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83) 남북전쟁 이후의 정치적혼돈④

2015-12-18 (금) <조태환>
크게 작게
남북전쟁이 남부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나자 미국은 나라의 통일은 유지되었으나 남북간의 분열은 더 심각해졌고 노골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막상 승전한 북부는 폐허가 된 남부의 경제를 되살리고 남부사람들의 생업을 책임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종전 후의 대남부 정책때문에 북부에는 극에서 극에 이르는 다른 주장들이 나왔다.

Sumner 상원의원과 Stevens 하원의원이 주축이 되었던 공화당 내의 소위급과파들은반란죄를 범한 남부 주들의 주로써의 권한을 박탈하고 노예주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군정을 실시해서 “다시는 남부주들이 딴 마음을 못 먹도록 버릇을 잡아 놓아야 한다” 고 주장하였고 주로 링컨대통령이 주도하였던화해주의자들은 남부의 잘못을 용서하고 관용을 베품으로서 그들이 다시는 반역할 생각이 안 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극심한 주장의 차이들은 남북전쟁 종전 후 미국의 정치를 극도의 혼돈 속으로 몰아넣게 된다. 급과파들은“남부 주가 미 연방을 탈퇴하는 반란을 한 순간에 주를 자멸시켜 버렸음으로 패전 후의 남부주들은 주가 아니고 미국의 영토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종전 후의 남부주들은 주지사나 주정부도 없고 연방상하원에 의원들을 보낼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화해주의자 들은 남부주들이 미국헌법에 규정되어있지않은 탈퇴라는 잘못을 저질렀을뿐 법적으로 주가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Once a state, always a state.” 까닭에 화해주의자들과 패전 후의 남부 주들은 CSA (남부정부) 에 참여한 사람들을 벌 주는 선에서 처벌이 끝나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링컨 대통령의 대정치가로서의 도량은 남북전쟁 중에도 나타난다. 전쟁이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1863년 12월 8일에 그는 “Proclamation of Amnesty and Reconstruction” 이라는 포고령을 발표하였다. 그는 자기가 남부를 다시 끌어들이기 위하여 과거의 잘못을 용서하고 장래의 화해에 더 중점을 두고 있음을 이 포고령으로 발표한 것이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에 참전한 거의모든 사람들을 사면할 것이며 남부국민들이 앞으로 미국의 헌법을 준수하고 노예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서약을 하면 주의 독립권을 인정해 주겠으며, 1860년 대통령선거 등록유권자들의 10%만 서약을 해도 받아들이겠다” 라고 하였다. 이것을 Lincoln’s 10% Plan 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Lincoln’s 10% Plan 은 공화당의 급과파들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그들은 종전 후의 남부를 최대한으로 벌을 주기 위하여 Wade-Davis Bill 을 1864년 7월 2일에 제정하였다. 이 법은 남부백인 들의 총명단을 작성해서 그 중 50% 이상이 미국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서약을 하면 주로 인정받을 자격을 주겠다는 법이었다.

그러나 CSA 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새 주헌법 제헌의원 으로 출마할 수도 없고 투표할 수도 없다고 규졍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과거에 남부정부에서 일한 적이 없고 남북전쟁에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서약을 해야만 했는데, 종전 후 남부에 그런 서약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만일 이 법이 집행되면 한 세대나 지나야 주권을 되찾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Wade-Davis Bill 이 링컨 대통령의 서명을 위하여 제출되었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은 이 법에 서명하지 않고 pocket veto 를 하였다. 그리고 링컨은 급과파의원들을 비난하는대신 “앞으로는 남부 주들이 Lincoln’s 10% Plan 이나 Wade-Davis Bill 의 과반수 플랜 중 하나를 선택해서 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고 하였다.

남북전쟁은 드디어 끝났고 링컨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1865년 3월 4일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한달 열흘 후인 4월 14일에 링컨 은 암살되었다. 만일 링컨 대통령이 4년 더 집권하였다면 남북전쟁 후의 큰 정치적혼돈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링컨의 암살로 남부주인 테네시 주 출신으로 원래는 민주당원이었던 앤드류 존슨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러나 존슨 대통령은 링컨 대통령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편협하고 화해를 할 줄 모르는 삼류정치인이었다. 미 국회는 그해 12월에야 정기국회를 소집하게 되어 있었으나 당시 다수당이었던 공화당은 국회를 그 전에 곧 소집하여 종전 후의 대남부정책을 토의하고 수립하자고 존슨 대통령에게 요구하였으나 ,그는 이런 요청을 무시하고 자기는 링컨의 대남부정책을 집행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공화당의 급과파들과는 이때부터 극심한 불화가 시작되었다. 급과파들은 대남부정책은 국회에서 결정해야 하며 대통령은 단독으로 처리할 권한이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존슨 대통령은 남부주들이 주권을 회복할수있는 조건들을 제시하였다.
1. 남부 주들이 전쟁 중에 생긴 모든 채무를갚지 않을 것, 2.각 주의 “미국연방 탈퇴결의”를 무효화 시킬 것, 3. 노예해방을 규정한 미국헌법 제13개정을 통과 시킬 것 등을 각 주의 새로 소집되는 제헌회의에서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존슨은 이런 전제조건들을 실제로 집행하는 데에 소극적이었다. 그 결과로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는 탈퇴결의를 무효화 하지 않고 폐지한다고 결의하였다. 이같은 결과는사우스 캐롤라이나 가 남북전쟁 중이나 패전 후에도 계속 주로써 존속해 오고 있다는것을 표시하는 결의였다. 이 같은 결의는 급과파들의 “남부주 자멸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또한 미시시피 주는 미국헌법 제13개정을 통과시키지 않고 “노예해방은 북부군의 강요로 하는 것이다” 라고 의결하였다.

이 두 주들은 전쟁 중의 채무를 갚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도 거부하였다. 이와 같은 일부 남부 주들의 결정은 북부에 협조하려 하던 남부 주 정치인들의 입장을 아주 난처하게 만들었다. 또 북부의 통치에 결사적으로 항거하던 남부의 기존 보수세력들은 (Fire Eater) 새로 구성된 제헌회의에서 종전의 세력을 재활해 기 시작하였다.

남부 주들의 이와 같은 움직임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던 공화당의 급과파들은 제헌 후 새로 구성된 남부 주의회들이 소위 “흑인통치법” (Black Codes)을 입법하기 시작하자 극도로 경악하였다. 흑인통치법은 종전전의 노예법, 북부의 부랑자 통제법, 영국이 West Indies 에서 노예해방을 한 후 제정한 흑인관리법 등을 기초로 하여 노예해방 후의 남부흑인들을 새로 통제하는 법률들이었다. 이 법들의 주요골자는 1. 흑인들은 투표권이 없으며, 2. 흑인과 백인 간의 결혼을 금지하고, 3. 재판 중에 흑인에 관한 소송에서만 흑인이 증인이 될 수 있다 는 등으로 흑인들의 자유를 제한한 것이었다.

종전 후에도 농장의 노동자들이 필요하였음으로 흑인들은 농업과 하인들 등의 중노동에 매어두어야 했던 것이다. 흑인들을 살던 고장에 매어두기 위하여 “부랑자 관리법” 으로 직업이 없는 부랑자 (걸인) 에게는 50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만일 이 벌금을 내지 못하면 강제노역을 시키도록 하는 법이었다. 북부사람들은 노예제도가 명목상으로만 폐지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더욱 기가막히는 일들은, 새로 구성된 남부 주들이 전 남부정부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대거 상원, 하원의원 등의 국회의원으로 선출하여 워싱턴에 보낸 것이었다. 이들 중에는 전 남부정부 부통령, 장관 6명, 국회의원 58명과 남부군의 고급장교 여러 명 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존슨 대통령은 이들이 공화당에 의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남부 주들에게 보내야 했을 것이었는데, 그 반대로 이들 남부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전부 사면하여 주었다. 존슨이 남부지지자이었음이 확연히 드러나는 행동이었다.

텍사스 주를 제외한 모든 남부 주들이 재구성되었고 새 국회의원을 뽑았는데 의원들의 숫자는 남북전쟁 전보다 더 많았다. 그 이유는 남북전쟁 전에는 흑인 1인을 국회의원 선출을 위해서는 60% 만 처주었는데 종전 후에는 흑인들도 100% 로 인정해 주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어떤 주에서는 아직도 흑인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주들이 Black Codes 를 채택하였다. 국회가 소집된 12월에는 전 노예소유자이었으며 민주당원이었던 존슨이 이미 7개월째 대통령을 해오고 있었다.

<<조태환>>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