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권태진의 아프리카 여행기⑭

2015-11-06 (금) 권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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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슈 뱌 문구 감독’ 탄자니아 감리교 어머니

권태진의 아프리카 여행기⑭

탄자니아 국립박물관에 있는 코끼리 상아를 지고 가는 식민지 시대의 흑인여성 노예의 모형

권태진의 아프리카 여행기⑭

마문구 목사 교회에서 설교 장면

류재영 선교사, 탄자니아 1호 한국인선교사
2014년 대한민국선교대상 수상
마문구 목사, 기독교대한감리회 사상 최초 외국인 목사 안수
한국 그루터기선교회 선교사들 매년 50개 이상의 우물 조성

6월 20일 (토요일)
새벽 5시가 되어 잠이 깨었다. 샤워를 하고 창문을 통하여 밖을 보니 대서양이 내다보인다. 건물 뒷마당이 바다와 접해있다. 해변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길은 없어도 물가로 가서 물에 손이라도 담구고 싶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서 10여분 길 따라 가니 바다로 통하는 좁은 길이 있었다. 물이 맑고 푸르다. 바다에 손을 넣었다. 차지 않다. 한줌의 물을 입에 넣어 보았다. 짠 것은 당연하다. 인도양 물을 처음 접하는 시간이다.

아침 식사 후 택시를 하루 대절하기로 했다. 시내를 구경하고 제일 먼저 국립박물관을 향했다. 아침 9시 30분에 탄 택시는 10시경에 박물관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낸 후 내가 요청한 안내원의 안내로 2시간에 걸쳐 식민지시대의 탄자니아, 탄자니아 문화, 미술관, 인류 진화관을 관람했다. 그 중에 흥미로웠던 관은 인류의 진화관이였다. 에티오피아에서 발견한 320만 년 전의 인간과 유사한 동물인 루시와 동일한 동물의 화석이 탄자니아에서도 발견되었다. 이 생물의 흔적은 중앙아프리카 차드(Chad), 동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그리고 남아프리카 남아공화국에서 발견되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와 최선교사가 안내한 곳은 Sleepy 호텔이다. 이 호텔은 대서양변에 자리 잡은 카지노도 겸한 호텔이다. 우리는 식당 밖의 테이블에서 바다를 바로 내다보이는 곳에 앉았다. 미국과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아프리카는 지금이 겨울이라 아프리카 여행 중 덥다고 느끼지 못하고 초가을처럼 상쾌한 일기 이었으나 이곳에서는 기온이 다른 지방보다 높아서 무덥다. 그러나 이 식당에서는 바닷바람 때문에 시원하여 두 시간 동안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날 저녁 탄자니아 감리교 최고위직인 Matthew Bya Mungu (한국이름 마문구) 감독 부부의 저녁초대를 받았다. 7시에 만날 약속 40분 전에 숙소에서 나와 바자지를 세웠다. 아프리카를 방문하면서 바자지를 한번 타보고 싶었다. 바자지는 세발소형자동차다. 운전석 뒤에 두 사람이 탈수 있는 택시의 3분의 1 사이즈도 되지 않는 문도 없는 차다. 택시 요금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날 저녁 교통은 혼잡했다. 우리를 태운 바가지는 자동차들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잘 빠져 나가고 있다. 차와차 사이도 끼어들기도 하고 차도 바깥을 통하여 지나가기도 한다. 허리조심을 해야 할 정도로 와일드한 운전이다. 그러나 그 덕분에 우리는 혼잡한 교통을 피할 수 있었다. 바자지는 에티오피아, 케냐에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택시가 가장 비싸고, 다음이 바자지다. 그보다 더 싼 것은 모터사이클이다. 모터사이클도 택시로 사용하고 있다.


탄자니아감리교 최초 설립자 부부
류재영 선교사와
메슈 뱌문구 (Matthew Bya-Mungu, 한국이름 마문구)감독 목사

외국인과 결혼에 대하여 냉소적이었던 시대에 대학교육을 받은 인테리 여성이 아프리카 흑인과 결혼했다. 그리고 남편 따라 가난한 탄자니아로 온 사랑과 용기는 그녀를 ‘선구자’라고 부르기에도 합당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녀가 한 남자를 사랑하기 때문이었겠지만 만일 선교의 비전이 없었다면 이러한 용기가 나올 수 있었을까? 탄자니아 감리고 최고위직을 맡고 있는 메슈 뱌 문구 감독이 류선교사의 순애보의 파트너다. 류선교사가 보여준 사랑과 용기가 오늘의 탄자니아에 감리교회가 처음탄생하게 한 초석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탄자니아 감리교의 어머니라고 해도 잘못된 표현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가조찬 기도회는 2014년 류재영 선교사에게 대한민국선교대상을 수상했다. 이상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선교사역에 헌신해 온 지도자들의 공로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상이 수여된다. 류선교사가 한국에서 선교대상을 받았을 때 아프리카 원주민의 의상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있었던 모습은 아름답고 진실되게 보였다.

마문구 목사가 아세아연합신학대학에 유학했을 때 류선교사는 학장 비서로 재직했다. 당시 류선교사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장학금 업무도 담당했기 때문에 마 목사를 만나게 된 동기가 되었다. 남편 뱌문구 목사는 탄자니아에서 수학과 물리학 교사로 재직 중 아시아연합신학대학(현 감리교신학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신학석사과정 입학을 했다. 마목사는 한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장학금을 준다는 것 때문에 한국으로 왔다고 류선교사는 전해주었다.


류선교사는 총회신학교 졸업생으로 유학생인 마목사와 결혼하여 1984년 탄자니아 1호 한국인선교사로 남편과 함께 탄자니아로 왔다. 마문구 목사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사상 최초의 외국인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탄자니아기독교감리회’교단을 세워 초대 감독이 되었다. 그 후 한국감리교로부터 독립하여 세계감리교 연합회에 가입된 탄자니아감리교회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부부가 힘을 합해 시작한 탄자니아 감리교회는 30년 이상이 지난 지금에는 그의 산하에 4명의 감독이 있으며 200여 교회에 만여 명의 교인들이 있다. 이들 부부의 사역은 교회뿐만이 아니라 학교와 병원사역도 겸하고 있으며 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모아 남녀 혼성 찬양사역팀을 구성하여 선교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찬양팀은 한국에도 방문하여 공연한바 있다.

마감독부부의 저녁식사 초청을 받고 최선교사와 함께 저녁 6시경 숙소에서 나왔다. 세발소형차 텍시 바자지를 잡았다. 운전석 뒤에 두 사람이 탈수 있는 택시의 3분의 1 사이즈도 되지 않는 문도 없는 차다. 일반택시 요금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날 저녁 교통은 혼잡하여 바자지는 차들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잘 빠져 나가고 있다. 차와 차 사이도 끼어들기도 하고 차도를 벗어나 지나가기도 한다. 좀 와일드하게 운전하여 조심해야 할 정도 이었지만 덕분에 우리는 혼잡한 교통을 피해 올수 있었다.

저녁 7시에 도착한 곳은 비교적 넓은 현대식 가옥이다. 류재영선교사가 반가이 맞아주었다. 60대 여성으로 보인 류선교사는 친절하고 세련되게 보였다. 아직 마목사는 집으로 오고 있는 중이나 교통체증으로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마목사가 늦어지고 있어 먼저 저녁을 먹기로 했다. 밥과 떡국에 몇 가지 반찬이 곁들었으며 떡국이 일품이었다. 우리가 식사가 끝날 때쯤 마목사가 들어왔다. 작은 체구에 겸손이 몸에 배었다. 나의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중요한 미팅이 있어 조금 늦었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마목사도 우리가 먹었던 대로 한식을 즐겁게 먹었다.

식사 후 차를 마시면서 누가 결혼을 먼저 청했느냐고 물었다. 한국말로 “남자가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하고 유창한 한국말로 되물었다. 마목사는 한국어에 유창하며 한국 사람들에게는 꼭 한국말을 사용한다. 지금은 한국 감리교와는 관계가 없지만 회의가 있을 때 한국을 방문할 때가 있다고 한다. 두 부부사이에 대학을 졸업한 두 딸이 있다. 작은 딸은 포항 한동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연수를 하고 있다.

마목사와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손광주 선교사가 마목사를 만나려 왔다. 다레살렘의 한국교회 문제로 마목사의 서명이 필요하여 왔다고 했다. 외국인은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법인을 설립하여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다레살렘 한국교회는 법인으로 되어있으며 마목사가 이사 중의 한사람이다. 한국교회뿐만이 아니라 선교사들의 신분문제로 어려움을 당할 때 마목사가 도와줬다는 최홍규선교사의 증언이다. 손선교사는 24년 전 한국 그루터기선교회의 선교사로 이곳에 왔다. 그가 처음부터 하는 일은 우물 파는 일이다. 아프리카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지금은 매년 50개 이상의 우물을 판다고 하여 나는 놀랐다. 대부분 학교를 상대로 우물을 파며 자금은 NGO들이 지원하고 있다.

늦은 시간이라 일어서려고 하는데 마목사는 한국말로 “내일 우리교회에 오셔서 설교를 해주세요”하고 부탁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여행 중 격은 것을 토대로 말씀을 하겠습니다”하고 승낙했다. 목사가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 중에서 어느 때나 할수 있는 설교를 몇 개 준비해둬야 한다고 어느 지인 목사의 말이 생각이 났다. 나에게 설교를 부탁하는 목사들이 없기 때문에 그런 준비는 돼 있지 않다.

6월 21일 (일요일)

한국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마 감독의 설교 요청으로 계획이 바뀌었다. 이날 설교를 위하여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가를 취침하기 전에 묵상했다. 신학교에 다닐 때 설교학 교수가 20분의 주일 설교를 위해 3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설교준비의 시간이 없어 탄자니아에서 있었던 무슬림교도와의 관계를 이야기하기로 하고 내용을 메모로 정리해 보았다.

숙소 여주인과 그의 언니가 아침에 한국교회로 가는 도중 우리들을 마목사교회 입구에 내려주었다. 교회에 들어가는 곳은 빈민촌으로 집들은 흙담집들이 많다. 그 동내를 지나자 곧 교회가 있다. 교회건물의 2층은 아직 완공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최선교사와 나는 목사사무실로 안내되어 마목사부부, 부목사, 장로와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마목사가 기도를 인도했다. 그리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 단위에 올라가 마목사 옆에 앉았다. 아침 10시에 시작하는 예배에는 예배당의 3분의 2정도 매워 아이들을 포함하여 3백여 명이 될 것 같다. 이미 찬양이 시작되어 찬양대원들이 찬양을 하면서 춤을 춘다. 한국교회에서 사용하는 찬송가에서 들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어린이 팀도 나와서 노래를 하면서 춤을 춘다. 그리고 나중에는 모든 성도들이 노래를 하며 춤을 춘다. 여기에는 부목사도 함께 열심히 노래를 하면서 춤을 춘다. 교회에 열기가 돈다. 미국 흑인교회예배에 몇 번 참석한 일이 있다. 이들 예배도 음악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아프리카가 이들의 조상의 나라라 비슷한 점은 있어도 춤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음악과 춤이 1시간 이상 진행된 것 같다. 아이들은 다른 방으로 나가고 마목사가 나를 소개했다. 내가 영어로 말하면 마목사는 원주민의 말로 통역한다. 탄자니아는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지만 영어를 모르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에 원주민 말로 통역을 한 것 같다.

요한복음 13:34-35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모든 사람이 내 제자인 줄 알리라,”를 설교 본문으로 하여 케냐에서 2일 동안 운전과 안내를 맡았던 무슬림교도 주마 빈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이야기 했다. 무슬림교세가 강한 탄자니아에 기독교인으로서 사랑의 실천을 하라는 메시지였다. 설교시간은 25분 정도 이었지만 실제로는 10분 남짓한 것이었다. 통역까지 합해서 25분 이였으니 짧은 설교다.

예배도중에 교회를 떠났다. 오후에 잠비아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 부근에 있는 쇼핑몰에 있는 Subway샌드위치 숍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숙소로 왔다. 호텔에 있으면 체크아웃 시간이 빨라 아침에 호텔을 나와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오후까지 있을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창문들을 열고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공기를 맛보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오후 3시가 되어 택시로 다레살렘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최선교사와 공항에서 작별을 했다. 최선교사 덕분에 탄자니아에서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계속>

<권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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