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객원논설위원>
조선이 일본의 손아귀에 넘어가자 한반도에 살던 조선인들은 만주와 소련 등으로 난민살이를 떠난다. 그들은 조선인이면서도 그 곳에 살면서 국적 없는 난민들이 되어 조국의 독립을 바라며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 허나, 조선은 일본에 36년간의 압제를 당하면서 결국 1945년 연합국의 승리로 일본이 항복하자 해방을 맞는다.
중국과 소련에서 난민이 된 조선인들은 어느 정도 정착이 되며 다시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그 후손들이 3세, 4세들이 되어 오늘날 중국에선 연변자치주의 주인들이 되었고 소련으로 떠난 난민들은 지금의 러시아를 중심으로 퍼져 살면서 고려인이 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다. 그들이 겪은 난민의 고통과 아픔을 그 누가 알랴!
요즘, 테러와 내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와 중동지역 난민들이 자유와 먹을거리를 찾아 나섰다가 떼죽음을 당하는 등 시대의 새로운 아픔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달 27일 오스트리아 빈과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잇는 고속도로 변에서 버려진 냉동트럭이 발견됐다. 발견된 트럭 안에선 70여구의 시체가 쏟아져 나왔다. 난민들이었다.
소식통에 의하면 지금까지 지중해 난민선 참사는 수시로 일어났지만 유럽의 한 복판 대륙에서 일어난 난민 참사로는 처음 있는 일이라 한다. 오스트리아 경찰에 의해 발견된 이 트럭안에선 난민들이 살기위해 몸부림쳤던 고통의 순간들이 역력히 발견됐고 이들 모두는 밖으로 채워진 자물쇠 때문에 모두 질식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IOM(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에 따르면 지중해에서 발생한 난민선의 전복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2000년 이후 2만2,00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리비아등의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등의 유럽국가로 가는 지중해 중도에서 태풍을 만나 목숨을 잃은 케이스다. 이들이 설령 유럽국가에 도착을 해도 그 후를 보장 못한다.
난민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비참 그 자체다. 먹을 것도 없고 잠잘 곳도 없다. 혹 자선단체들이 이들의 슬픔을 안아주어 반겨주는 곳은 있어도 이들을 반가워하는 곳은 유럽의 어느 나라 건 거의 없다. 국경 없는 유럽이지만 난민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 철조망을 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난민이 되면 거지처럼 살아가야 한다.
이런 난민들 가운데 잠든 어린 딸을 등에 업고 볼펜을 팔던 한 난민 아버지의 소식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세상에 전파를 탔다. 레바논 베이루트 시내에서 볼펜을 파는 시리아 난민 부녀가 찍힌 사진이 온라인을 타고 올라오자 그 부녀를 돕겠다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답지해 순식간에 5,000여명이 참여했다. 놀랍다.
이들에게서 모여진 답지금은 13만9,000여 달러에 달한다. 애초 목표액 5,000달러의 20배가 넘는다. 세상 민심이 아직은 살아있는 것 같다. 이 돈으로 그 난민은 딸을 학교에 보낼수 있고 조금은 낳은 난민살이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프닝 하나로 수백만이 넘는 세계의 난민들의 고통을 모두 해소시킬 수는 없다.
보다 구체적인 해결책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난민정책을 다루는 기구가 있긴 해도 역부족이다. 중동과 아프리카는 나라마다 내전과 테러로 인해 민간인이 살기엔 너무 열악해 이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탈출하여 보다 더 낳은 나라를 찾아 나섰다 목숨까지도 잃어버리는 결과를 계속 낳고 있어 너무나 비참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정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난민은 아니지 않은가. 어딜 가나 먹을 것이 풍부한 나라다. 열심히 살면 먹을 것과 잠잘 곳은 해결되는 곳이 미국 아니던가. 그래도, 오늘 아침 집을 나서면서 몇 몇 노숙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왜 이렇게 풍요한 미국 땅에서 난민처럼 살아가야 하나. 그것이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