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창간43주년]호놀룰루 미술관 한국관 나들이 (12)

2015-09-29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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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가영 큐레이터와 함께 하는

술잔을 만든 솜씨는 하늘의 조화를 빌었나 보구려...

나무를 베어 남녘 산이 벗겨지고불을 지펴 연기가 해를 가리웠지.

푸른색 자기 술잔을 구워내열에서 골라 하나를 얻었네.


선명하게 푸른 옥 빛나니몇 번이나 짙은 연기 속에 묻혔었나.

영롱하기가 맑은 물과 같고단단하기는 바위와 맞먹네.

이제 알겠네, 술잔을 만든 솜씨는하늘의 조화를 빌었나 보구려.

가늘게 하얀 꽃무늬 점을 찍었는데묘하게 정성스런 그림 같구려.

푸르게 빛나는 옥은 푸른 하늘에 비치고한 번 보는 내 눈 조차 맑아지는 것 같네.

- 녹자배(綠磁杯), 이규보(1168-1241)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가 청자 술잔을 놓고 지은 시이다. 술과 거문고, 그리고 시를 사랑했던 그는 당대를 대표하는 문장가답게 한 편의 글 속에 청자의 여러 면모를 담아냈다. 멋을 즐길 줄 아는 문학가의 감성을 따라 청자를 살펴본다.
글은 청자제작 현장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무를 얼마나 베어냈는지 산이 민둥산이 되었다.
베어낸 나무는 도자기 가마의 장작으로 사용하는데, 섭씨 1,000도를 훌쩍 넘는 가마 속 열기를 만들어 내려면 엄청난 양의 장작이 필요했을 것이다. 불을 지펴 피어오른 거대한 연기가 몇 번이고 하늘을 뒤덮으면 그제서야 청자가 완성된다.
한 가마에서 나온 여러 술잔들은 가마 속 위치와 본래의 만듬새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지녔다. 한참을 골라 내 맘에 드는 잔 하나를 집어든다. 그리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푸른 옥과 같은 청자가 뜨거운 불 속에서 만들어졌음이 새삼스럽다. 맑게 빛나는 빛깔과 손안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이제야 알았다. 이 잔을 만든 솜씨는 하늘의 조화를 빌린 것이다. 표면에는 하얀 점 몇개가 꽃무늬를 이루는데, 어쩐지 공들여 그린 그림을 연상시킨다. 푸른 청자는 푸른 하늘을 담아내고 지켜보는 나의 눈까지 덩달아 맑아진다.
시상을 따라 상상의 나래를 펼치니, 수 백년 전 풍경이 눈 앞에 그려지고 시인의 감동이 마음 속에 전해진다. 실제로 당시 그의 손에 쥐어졌던 청자 잔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느꼈을 감흥과 비슷한 느낌을 전해주는 청자 잔이 하나 있다. 한 손에 착 감기듯 쥐어졌을 모양에, 하얀 점이 모여 꽃을 이룬 잔. <청자 상감 국화문 잔>이다.


* 이 유물은 호놀룰루미술관 특별전 <화려함과 단아함,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한국 도자 명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호놀룰루미술관 관람 정보>
808-532-8700
www.honolulumuseum.org

관람료
일반 10달러
만 17세 미만 무료 입장

관람시간
화요일-토요일 10:00-16:00
일요일 13:00-17:00

* 매주 월요일 휴관
* 매주 화요일 10:00~12:00은 한국어 도슨트 투어 가능
* 무료 관람일 및 휴일 관람시간은 홈페이지 참고

<이미지 정보>
1.Cup with Chrysanthemum Design Korea, Goryeo dynasty, late 12th century Stoneware with celadon glaze, black and white slip inlay Gift from Damon Giffard Memorial Fund, 1967 (3466.1)청자상감 국화문 잔고려시대 12세기 후반1967년 데이먼 기파드 추모펀드 기증 (3466.1)

<하와이 한인미술협회 후원>

오 가 영
호놀룰루미술관 아시아부 한국미술 담당
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객원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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