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단골고객이 5만달러 유산 상속

2015-09-21 (월) 12:00:00 최희은 기자
크게 작게

▶ 맨하탄 한인 네일기술자

단골고객이 5만달러 유산 상속

제니 김씨가 캐런 파커 그레이씨가 남긴 유언장을 보며 그레이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한인 네일 기술자가 고객의 유산을 상속받아 화제다.

주인공은 맨하탄 미드타운 ‘에코 스파&네일(1014 1st st)’에 근무하는 제니김(60)씨. 김씨의 단골 고객이었던 캐런 파커 그레이씨가 한 달 전 사망하면서 김씨 앞으로 5만 달러의 유산을 남긴 것.

독신인 그레이씨는 매장에서 두 블럭 떨어진 57가 선상의 아파트에 살면서 12년 동안 매주 빠지지 않고 한 두 차례씩 매장에 들러 김씨로부터 매니큐어와 패디큐어 서비스를 받았다. 하지만 약 한 달 전 자신의 집 현관 앞에서 쓰러진 채로 아파트 도어맨에 의해 발견, 72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그레이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상심했던 김씨는 그레이씨의 법률 대리인으로부터 유언장 내용을 지난 18일 전달받으면서 상속 사실을 알게 됐다. 8월7일 그레이씨가 자필로 10여장에 걸쳐 빼곡히 작성한 상속인 28명 중 마지막 페이지에는 김씨의 이름과 매장 이름인 ‘Jenny Echo’와 매장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김씨는 "상속을 알리는 편지에 반갑기는커녕, 돌아가셨다는게 실감이 안나 오히려 서글프고 안타까웠다"며 "고객과 매장 직원의 관계로만 생각할 수도 있었을텐데 친인척도 아니고 인종도, 언어도 다른 나를 기억해준 것에 놀랍고 고마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레이씨는 김씨에게 있어서 까다롭지만 따뜻하면서도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했던 할머니로 기억된다. 자신의 리무버, 크림 등 자신의 매니큐어 킷을 별도로 보관하게 했으며 팔리시를 말릴 때도 기기를 사용하기를 거부했다고. 김씨가 근무를 하는지 확인을 하고서야 매장을 방문했고 자신이 매장에 들어섰는데 김씨가 다른 고객의 손에 팔리시를 바르고 있으면 어김없이 매장을 박차고 나갈 정도로 어려운 고객이었다.

하지만 전화 한통에 곧 화가 풀어져 다시 김씨를 찾아오고 김씨가 까주는 초콜릿을 입에 넣고는 미소를 숨기지 못하는 순수한 할머니기도 했다. 밸런타인데이때는 가족과 먹으라며 김씨에게 초콜릿을 선물하기도 하고, 피자를 주문해놨으니 찾아가라며 김씨에게 피자 영수증을 전하는 등 속 깊은 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우울해 했던 모습은 아직도 김씨 가슴에 아프게 남아 있다. 김씨는 "자존심이 강해 사생활에 절대 말을 안 하던 그레이씨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며 "내 영어가 완벽하지 않았지만 서로 눈빛만 봐도 어디가 가려운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통했기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말했다.

지난달 갑작스레 그레이씨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김씨는 그레이씨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다. 2주간 연락이 없자 걱정이 된 김씨가 그레이씨의 집에 전화를 했지만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가사도우미와 통화를 한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그레이씨의 친구를 통해 사망소식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며 김씨는 회상했다.

인근 레스토랑을 향하며 거의 매일 매장을 꼿꼿한 걸음으로 지나치다가, 종종 들러 쿠키를 전하기도 하고 눈을 감고 쉬었다 가곤 했던 그레이씨가 김씨 눈에는 아직도 선하다. 김씨는 "짜증도 내고, 같이 웃기도 해 미운정 고운정이 다들었지만 삶의 마지막을 준비할 때 나를 친구로서 떠올렸다는 것이 감사하면서도 마음이 아프다"며 "지금도 매장 문을 열고 그분이 걸어 들어오는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a1

<최희은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