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5년 만에 본 서울 (배광자 / 수필가)

2015-08-3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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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한국엘 다녀왔다. 15년 만이다. 오랜만에 보는 한국은 과거에 머물러 있던 나의 한국에 대한 인식과 감정을 여지없이 흔들어 놓았다. 한국은 서울이고 시골이고 할 것 없이 화려하고 윤기가 났다.

우선 세계 제일의 시설과 서비스를 자랑한다는 인천공항이 내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었다. 서울은 국제도시답게 높은 빌딩 숲이 하늘을 덮는 듯 했고 잘 포장된 넓은 도로 위에는 자동차의 물결이 넘쳤다. 사람들의 모습도 윤택해 보였다. 내 조국이 이렇게 발전했구나하고 자긍심이 느껴졌다.

이번 한국 방문은 시어머님의 백수 생신이 계기가 됐다. 오랫동안 뵙지 못한 터라 생신 앞뒤로 한 달 여의 여유를 두어 석 달 가까이 머물렀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15년 전에 단절됐던 한국에서의 삶을 다시 잇는 즐거움도 맞보았고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좌절한 쓴 맛도 보았다.


가장 큰 즐거움은 뭐니 뭐니 해도 옛 친구들이나 친지들과의 만남이었다. 달력에 만날 약속을 표시하다보니 3개월이 약속으로 빼곡했고 멀리 제주도에 있는 친구가 초청해 며칠 호강을 했다. 내가 한국에서 산다면 친구들도 있고 친척들도 있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한국 곳곳을 둘러보니 생활환경도 많이 좋아지고 편리해져 있었다. 어디를 가나 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고 지하철은 거미줄 같이 깔려 서울 지하철이 세계 제일이라 하고 노인들은 공짜라니 이 또한 좋지 않은가.

그런데 한편으로는 서울 생활을 즐기면서도 좌절을 느낀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심하게는 굴욕감마저 느끼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은 문화적(?) 위화감이었다. 특히 소비문화는 내가 넘을 수 없는 큰 장벽이었다.

친구들과 만나 밥 먹고 즐기는 건 좋은 일이지만 만나는 장소는 늘 호텔이나 최고급 식당이었고 그 장소에 걸맞게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나온 친구들은 내게 낯설었다. 미국에서 10달러 내외의 식당에 익숙한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호사였다.

심지어 어떤 호텔 뷔페는 한 사람당 100달러나 됐는데 그것도 서로 내겠다고 팔목을 비틀고 다투는 광경에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이런 친구들을 비난할 의도는 조금도 없다. 다만 그런 문화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나를 당황케 한 것이다.

나는 한 집에서 시어머님을 3개월 가까이 모시면서 지냈는데, 모처럼 시어머님께 효도하겠다는 계획을 이루지 못했다. 짧은 기간이나마 어머님 봉양할 목적이 최우선이었는데 어머님과 집에서 함께 한 시간은 별로 없이 밖으로만 나돌았다. 어머님은 그런 며느리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 놓고 기다리다 잠이 들곤 하셨다. 내가 어머님을 봉양한 것이 아니라 어머님의 봉양을 받은 셈이다.

나는 쫓기듯,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면서 비행기 좌석에 몸을 묻고 3개월간의 한국생활을 되돌아보았다.

7월의 마지막 날 오후, 눈부시게 화창한 날씨에 고도를 낮추는 비행기 창 아래 바둑판같은 LA 시가지가 눈 안에 들어왔다. 저 아래, 언제 보아도, 어디로 보아도 별로 내 세울 것 없는 그런 사람들과 맥도널드에서 만나 시니어 커피 마시며 낄낄댈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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