사이의 공간으로 짧은 화살 20여대를 쏠 수 있었다고 한다.

한편 이때에 백인들은 총을 한번 쏠적마다 화약장진, 화약다지기, 총알넣기를 한 후 정조준해서 발사하자면 매번 몇 분씩 걸려서 원주민들 보다 화력이 약했다고 한다. Samuel Colt 가 6연발 권총을 발명할 때 까지는 미 육군의 화력이 아둔하여서 남북전쟁 의 명장이었던 Sherman 장군은 미 육군 3,000명의 전진을 원주민 50명이 화살로 저지한다고 한탄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조금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원주민들의 용맹성을 잘 보여주던 이야기였다.
1820년부터 미국정부는 미시시피 강의 동쪽에서 살던 원주민들을 미시시피 강의 서쪽으로 추방하거나 강제로 이주시키기 시작하였다. “백인들은 살 수 없는 땅이니 원주민들이나 가서 살도록 하자. 불모지역을 거대한 원주민 수용소로 만들자” 라는 정책이었다.

미국정부가 계획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1850년대 초부터 백인들이 원주민수용소 격인 중부지역으로 옮겨가기 시작하였다. 대부분 동부쪽에서 서부의 오리건 등으로 가는 사람 들이 이 중부지역을 지나들 갔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캔사스나 네브라스카 주 등에 정착하기 시작하였고 , 금광을 찾는 사람들은 사방으로 헤어져 나갔다.

미국정부는 처음에는 통행의 안전을 위해서 병력을 배치 하였으나 얼마 후에는 곳곳에 군사기지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미국정부는 원주민 부족국가들과 조약을 맺어서 백인들의 진입을 돕기도 하였는데 , 쫓겨온 땅에서 또 쫓겨날 것 같은 위협을 받고 있던 원주민들의 분노는 한계점에 이르게 되어 통행로나 동네의 백인들을 무력으로 습격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게 되었다. 이 원주민들이 우리가 흔히 보아온 서부영화의 불한당들이다. 미국정부는 계속해서 원주민들을 회유나 위협으로 더 서부로 옮겨가도록 하였고 원주민들은 점차적 으로 생존을 위해서 미국에 무력으로 항쟁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미국정부는 원주민들을 수용소로 보내면서 식량등 생활필수품을 조달해 주기로 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담당 관리들중 많은 사람들이 무능 무관심 하거나 부패한 사람들이 많았다. 식량 등 생활필수품들이 제대로, 제 때에 조달되지 않기 시작하자 원주민들의 불만은 극도에 달하게 되었다. 드디어 1862년에 약속된 생필품들이 조달되지 않자 Sioux (쑤) 부족 원주민들이 미국과 전쟁을 시작하였다. 물론 결과는 예측할 수 있는 전쟁이었으나, 그후 사방에서 원주민들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계속 하였다.

1864년에는 미국의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Cheyenne (샤인) 부족 원주민 남녀노소 450명이 미국 방위군에 의해 참살되는 일이 발생하였고, 그후에는 미육군 92명이 Sioux 원주민들에게 전멸되는 일들도 있었다. 산발적으로 계속되어 온 전쟁에서 양쪽에서 수 천 명의 피살자들이 속출하였다.

원주민과의 전쟁에 투입된 군인이 2만5,000명에 달했던 1865년에 미국정부는 국회의 조사활동 끝에 원주민정책을 바꾸기로 결정하였다. 미국정부는 대규모 평화사절단 들을 중부지역으로 보내서 원주민 부족 국가들과 협상하여, 1867년과 1868년에 이들 원주민 국가들과 국제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에는 원주민들은 넓은 지역으로 이주하여 살게 되며, 미국은 백인들이 그 지역들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었다. 이 조약들의 체결은 미국원주민들의 부족국가들과 전통문화가 합법적으로 종식 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원주민들은 감히 이 국제조약을 위반할 수가 없었지만, 만일 미국 측이 이 조약들을 위반했을 경우에는 조약이 집행되도록 강제할 무력이 원주민 부족 국가들에게는 없었던 까닭이다. 미국이 애초에 원주민들을 사기하려고 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후에 일어난 일들은 미국이 원주민들에게 법적으로 사기를 친 것과 매한가지 였다.

자기네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좁은지역에 사실상 수용되었고 생존의 기본이 되는 버팔로도 마음대로 사냥해서 먹을 수 없도록된 원주민들은 미국측과 작은 충돌을 계속하게 되었으나 점점 더 약해지고 더욱 더 좁은 지역으로 몰리게 되었다. 1871년도에 이르러서는 미국은 원주민 국가들을 국가들로 인정하지 않기시작하여서 “국제조약” 같은것은 더 체결하는 일 없이 원주민들은 미국국회의 통치를 받아야 하도록 되어 버렸다. 독립국가 에서 슬그머니 식민지도 아닌 영토가 되어버려서 , 자립적인 생계도 유지하지 못하는, 요즘의 용어로 “welfare clients” 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남북전쟁 중의 영웅 Sherman 장군은 이제는 원주민토벌 장군이 되어서 많은 부족들을 굴복시키고 그들이 살려달라고 애걸하게 만들었다. 원주민들의 세력이 하도 약해져서 1874년에 이르러서는 원주민들의 패배로 인한 평화가 일시 찾아 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운명의 마귀는 또 한번 비극을 불러왔다. 아니 어쩌면 미국이 원주민들의 땅을 미국 도처에서 뺐어온 전형적인 예들 중의 하나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얘기일런지도 모르겠다.

원주민들에게 영구적으로 주어졌던 땅인 현재의 사우 다코타 주의 Black Hills 에 우연히 금이 발견되자 동부와 서부의 백인들이 대거 몰려와 원주민들을 밀어내기 시작하였고, 다시 산발적인 소규모 전쟁들이 시작되었다. 원주민부족 국가들 중 용맹스러웠던 Sioux 부족은Chief Crazy Horse 추장과 Sitting Bull 추장의 지휘아래 1876년 6월 18일에 원주민 무력을 총 동원하여 미국 제7기병대의 George Custer장군이 이끄는 장병 265명을몬태나 주의 Big Horn River 에서 전멸시켜 버렸다. 그러나 결국은 이 땅에서 원주민들은 쫓겨났고, 백인들이 금은 광산의 주인으로 들어와 앉았다.

Black Hills 는 BC 7천년부터 인간이 거주한 흔적이 있는 곳으로써 현재에는 세계최대의 맘모스 박물관이 있고 근처에 미국 네 대통령의 흉상 바위조각이 있는 Mt. Rushmore 국립공원이 있고 또 근처에 세계 최대의 조각물이라는 Chief Crazy Horse 의 바위조각이 있는 곳으로써 그곳에 있는 Harney Peak 산은 7,246 feet 로 Rocky 산맥 동부의 미국 최고봉 이라고 한다.

1868년의 국제조약을 파기하고 그지역을 점령해서 백인들의 금은 광산으로 만들어 버린 미국은 다코타 부족의 제소로 오랜 재판 끝에 1980년 7월에 미국대법원으로부터 1억5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으나, 다코타 부족이 합의하기를 거절하여 2012년 현재 7억5천700만 달러가 escrow account 에 보관 중이었고, 2012년에는 UN 에서 조사를 나왔는데 오바마 정부의 협조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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