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마음의 명왕성 (김희봉 / 수필가·환경 엔지니어)

2015-07-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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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의 끝. 햇빛은 스러지고 별들만 숨 쉬는 곳. 불 꺼진 변방의 간이역처럼 홀로 떠있는 우주의 섬.

그 외로운 명왕성에서 기척이 왔다. 지난 주, 미국의 우주 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가 근 10년을 날아 근접한 명왕성에서 사진을 보내온 것이다. 2006년 태양을 등지고 날아간 무인선이 보내온 첫 영상엔 놀랍게도 커다란 ‘하트’ 무늬가 새겨져있었다. 달 표면의 계수나무처럼 명왕성엔 ‘하트’가 선명했다. 명왕성이 보낸 연서(戀書)였다.

내 마음의 명왕성은 와이오밍이다. 졸업 후 첫 직장을 잡은 미국의 변방이었다. 인구 불과 5만의 소도시엔 우리가 첫 한국인 가족이었다. 갓 스물 지난 우리부부에겐 외롭고 황량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 메마른 땅은 5년을 사는 동안 이민자인 내게 ‘하트’를 보내준 첫 오아시스가 되었다.


탐사선이 날아 간 세월의 3배나 긴 30여년 만에 그 변방도시를 찾기로 하였다. 나를 뽑아준 첫 상사인 밥의 부인 엘비라가 90세 생신을 맞는 해이다. 지나치면 후회할 것 같았다. 혈육 같은 사람들.

그 옛날, 밥은 내 고물차를 꽁꽁 얼은 콩크리트 바닥에 누워 거의 매일 밤 수리했고 엘비라는 따뜻한 스튜로 언 몸을 녹여주었다. 밥은 애송이 동양인인 나를 와이오밍 방방곡곡 데리고 다니며 일을 가르쳤고 요직의 사람들을 소개했다. 엘비라는 첫 아들의 대모가 되었다.

망백(望百)에도 엘비라는 여전히 금발이 빛났다. 근래 일은 자꾸 잊어버린다고 했지만 옛일은 아내의 신발 치수까지 기억해냈다. 밥이 수년전 별세한 뒤 혼자 살아온 베이지타일 언덕받이 집은 여전히 부모님 집 같았다.

우리가 수개월 머물렀던 방엔 내 첫아이 젖내가 묻어있고, 밥이 고물차를 고치던 차고에도 74년형 올스모빌 달력포스터가 웃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30년을 건너뛰었지만 엘비라의 ‘하트’는 조금도 변하질 않았다. 나는 알았다. 시간과 공간은 인간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을..

문득 명왕성이 보내준 ‘하트’의 의미를 떠올렸다. 탐험선이 지구와 태양의 38배나 되는 거리를 한 치의 오차 없이 10년간 날아갈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우주의 운행법칙을 이해하고 지킨 덕이다. 그런데 마침내 도달한 태양계 끝에 누가, 왜 ‘하트’를 새겨놓았을까?알다시피 우주의 가장 큰 법칙은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다. 우주의 별들이 수없이 명멸하고 원자의 수가 증감해도 총량 에너지량는 변하지 않는다.

또 있다. 빛의 속도나 만유인력 상수(常數), 전자의 전하등도 변하지 않는다. 빛 입자의 에너지 크기를 결정하는 플랑크 상수도 불변이다. 이 물리적 상수들은 우주 생성초기부터 지금까지 한 치도 변하지 않는 우주운행의 법칙이었다.

명왕성에서 신호가 빛의 속도로 오는데도 6시간이나 걸리는 거리. 비행 연료를 아끼기 위해 처음 7년간은 초기속도를 유지하는 동면상태로 만들었다가 근접 직전 엔진을 다시 깨어나게 만든 경이로운 과학기술도 이런 우주운행의 법칙을 이용한 것이었다.

우주의 법칙은 작은 눈으로 보면 모든 게 변하나 큰 눈으로 보면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조물주의 섭리도 그럴 것이다. 그 섭리를 이해하고 탐험선의 운행에 운용하는 것이 과학이요, 그 섭리를 인간관계에 적용하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엘비라의 ‘하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마치 태양계의 끝, 명왕성에서 조물주가 인간들에게 보내온 사랑의 ‘하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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