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수수 널린 노란지붕·닭 치는 아이
▶ 평야 곳곳 펼쳐진 그림같은 풍경들
닭을 데려와 풀어놓고 공부하는 아이.
달구지에 깻단을 싣고 가는 농부. 한 폭의 그림이다.
[정찬열씨의 북한 여행 <끝>]
◇ 사리원, 재령을 거쳐 개성까지
사리원 근처 성불사에 들렀다. ‘正方山成佛寺’ 현판 앞에 섰다. 신라말 893년에 건립. 6.25 때 불타 1955년 복원된 건물이다. 마당에 5층 석탑이 서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성불사 깊은 밤 그윽한 풍경소리…”
어디선가 풍경소리 들려온다. 안내원에게 ‘성불사의 밤’ 노래를 아느냐고물었다. 모른단다.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간다. 재령은 송해(88) 선생의 고향이다. 그가 자신의 책 출판기념회 때, “황해도 재령에서 ‘전국노래자랑 송해, 나무리벌에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한 번 외칠 수 있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습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향은 그런 곳이다.
재령평야 곳곳에 볏단이 널려 있다. 한 주민에게 이 지역 오래된 건물을 물었다. ‘해림상회’ (海林商會)를보고 가란다. 1910년에 지은 말쑥한 2층 건물이 고향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점심 때가 되어 들판 나무그늘 밑에 도시락을 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리어카를 끌고 논바닥으로 들어선다. 가만히 지켜보는데 싣고 온 상자의 문을 열자 닭이 쏟아져 나온다. 열댓 마리쯤 되어 보인다. 닭이 논바닥 벼이삭을 주워 먹느라 바쁘다. 아이는 책을 꺼내읽는다. 논두렁을 따라 녀석에게 갔다. 무어라 물어도 싱긋 웃기만 한다. 논두렁 콩이 또록또록 잘도 여물었다.
푸른 가을 하늘, 달구지에 깻단을 싣고 소와 함께 집에 돌아가는 농부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우리가 살아왔던 추억이 북녘 땅에 저렇게 고스란히 남아 있다.
◇ 원산 지나 세포등판에 가다
아침 8시 평양 출발, 원산까지 220km. 고속도로에 차선이 없다. 차가 드물다. 군데군데 길이 망가져 있다. 그런 곳을 피해가며 운전을 한다.
민둥산이 많다. 높은 산중턱 여기저기 밭을 개간했다. 홍수가 나면 어쩌나 싶어진다.
신평휴게소에서 러시아 관광객 10여명을 만났다. 블라디보스톡에 사는한인 2세라고 했다. 한국말이 안 된다. 수행비서가 영어로 통역을 한다.
원산 도착. 명사십리가 있는 갈마 반도가 멀리 보인다. 만경봉호가 정박해 있다. 사연이 많은 배다. 송도원 해수욕장 부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찹쌀을 섞었는지 밥이 차분함네” 운전사 방동무 얘기다.
세포등판을 간다. 신작로다. 차가 출렁거린다. 먼지가 인다. 지붕 위에 옥수수와 콩단을 말리고 있다. 노란색 지붕은 모두 옥수수다. 특별한 가을풍경이다. 고산 과수농장이 보인다.
3,000정보가 넘는단다. 아주머니가 마당에서 막대기로 콩타작을 하고있다.
세포등판 도착. 휴전선에서 멀지않은 해발 620미터 지역. 바람, 비, 눈이 많은 산골. 5만평 땅에 대규모 목축장을 건설 중이다. 풀판을 조성하여 비육우, 젖소, 염소, 등을 기를 예정이란다. 2012년 시작, 2015년 10월에 마칠 예정이다. 이 지역 성산중고등학교를 방문했다. 두 글이 눈에 확 띈다.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 “모두 다 최우등생이 되자!”
돌아오는 도중, 트럭 한 대가 길 가운데 멈춰 있다. 목탄차다. 사진을 찍으려 하자 “기런 건 왜 찍으려 하십네까” 안내원이 제지한다. 잠깐, 어색한 순간이 흘렀다. "리용당할까 렴려되어 하는 말입네다” 한 마디 덧붙인다. 불편한 침묵이 이어진다. 순간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이 떠올랐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듯싶었다. “우리가 지금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많이 힘들다. 그렇지만 온 힘을 다해 난관을 극복하고 있다. 보라, 저렇게 나무를 태워 차를 운행하고 있지 않느냐. 언젠가는 이 시절을 추억으로 얘기할 때가 올 테니 두고 보시라요.”
이 일이 있는 후, 나는 떠나기 전 북한 당국에서 필름을 검색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방문 마지막 날, 해외동포위원회의 간부를 만났다. “억류될까 싶어 동포들이 북한 방문을 꺼린다”고 얘기를 꺼내자,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 일없습네다. 언제라도 환영합네다” 웃으며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