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정훈기자의 앵콜클래식] 무소유와 평균율

2015-07-23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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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 삶이란 空하다 등의 어려운 말은 잘 모르지만 마음을 비우는 수행… 무소유의 철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준다. 무소유… 그것은 큰 것을 얻기 위한 포기이며 또다른 의미의 수행, 예술적 정진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일 것이다.

젊은 시절, 비범한 예술… 낭만주의 등의 경도되어 한동안 지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비범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그것을 짊어질 그릇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지 그것 역시 큰 짐(번민)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요사이… 아니 꽤나 오래전 부터 음악인들 사이에는 바로크(시대)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일고 있었다.


그것은 낭만주의의 예술이 그 비범함(요란스러움) 만큼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깨달음때문이었다. 바로크의 순수함… 바로크의 경건함… 바로크의 평범한 속에 오히려 마음의 평상심, 무소유의 평화가 들어 있음은… 진리는 늘 평범한 것에 있다는 고전의 말씀과도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리라.

내가 (무소유의 저자)법정 스님의 글을 처음 만난 것은 샘터라는 잡지를 통해서였다. 까마득한 청소년 시절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때 (최인호의 ‘가족’도 그랬지만) 읽을 때 보다는 읽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왜? 법정이란 이름만으로도 이미 그의 글을 다 읽어버린 것 같은, 선입관 때문이었다.

모 법사의 좋은 말… 교훈적인 이야기 보다는 그 당시 나는 그저 잡초처럼 살아가는 무명작가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더 마음이 끌렸다. 뜬금 없이 등장하는 모 야구선수의 인생 넉두리… (글재주는 엿보이지 않았지만)모 탈랜드의 이런 저런 살아가는 세상 오피니언… 이런 이야기를 엮어놓은 샘터는 그 어떤 문학잡지보다도 나에게는 더욱 문학적인 것이었다.

법정 스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후 30년도 더 지난 (이미 고인이 된)뒤 였다. 책장 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그의 수필집을 무심코 손에 든 뒤에 그분의 영혼을 엿보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무소유라고 하는 어려운 강론… 다른 종교… 가치관을 가진 다른 삶이었지만 굳이 그분의 수필을 통해 만난 공통점을 따지자면 그분이 수도승치고는 음악에 매우 밝았으며, 또 음악을 사랑했던 분이었다는 점이었다.

아 그 때 그 시절… 한 영혼이 그처럼 치열하게… 맑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는 사실이 온 몸과 영혼으로, 문장 하나하나에 절절히 스며나고 있었다.


나비 효과라고나할까, 세상은 한 사람의 삶, 한 사람의 영혼… 아름다운 글로 인해 또 그만큼 아름다워 질 수 도 없는 법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눈 쌓인 산사가 아무도 보는 이 없지만 산사에 부는 산들바람… 은은한 만종의 여운이 뭇 영혼들에게 하나의 새소리… 음악이 되어 들려주고 있는 것 처럼. 벌거벗은 겨울 산… 그 찾는 이 없는 메마른 가지… 그 사이에 누운 산사… 그 외로운 풍경은 (불교인이 아닐지라도) 가끔은 누구나 한번쯤 수도자의 삶을 동경하게 되는… 한국인의 공통점일 것이다.

나의 경우는 왠지 너무 외로워서 뛰쳐나올 것만 같은 그런 고독의 정막이기도 하지만 또 산사가 주는 탈속의 정결함이란… 마치 이별인양 서럽지만, 그것은 또 눈처럼 순수하게… 묵묵히 걸어가는 그런 수도자의 아름다움이기도 할 것이다.

무소유의 카마라고나할까… 가난한 마음을 연상할 때 마다 떠오르는 작품이 바로 구노의 ‘아베마리아’일 것이다.

이 작품은 바하의 평균율 (피아곡집) 1번을 반주로 쓴 곡이기도 한데, 구노가 동양에 선교사로 갔다 순교했던 친구들을 그리며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곡이기도 하다.

군더더기 없이 수수한… 수도자의 명상음악같다고나할까. 피아노를 배우는 연습곡으로도 널리 쓰이는 바하의 평균율은 각 장조와 단조(한 옥타브에 12음 –현재와 같은 피아노 건반의 기초가 됨- 바하가 처음으로 시도했다고 함)로 된 전주곡과 푸가 24곡씩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흔히 베토벤의 소나타와 함께 피아노의 성서라 불리우기도 한다.

물론 이 작품은 일반적인 감상보다는 연습곡 , 즉 자신이 직접 치는데 더 묘미가 가속되는 곡들이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순수한 맛이 일품이다. 특히 1번은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워, 바하를 대표하는 음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참으로 투명한 어린 아이같은 음악이라고나 할까… 구노의 ‘아베마리아’로 더욱 유명해졌는데 이는 구노 뿐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이에게 있어서 영감을 주는, 그 음악의 정결함 때문일 것이다.

이 음악을 산사에 부는 바람…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띄워보내고 싶은 것은… 수필과 음악이 맺어준 또다른 인연이라고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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