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티나 김 ㅣ Wall

2015-10-2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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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을 막고 폭풍을 막자고 사람들은 담장을 쌓는다. 그러나 담장이 너무 높으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그 담장이 높을수록 더욱 그렇다. 높은 담장 덕에 안전을 얻는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과연 그럴까? 안전을 위해 높게 쌓은 담장이 때론 외부와의 소통을 막는다. 담장 밖 사람들도 담장 안 사연을 알 수 없긴 매한가지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란 옛 시구가 있다.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고 한 다른 시구도 있다. 난 백로일까?

까마귀일까?나도 살다보면 때론 백로가 됐다 때론 까마귀가 됐다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백로와 까마귀의 공통점은 높은 담장도 편하게 넘나든다는 것이다. 담장 안엔 늘 까마귀도 백로도 존재한다.


담장 안에서도 뺏는자와 잃는자는 있게 마련이다. 담장 덕에 안전하다고 믿는 이들만 자신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을 모르고 지낼 뿐이다.

옛 시구는 두렵다 하여 높은 벽을 쌓으란 뜻이 아니라 좋은 벗을 잘 구분하고 잘 소통하라는 뜻이 아닐까? 또한 서로 다르다고 벽을 쌓지 말라는 옛 선인의 조언일 것이다. 미국 와서 “우리끼리 잘해야 해”란 조언을 가끔 듣는데 나에겐 “넌 외부 세상과 벽을 쌓아야 해”라는 강요처럼 들린다.

나에게 이 조언은 다른 의도가 숨겨진 듯싶어 신뢰에 금이 간다. 왜 그런 조언을 하는지? 내가 어리숙해 보여서 일까?나는 담장 너머 들판은 어떤지 궁금해 그 너머를 기웃거리게 된다. 그곳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나에겐 미지의 세상이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가능성과 좌절이 함께 한다. 그곳에 나만의 싸리울타릴 나지막하게 만들고 싶다.

울타리 안엔 화초를 심고 기분 좋은 연못과 도랑을 파고 그 너머 이웃들과 나만의 방법을 찾아 소통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 전통음식으로 멋진 파티를 마련하고 좋은 이웃을 초대해 “여긴 나만의 작은 동산 나만의 세계란다”라고 말할 수 있길 희망해 본다.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줌마의 치기(稚氣)일까?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낯선 환경이 걱정돼 내 자식에게 “넌 엄마가 쌓아 논 담장 안에만 머물러야 해”라고 강요한다면 나는 좋은 엄마일까? 그것이 내가 담장 안에만 머물 수 없는 이유이다. 희망한다, 내 아이는 까마귀가 되든 백로가 되든 담장 밖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자신의 포부를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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