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한겨울처럼 쌀쌀하지만 낮엔 노랗고 빨갛게 차려입고 뽐내는 단풍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쨍하게 햇빛이 그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유난스럽게 눈부시게 따사롭다가 금새 눈이라도 펑펑 쏟아질것 같은 쓸쓸한 분위기의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이 짧은 길목, 어김없이 감기는 나를 찾아왔다.
고열은 계속되고 연신 재채기를 해대다가 몸살 기운이 낫는가 싶더니, 아무리 쥐어짜도 fm나오지 않는 쉬어버린 목소리. 온힘을 다해 소리를 내뱉어 보지만 나 혼자만 내 목소리가 들린다. 일에 관련한 모든 회의와 전화통화는 불가능하게 되었고, 모든 대화는 문자로 대신하다보니 불편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이렇게 말을 하고싶어 안달하던 사람이었던가 싶어 피식 웃음도 나왔다. 며칠을 말 대신 웃음으로 대신하다보니 몸이 아프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답답하던 심정은 점점 사라지고 눈웃음의 달인으로 새롭게 태어난 듯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못하고 상대방의 말만 듣다보니, 점점 소리에 민감해지면서 눈빛은 더욱 또렷해지는것 같았다. 일상에서 늘 들어왔던 소리지만 태어나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처럼 소리에 귀기울이게 되니 그 소리들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운전하다 차창 위로 떨어지는 낙엽의 스르락 소리는 학교를 마치고 대문을 쾅 닫으며 내뱉던 ‘엄마, 배고파 밥줘’라고 외치는 꼬마소년처럼 우렁차게 들렸고, 옆집 할머니가 힘없이 여닫던 우체통 소리는 우르르 쾅쾅 천둥소리마냥 크고 거칠게 들렸다. 이내 베일 속에 가려진 원곡의 진짜 가수를 찾는 프로그램에서 번번이 실패하던 나는 신기가 내린냥 단번에 정답을 맞추었다.
일에 집중할 때 귀 기울여 듣지 못하던 아이의 요청에도 즉각 반응하니 ‘나이스 맘’이라는 말도 여러 번 듣게 되었다. 이러다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소리도 다 들을 판이었다. 나의 일상은 잃어버린 목소리로 인해 새로운 면을 매일 마주하게 되는 신나는 하루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렇다. 목소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더 큰 힘을 가지고 있었고, 소리를 내지 못할때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사람들의 진심의 소리를 귀담아 잘 들어주고, 그 뒤에 말해도 늦지 않다. 상대방의 눈을 바라봐주고, 경청하고 더 오래 생각하고 답한다면 모든 대화가 더 깊고 풍부해진다는 이론을 몸소 실천 중이며 그것이 참이라는 것을 증명해내고 있다.
목소리가 스멀스멀 제대로 나오기 시작하니 소리낼 수 있을 때 더 많이 힘을 내어 가족과 친구들에게 큰소리로 사랑한다고 그리고 이해한다고 말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 나와봐라 목소리야, 이젠 따뜻하고 고운 소리만 내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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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다미 <갤러리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